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시대 광장문화10. 스페인 바르셀로나 카탈루냐광장
소통의 시대 광장문화10. 스페인 바르셀로나 카탈루냐광장
  • 스페인 바르셀로나=정인서 문상기 기자
  • 승인 2015.11.05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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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루냐 자주독립 외치며 군중집회
바르셀로나 관광의 출발점 버스 지하철 경유
▲ 카탈루냐 광장 전경을 보면 마치 부엉이가 눈을 크게 뜬 모습과 비슷하다.

람블라스 거리 따라 관광객 물결처럼 흐르듯

카탈루냐광장(Placa de Catalunya)은 7개의 번화한 거리가 만나는 곳으로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큰 광장이다. 바르셀로나의 거의 모든 버스와 지하철 노선이 이 광장을 경유한다. 다행히 숙소 바로 뒤편에 있었다.
3일간 머무르면서 새벽부터 낮이건 밤이건 자주 들락거렸다. 2개의 분수가 있었고 광장 주변으로는 큰 나무들이 있어 햇빛을 피하는 의자들이 즐비했다. 광장에는 수많은 비둘기가 모여 아이들과 함께 했다. 그러다가 어디서 큰 소리가 들리면 떼로 하늘로 올랐다가 금세 광장으로 되돌아오곤 했다. 비둘기 떼로 유명한 광장이란다.
광장의 전경 사진을 찍기 위해 인근의 꼬르테(Corte)백화점 스카이라운지로 올라갔다. 광장이 바라보이는 창문 쪽으로 일부러 자리 잡아 식사하는 사람들이 눈에 띠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창문 쪽에 서서 밖을 내려다보았다. 광장 모습을 구경하거나 광장 주변의 전경을 바라볼 수 있었다.

광장 전경, 부엉이 모습이 보인다

백화점에서 바라본 광장은 오른쪽으로 두 개의 분수가 있고 아래쪽으로 녹지가 약간 있다. 그리고 왼쪽으로 커다란 원형광장이 자리하고 주변으로 나무들이 즐비하게 심어져 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니 마치 부엉이가 나무에 앉아 눈을 크게 뜨고 있는 모습이 연상된다.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장의 설계자가 하늘에서도 광장을 보았을 때를 생각하고 설계했을 것이라는 느낌이 불현듯 들었다.
다시 광장으로 내려와 세세히 주변을 돌아보았다. 분수가 있는 곳에서 광장을 가로 질러 맞은 편 10층 넘어 보이는 건물 옥상에는 ‘SAMSUNG'의 영문 로로가 크게 보였다. 왠지 정겹게 느껴졌다. 이것이 외국에 나가면 느껴지는 향수병인지도 모르겠다.

▲ 카탈루냐광장 인근의 건물 옥상에 삼성의 영문 간판이 보인다.
2개의 분수 주변에는 그리스 조각을 보는 듯 옷을 벗은 석조 입상들이 도열하듯 서 있었다. 분수 주변의 조각상들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백화점 방향으로는 머리에 과일을 인 여인과 남녀, 어린이의 모습을 한 군상도 있었다. 말을 타고 있는 여인은 배를 치켜들고 있었다. 프레데릭 마레(Frederic Mars)의 작품으로 항구도시인 바르셀로나를 상징한다고 한다.
람블라스 거리 방향으로는 무언가를 상징하는 듯한 기념비적인 조각이 있었다. 이미 있었던 조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카탈루냐 자치정부를 수립한 프란세스크 마시아(Francesc Macia)의 기념비였다. 계단이 거꾸로 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거꾸로 된 계단은 지난해 10월 일본 가나자와를 갔을 때 어떤 상가의 외부 계단 윗부분을 만들었던 것과 유사한 모습이었다.
스페인 현대조각가인 수비라치(Josep Maria Subirachs, 1927~2014)의 작품으로 그는 파밀리아성당의 ‘수난의 문’ 조각 전체를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가우디의 제자이다. 서울 올림픽공원에도 그의 작품이 있다.
그 옆에서는 한 청년이 양 손에 기다란 줄을 잡고 크고 작은 비눗방울을 만들면서 나름대로 묘기(?)을 보이고 있었다. 사람들이 쳐다보든 보지 않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나가던 어린아이들은 즐거워했다.
기념비 뒤편에는 연못이 있고 하얀 석상으로 된 여인의 나신이 다리를 괴고 앉아있는 모습도 볼거리였다. 광장 맞은 편 람블라스 거리를 향한 곳에는 조형적으로 잘 꾸민 수변공간이 있었고 그 주변에는 갓난아기들이 즐겁게 노는 듯한 조각들로 자리를 차지했다. 무척 귀여웠다.

