물 한 바가지의 등물
물 한 바가지의 등물
  • 문틈 시인/ 시민기자
  • 승인 2016.08.10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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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가 한창이다. 길바닥이 뜨거운 햇볕으로 자글자글 끓는 느낌이다. 며칠 전 광주에 기온이 40도가 넘을 때가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무더울 때는 그늘진 뒤안에서 웃통을 벗어부치고 큰 함지박에 두 손을 짚고 아치 모양으로 몸을 뻗치고 있으면 어머니께서 막 길어온 우물물을 한 바가지 떠서 등에 퍼부어주셨다.

그렇게 몇 번 등물을 하고 나면 더할나위 없이 시원했다. 그 순간의 짜릿한 행복감 같은 것이 잊혀지지 않는다. 등에 차가운 우물물을 부었을 때 척추를 타고 온몸을 관통하는 그 시원함이란! 지금은 아파트 안 욕실에서 셀프 등물(샤워)로 대신하지만 어린 시절의 등물 같지 않다.

등물은 우리 조상들의 자랑할만한 발명품이라고 지정해야 할 것 같다. 등물을 마치고 깔깔한 모시 수건으로 몸의 물기를 닦아낼 때의 느낌은 또 얼마나 기분 좋은 것이었던고. 그리고 나서 식칼을 대면 쩍, 하고 갈라지는 잘 익은 수박을 쪼개어 빨간 수박 한 조각을 우걱우걱 베어 먹을 때의 달콤한 느낌까지를 함께 하면 그보다 더 좋은 피서가 따로 없었다.

저녁에는 마을 어귀로 흐르는 대봇물에 가서 아이들끼리 멱을 감았는데, 하늘에서는 달빛이 작은 화살들처럼 쏟아져 내려 대봇물에 반짝 반짝 섞여들었다. 그때도 더웠다. 하지만 뜨거운 햇빛을 받고 들녘에서는 벼들이 익어가고 산에서는 밤톨이 알차게 영글어갔다.

인간이 햇빛을 직접 먹지 못하니까 햇빛 에너지를 머금은 채소나 과일, 쌀을 대신 먹었다. 말하자면 우리는 햇빛을 한번 걸러서 먹는 셈이다. 사람이 직접 햇빛을 취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 피부가 햇빛을 받아서 몸에 꼭 필요한 비타민 D를 생성하는 것이 그것이다.

햇빛을 적당히 쬐면 수면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는 말이 있다. 그것 말고도 햇빛이 무슨 좋은 일을 하는지 아직 모르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덥다고 햇빛을 탓할 일이 아니다. 자연의 조화는 더울 때 덥고, 추울 때 추운 까닭에다 반드시 어떤 특별한 이치를 대어 수행하고 있는 것이니까.

과학적으로 어느 정도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벤저민 프랭클린의 저서를 보면 아침, 낮, 저녁참의 햇빛 성분이 다르다고 한다. 계절별로도 그렇고. 우리는 무한정한 햇빛에 감사해야 마땅하다.

바깥이 가마솥 같은 불볕더위가 막 기승을 부리는 통에 꼼짝없이 집에 갇혀 지내고 있는데 노령의 어머니께서 전화로 팁을 주신다. “수박도 사다 먹고 그래라. 남의 살도 먹고.” 도시에서 파는 수박은 어째 좀 의심스럽다. 햇빛을 쨍쨍 받은 수박이 아니라 공장에서 찍혀 나온 수박 같은 느낌이다. 그래도 여름에는 수박만한 것이 따로 없다.

참 신기하다. 더운 여름에는 당분과 수분, 그리고 다른 성분이 많은 그야말로 계절 맞춤형으로 수박 같은 것이 나다니. 자연이란 참 신묘막측(神妙莫測)한 법칙대로 움직인다. 그런데 무등산 수박은 여름이 거의 다 갈 무렵에야 나온다. 귀히 여김을 받으려 그런 듯도 하다.

요 며칠은 하루 두 번 샤워를 한다. 그때 뿐 곧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에어컨은 질색이어서 우리 집에선 한낱 장식용 구실밖에 못한다. 집의 문을 다 열어놓고 가느다란 실바람이라도 들여놓으려 한다.

이렇게 더울 때는 절집 스님들이 부럽다. 산골짝 절에서 묵상을 하다가 하안거라고 해서 여름 휴가를 보내는 그 한가로운 생활이 여름 생활 매뉴얼이 아닌가 말이다. 우리 같은 생활인은 고작해야 며칠 동안 어수선한 휴가나 갈 수 있으면 그 뿐.

날더러 누가 올 여름 휴가를 어디로 가느냐고 해서 매일 매일이 휴가여서 어디로 갈 계획 없다고 했더니 뻘쭘해서 더 이상 말을 붙이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가면 어디 가는 것마저도 귀찮아진다. 집에서 이 책 저 책을 읽다가 음악을 듣다가 물을 자주 마시는 것으로 여름을 지낸다. 어머니 말씀대로 가끔 닭고기를 고아 남의 살을 먹을 때도 있다.

탄허 스님 말씀으로는 ‘하지가 지나면 하늘의 여름 기운이 쇠하고 땅의 겨울 기운이 돋아온다’ 했으니 아무리 덥다 해도 자연의 운행에 맡기면 곧 여름 끝이 올 터이다. ‘농가월령가’에도 ‘늦더위 있다 한들 계절이야 속일소냐/비 끝도 가벼웁고 바람 끝도 다르도다/가지 우의 저 매미는 무엇으로 배를 불려/공중에 맑은 소리 다투어 자랑하나’라고 노래했다. 바야흐로 여름도 그 정점에 다다라 종점으로 가는 중이다.

아침 산책길에서 무엇인가 달라진 느낌이 들어서 생각해보니 뻐꾹새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대신 풀벌레 소리들이 무성해졌다. 아하, 미물들이 먼저 천지 운행을 알아차리는구나. 그래 곧 귀뚜라미가 울 차례다. 그러면 가을이 성큼 온다는 신호다. 가을의 척후병 귀뚜라미가 소리가 들리면 아침 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 것이다.

그나저나 보리섞인 밥을 찬 물에 말아 먹으며 성난 고추를 된장에 찍어 먹던 그 여름날의 아름답던 날들은 어디로 갔을까. 세상이 어지럽다 보니 한 바가지 등물에 몸을 부르르 떨던 그 단순한 여름이 더욱 그리워진다. 지금은 시절이 하 수상하여 나라가 어지럽고 너무 시끄러우니 등물 생각으로 마음을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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