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 문틈 시인
  • 승인 2016.06.15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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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은 처음 만나면 으레 서로 물어보는 것이 있다. 그 질문 중에 어디 사느냐, 아파트가 몇 평이냐 하는 물음도 들어간다. 한데 그보다 먼저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으레 나이를 묻는다. 사실 미국사회에서는 이런 질문들은 금기어로 되어 있다. 프라이버시를 최대한 존중하는 문화 탓이다. 심지어 미국 회사 사장은 자기 회사 직원의 인사기록 카드를 함부로 볼 수가 없을 정도다. 결혼했는지 여부도 물론 묻지 못하게 돼 있다.

한국 사람들은 이와 다르다. 처음 만나서 고향, 대학, 회사, 아내, 자식 등 ‘신상털이’를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다보면 한 달 수입이 얼마냐까지 나가는 경우도 있다. 더 물어볼 개인사가 바닥날 때쯤 되면 그제서야 서로 이물없는 사이가 된다.

요즘은 오래 사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그런지 나이를 물어오는 것을 꺼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나만 해도 그렇다. 누가 슬쩍 “젊어보이시는데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하고 물으면 나는 그때마다 같은 대답을 한다. “글쎄요, 50세 후로는 세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요”하고 넘어간다. 상대가 좀 머쓱한 표정이 되긴 하지만 구태여 내가 나이를 밝힐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이는 그 사람의 연륜이요, 경험이요, 지혜의 표징일 수 있다. 다만 삶을 살아가는 태도에서 나이를 중요시할 것이 뭐냐 하는 것이다.

미국 시인 사무엘 울만은 ‘청춘’(youth)이라는 시에서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이다.‘(Youth is not a time of life; it is a state of mind.)라며. ‘장밋빛 뺨, 붉은 입술, 부드러운 무릎이 아니라/강인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오르는 열정을 말한다.’라고 노래한다.

그렇다. 언제 이 세상에 태어났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고향은 나와 같은 이 지구별이고, 대학졸업은 몇십 년 전의 일이고, 나이는 관심 밖이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그가 호기심과 열정을 가지고 삶을 살고 있느냐는 것이다.

시인이 젊음을 ‘마음의 상태’라고 노래한 것은 내 마음에 딱 든다. 나는 어떤가 하면이 해가 바뀌어도 늘 50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게다가 요즘은 자기 본나이에서 7할을 내리 깎아야 한다고 하는 견해도 있으니 늘 더 젊은 나이로 생각하며 살려 한다.

자기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살면 모르긴 하지만 젊게 살 수 있다. 자기가 늙었다고 생각하면서부터 사람은 ‘상상력과 감동의 힘’도 따라 늙어간다. 그래프로 그린다면 태어나서 20대를 정점으로 올라갔다가 거기서부터 40, 50, 60대의 비탈처럼 내리막으로 긋는 삼각형 모양이 아니라 태어나서 20대를 정점으로 올려놓고 거기서 평행선으로 죽 선을 미래로 그어 죽을 때 절벽처럼 수직으로 내리긋는 그런 마름모꼴 그래프로 살려고 한다.

좋다 하는 음식이나 약을 골라 먹고, 뒤로 걷기도 하고, 날마다 조깅하고 하는 것이 우습다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레 스스로 늙었다고 생각하며 뒷짐 지고 살지 않겠다는 것이다.

50세쯤에서 내 나이는 멈추고 있다고 자기 암시를 하면 50세처럼 살 수 있다. 자기 암시는 온몸의 세포들을 활기차게 한다. 해가고 달이 가도 진실과 선한 의지와 아름다움에 기대어 삶을 살고 싶다. 사람 나이는 50이 넘어가면 그 다음부터는 세월이 나이를 먹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나이를 덧붙여 간다고 믿는다.

무슨 말인가 하면, 봄날 아침 산책길에서 풀잎 끝에 맺힌 반짝이는 이슬방울을 보고 걸음을 멈춘다면 그 사람은 나이가 몇이건 젊은 사람이다. 난 부러 환갑잔치를 하지 않았다. 70, 80, 90에도 하지 않을 작정이다. 오직 내 일생에는 태어난 날과 죽는 날만 있을 뿐 나이를 두고 어느 날을 특별히 기념하고 싶지 않아서다.

그러니 누구든 내게 나이를 묻지 말 일이다. 무지개를 볼 때마다 가슴이 뛰는 내가 왜, 무엇 때문에, 나이에 굴복하며 살아야 한단 말인가. 자연에 대한 신비감과 끝없는 호기심과 하는 일에 대한 열정은 날마다 달마다 더욱 새로워지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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