▲ 람블라스 거리의 호안 미로 작품 타일
조지 오웰 광장도 인근에 있어

다음날 이른 새벽녘에 카탈루냐광장을 찾았다. 광장은 밤새도록 사람들과 함께 북적거렸다. 커플로 보이는 남녀는 물론 삼삼오오 청년들이 무리로 있다가 헤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직도 벤치에는 한 커플이 서로 껴안은 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광장 청소는 물청소였다. 마치 작은 소방차 같은 차량이 광장 주변을 돌면서 소방호수로 물을 세차게 뿜어냈다. 수많은 쓰레기들이 물살을 맞으며 한쪽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다른 청소부는 물기가 빠진 쓰레기들을 순차적으로 커다란 봉투에 담고 있었다. 카탈루냐광장의 열기는 이제야 식는 듯 했다. 상쾌한 모습이었다.
카탈루냐광장은 역사와 함께 150년의 나이를 먹었다. 바르셀로나는 나날이 산업도시로 발전학도 있다. 광장은 어느덧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비싼 땅이 되고 있다. 광장 주변의 건물들은 반복적으로 붕괴되고 재건되었다. 최근에 애플스토어가 들어섰다.
바르셀로나에서 성장한 작가 에두아르도 멘두사는 카탈루냐광장은 “많은 사람이 인생의 황금기를 보내는” 공공장소라고 말했다. 광장에서 한 블록 가까운 거리에 바르셀로나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는 카탈루냐음악당(Palau de la Música Catalana)이 있다. 건축가 도메넥 이 몬타네르(Lluis Domenech I Montaner, 1850~1923)가 지었다.
스페인 내전과 카탈루냐를 소재로 한 유명한 소설이 있다. 영국 작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1950)이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 소설 <카탈루냐 찬가(Homage to Catalonia)>이다.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던 조지 오웰을 기리는 조지 오웰 광장이 인근에 있다. 삼각형의 조그만 광장이지만 그를 위한 추모 기념 조각품이 있다. 초현실주의 조각가 크리스토폴(Leandre Cristofol, 1908~1998)의 작품이다. 8m 높이의 조각은 지구 모양을 위쪽에 형상화했고 받침대 격인 둥근 기둥을 두 손으로 감아야 할 정도의 두께로 된 스테인레스 원통이 힘차게 휘감고 있다. 조지 오웰의 지적 고뇌, 진실의 집요한 탐사 욕구와 어울린다.
오웰의 본명(Eric Arthur Blair)을 적은 작은 표지판이 광장의 존재를 확인해준다. 그는 33세 무렵인 1936년 12월 취재할 생각으로 바르셀로나에 갔다가 파시즘에 맞서기 위해 통일노동자당(P.O.U.M) 소속 의용군(miliciano)으로 입대했다. 1937년 5월 그는 저격병의 총에 맞았다. 목에 관통상을 당하는 중상이었다. 빈약한 의료시설 속에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바르셀로나 관광의 출발점인 곳

