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있는 꿀단지
서울에 있는 꿀단지
  • 문틈 시인/ 시민기자
  • 승인 2016.07.20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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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근교에 살 때의 일이다. 그 시절 직장은 서울 도심에 있어서 매일 한 시간 넘게 먼 길을 버스로 출퇴근했다. 그래도 불만은 없었다. 초등학교 때 시골에서 십리 길을 걸어다닌 기억이 있어서 먼 길에도 갑갑증을 느끼지 않았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서울을 가보면 늘 공사 중이다. 한강 다리를 새로 놓기도 하고, 다른 지역과 연결된 도로를 넓히거나 아파트를 새로 건설하기도 한다.

어디서 서울까지 몇 십 분이 당겨졌다고 자랑한다. 그 몇 십 분을 서울로 빨리 가기 위해 몇 조원이 투입되기도 한다. 그 길들을 살펴보면 딱 한 가지가 목적이다. 그렇지만 서울로 가는 길은 몇 해가 지나지 않아 곧 느려지고 만다. 차들이 금방 그 도로를 꽉 메우는 것이다. 서울에 아파트를 지으면 지을수록 모자라는 것이나 진배없다. 최근 서울을 가보았는데 한강 다리를 새로 놓고 있었다.

서울은 늘 만원이다. 소설가 이호철이 ‘서울은 만원이다’라는 신문 연재소설을 쓸 때 서울 인구가 200만명이었다. 그 서울이 지금 1000만명을 헤아리니 초만원이라 할 만하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3시간이면 간다. 사실상 전국이 수도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사람들은 서울로, 서울로 몰려든다. 왜일까.

우리나라는 ‘서울공화국’이다. 모든 것은 서울에서 이루어진다.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돈이 돌고, 사람이 모이고…. 모든 돈 될 만한 것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 달리 말하면 우리나라는 서울을 중심으로 한 도시국가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다. 계속 공사 중인 서울에서 뻗어나가는 도로, 다리, 지하철 같은 것이 그 증거다.

그런데 이렇게 서울과 수도권에 아파트를 많이 짓고, 도로를 내고 하는 일은 아무리 해도 끝이 나지 않는다. 참 이상한 일이다. 서울은 그 영역을 날로 확대하고, 사람은 날로 서울과 수도권으로 몰려든다. 이러다간 전 국민이 서울로 이사 가야 그 모든 공사가 끝나지 않을까싶다. 사람들이 서울로만 몰려드는 것을 바꿀 수는 없는 것일까.

현 정부는 경제를 살린답시고 아파트 분양의 규제사항들을 대폭 해제했다. 그랬더니 급기야 아파트 난리가 벌어지고 있다. 서울 강남에서는 한 평에 5천만원 하는 곳도 생겨났다. 누구 말대로 ‘이쯤 되면 막가자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분양권을 사고파는 붐이 일어 어떤 아파트는 분양자의 상당수가 아파트를 넘겼다고도 한다. 당첨되면 그 자리에서 2, 3천만원의 웃돈이 붙으니 팔아치운 것이다. 부산, 대구에서도 돈을 싸들고 서울로 아파트 투기 보따리 부대가 올라온다고 한다. 이런 일들은 정부의 정책도 문제이지만 근본적인 것은 모든 것이 서울에 다 있다는 데에 있다.

어느 집 부엌에 꿀단지가 조금 열린 채로 있었다. 주인이 퇴근하여 돌아와 보니 아파트 베란다에서 꿀단지까지 새까만 개미떼가 이어진 것을 보고 경악했다. 어떻게 지상 6층이나 되는 아파트에 수십만 마리의 개미가 꿀단지까지 올라온 것일까. 개미만 단내를 잘 맡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돈 냄새를 맡는 데는 귀신급이다. 사람들이 내 발이냐 네 발이냐 서울로 몰려드는 것은 서울에 가야 돈을 만져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 꿀단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 한 예가 서울의 아파트 난리다.

노무현 정부 때 서울 인구를 흩어 놓아볼 양으로 몇 개 공기업을 각 지역에 혁신도시를 만들어 분산시켰다. 그랬는데 의도는 좋았지만 공기업 근로자들은 서울과 지역에 이중생활을 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학교 다니는 아이들은 서울에 두고 근무자는 지역에 살고. 좋다는 학군이 서울에 몰려 있는데 누가 아이들을 지역으로 데려오겠는가. 국토개조론이 필요한 이유다.

지금처럼 모든 것을 서울이라는 한 개의 바구니에 담아놓고서는 만사휴의(萬事休矣)다. 이대로는 우리나라는 분모는 작고 분자는 큰 가분수 상태를 면할 길이 없다 예를 들면 전국 국립대학들을 서울대학과 병합시키고, 서울대 병원급 큰 병원을 5대 광역시에 짓고, 광주, 부산, 대구, 인천 등 광역시를 특성화시켜야 한다. 가령 광주를 문화특별시로 만든다든지, 적어도 이런 정도의 대개조를 하지 않고서는 아무리 서울-지역 간 도로, 지하철을 놓고, 아파트를 많이 지어도 ‘서울공화국’은 더욱 과밀해질 수밖에 없다.

서울에만 꿀단지를 두고 해마다 서울로 가는 도로를 건설하고, 수도권에 아파트를 지어대는 것은 대증요법에 지나지 않는다. 남아공화국은 세 개의 수도가 각기 다른 도시에 있다. 행정수도, 입법수도, 사법수도. 우리나라도 이런 식으로 서울에만 있는 꿀단지를 5개 광역도시로 분산할 수 있다면 굳이 서울행 열차를 타고 목숨 걸고 갈 일은 없을 것이다. 왜 ‘청운의 꿈’이 서울로 가야만 이루어진단 말인가. 정말로 기괴한 일이다.

한때 ‘삶의 질’이 화두로 뜨던 시절이 있었다. 삶의 질이라는 면에서 보면 지금 우리의 삶은 그때보다 더 나빠졌다. 새로 국회의원이 된 사람들은 이런 현실을 잘 톺아보고 서울의 꿀단지를 분산시키는 방법을 마련해주었으면 한다. 이대로는 우리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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