카탈루냐광장은 바르셀로나를 관광할 때 가장 중심이 되고 많은 사람들이 출발점으로 삼는 곳이다. 특히 이 주변이 바르셀로나 최고의 번화가인 람블라스(La Rambla) 거리가 시작하여 항구에 있는 콜럼버스광장까지 이어지는 곳이다. 람블라스거리는 과거에 개천이 흐르던 곳이라 하여 물이 흐른다는 뜻의 아랍어 ‘라므라’에서 이름이 비롯되었다.
바르셀로나 도시계획의 중심 지역답게 평일이나 주말 할 것 없이 낮이건 밤이건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이 거리는 마치 길게 쭉 뻗은 금남로 같은 거리 한 가운데가 사람들이 걷거나 쉴 수 있는 공간들로 만들어져 있고 양쪽으로 자동차가 좁은 2차선으로 다닐 수 있게 했다.
이 거리에는 노천카페는 물론 다양한 상점, 꽃집, 행위예술가와 거리음악가들의 공연이 펼쳐진다. 람블라스거리의 벤치들은 한쪽으로 줄줄이 있지 않고 양쪽의 의자는 45도 각도로 방향을 틀어 다정한 모습의 사람들을 연출했다. 람블라스거리엔 오래된 식수도의 이름을 딴 카날레테스 람블라(Rambla de Canaletes)가 있는데 지나가는 행인들은 누구든지 목이 마르면 이 물을 마실 수 있다.
이 거리를 중심으로 바르셀로나의 주요한 관광지가 연결되는 곳이라 천천히 구경하다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카탈루냐 광장을 기점으로 서쪽에는 몬주익언덕이 있고 이곳엔 올림픽경기장과 호안 미로의 미술관이 있다. 남쪽에는 피카소미술관과 카테드랄(대성당)이 있는 구시가지이며, 북쪽으로 파밀리아성당, 카사밀라, 구엘공원 등 가우디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을 카탈루냐라고 부른다. 스페인 인구 3천9백만명 가운데 7백50만명에 이른다. 이베리아 반도 북동부에 있는 지역으로 면적은 31,950 km²이다. 스페인 국기보다 카탈루냐기가 도시 곳곳에 더 많이 걸린 것처럼 그들은 ‘우리는 우리다(Som lo que som)’라고 단호하게 주장한다.

▲ 광장 구석에서 한 청년이 비눗방울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기대’

스페인 속의 독립국가처럼 자긍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 지역은 카탈루냐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한다. 카탈루냐어는 피레네산맥 반대편의 프랑스 방언과 유사하며 프랑스 남서쪽으로 몽펠리에 사람들까지 카탈루냐어를 알아들을 수 있다고 할 정도다.
바르셀로나 도착 불과 며칠 전인 지난 9월 28일 카탈루냐 주 지방선거에서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정당들이 과반의석을 차지했다고 한다. 스페인 카탈루냐주 독립을 주장하는 수천명의 시민들이 카탈루냐 광장에서 10월 19일(현지시간) 주정부 깃발 에스텔라다를 흔들며 독립을 외치는 집회를 가졌다.
카탈루냐는 오랜 기간 동안 스페인과 다른 문화 등으로 갈등을 겪어 왔다. 2013년 12월 카탈루냐 주정부는 스페인으로부터의 분리독립을 묻는 주민투표를 2014년 11월에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스페인 중앙정부는 이 주민투표가 위헌이라고 맞섰다. 2014년 11월 9일 카탈루냐 의회의 승인 하에 전 지역에서 분리독립을 결정하는 주민투표가 실시되었다. 투표 결과 80.76%가 찬성 의견을 냈다. 이는 정부의 승인을 받지 않은 불법적 선거로 승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도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런데 최근 또 분리독립 지지정당들이 독립을 선포하고 1년 반 뒤 독립을 완료하겠다며 본격적인 추진에 나섰다. 분리독립을 지지하는 정당인 ‘찬성을 위해 함께’(Junts pel Si) 등은 분리독립 계획을 10월 27일(현지시간) 공개했다. 11월 9일 주 의회에서 독립 선언 결의안을 채택하고 향후 18개월 내 독립 절차를 마무리한다는 것이다. 카탈루냐 주가 독립할 것인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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