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시대 광장문화 1. 광장은 참여공간으로 담론형성 始發
소통의 시대 광장문화 1. 광장은 참여공간으로 담론형성 始發
  • 정인서, 김다이 기자
  • 승인 2015.08.21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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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앞, 문화전당앞 등 장소 따라 소통방식 차이
세상의 정보와 순환의 공간으로 다양한 욕구 분출

광장은 소통(疏通)의 공간이다. 광장은 단순히 넓은 장소적 개념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시민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공간이어야 그 의미가 있다는 점이다. 문명사적으로 보면 광장은 서구의 도시구성 체계 안에서 나타나는 생활공간이었다.

인터넷이나 TV가 없던 시절 어디에서 세상의 정보를 들을 수 있었을까? 바로 광장이라는 장소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나눔과 배려가 이루어지며 한 사회의 담론이 형성되는 등 정보가 소통되는 공간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agora)나 고대 로마의 포럼(forum), 중세시대 이후 플라자(plaza)와 같이 ‘시민들이 일상의 사회생활을 해나가는 데 중심을 이루는 장소’에 가야 세상의 정보를 듣고 의견을 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요즘 대학이나 단체 등에서 아고라나 포럼, 심지어는 콜로키움(colloquium)이라는 용어를 흔하게 쓰고 있다. 대부분 그 의미와 다르게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울 때가 있다. 좋게 우리말로 토론회나 집담회 정도로 써도 될 텐데 굳이 ‘외래어’를 사용하는 속물(?) 근성이 가끔 신경을 거슬린다.

광장은 도시의 실핏줄 연결

광장은 도시문화의 중심적 일상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예컨대 중세 이후 지금까지도 서구에서는 광장은 공회당이나 교회라든가 시장을 옆에 두어 사람들이 모여 정보를 나누고 거래와 놀이가 어우러지는 소통의 의미를 갖는 문화생산의 거점으로 기능해왔다.

광장은 도시 안에서 쉽게 만나는 일반적인 의미의 ‘넓은 빈터’와는 구별할 필요가 있다. 광장의 특징은 사람들의 접근이 편한 넓은 바닥, 그 바닥을 둘러싸고 있는 건물들 그리고 그 건물과 함께 하늘을 올려다보는 아름다움도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광장을 중심으로 도시의 곳곳을 연결하는 길들이 서로 만나고 헤어지는 실핏줄과 같은 결절점(node)의 구실을 한다. 도시공간에서의 결절점인 광장은 ‘잉여순환공간’으로서 인간의 주체적 욕망을 분출할 수 있는 개인의 개성과 창의성을 중시하고 사회가 이러한 다양성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순환의 장소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우리 현대사회에서 형성된 광장은 서구의 그것과 같은 맥락에서 비교할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짧은 시간에 걸쳐 갑자기 형성된 도시조직 안에서 인위적 목적으로 만들어 사용해온 우리 시대의 광장은 일상의 시민사회 문화를 아우르는 공동체적 삶의 흔적을 담는 데에는 역부족이었던 셈이다.

군사정권의 통치 이데올로기를 상징하는 전시공간과도 같았던 여의도(5.16)광장은 우리 현대사회의 질곡을 그대로 담고 있다가 놀이터 같은 ‘넓은 공터’에서 인공적인 공원으로 변모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의 대표적인 광장문화는 서울의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이었다. 1980년 군사정권의 몰락으로 찾아온 ‘서울의 봄’이며, 신군부가 물러나게 되는 87년의 6월 항쟁 등 시민의식과 이념이 집단적으로 표출되던 시대사적 흐름을 담았던 장소이기도 하다.

또한 전 국토를 흥분의 도가니로 만들었던 2002년 월드컵 응원 열기의 중심으로서 시민과 도시 공간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양태를 생산해낸 저력을 각인시킨 장소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광장의 본래 의미에 충실한 곳일까라는 의문을 던져본다.

이는 일시적이나마 우리네 도시 안에서 열린 시민사회의 공동체적 소통 구조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혔을 뿐이다. 그것은 결국 시민 정서가 지닌 욕망과 의지를 담아낼 수 있었던 시대성에 기인한 것이었다. 시민이 주체가 되어 도시의 공공적 장소를 일상 안에서 공유할 수 있는 여지는 여전히 차단된 상태에 있었다.

우리의 마당문화 재생해야

우리의 ‘광장’에서는 집단 소통만 이루어질 뿐 다양한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문화적 현상’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자발적으로 만들어가는 문화라든가 소통을 위해 접근하기에 좋은 목적지(destination)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에겐 제대로 된 광장문화가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다.

서양에서 광장은 개방성을 강조하며 시민문화와 함께 발달한 곳이다. 시민들이 모이는 집회광장을 비롯하여 기념탑이나 조각이 세워진 기념광장, 주택의 밀집지역에 있는 생활광장, 교차로나 역전의 교통광장 등 많은 사람들이 모여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다양한 공간으로 쓰인다. 그래서 광장은 ‘도심 속의 허파’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렇듯 광장은 즐겁고 편안한 공간으로서 역할을 할 때 사람들 사이의 소통 기능이 존재한다. 오늘날과 같은 폐쇄된 공간이나 빌딩시대의 다른 공간에서 가질 수 없는 자연과의 친근화를 가져오고 쾌적함을 즐기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도시계획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중의 하나가 도시 전체에서 일정한 구역별로 광장을 설치하는 것이다.

광장문화가 발달한 유럽에는 이름난 광장이 많다. 넬슨 제독의 트라팔가르 해전의 승리를 기념하는 런던의 트라팔가르(Trafalgar)광장, 아름다운 분수가 있는 로마의 에스파냐(España)광장, 또 빅토르 위고가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광장이라고 했던 브뤼셀의 그랑플라스(grand-place)광장은 고딕양식과 바로크 양식의 아름다운 건축물과 꽃 축제로 널리 알려져 있다.

반면 역사적인 아픔을 지닌 광장도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러시아 모스크바의 붉은광장이다. 17세기에 처음 붉은광장으로 불릴 당시 ‘붉은’이라는 표현은 그저 ‘아름답다’라는 고운 뜻이었다. 그러나 많은 정치가들이 대규모의 군중집회나 군대사열을 위한 장소로 붉은광장을 사용하면서 붉은광장은 그 이름대로 핏빛으로 물들어 버렸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양식 광장문화와는 다른 마당문화가 있다. 옛날 장터나 육조의 거리가 오늘 날의 광장 역할을 담당했는데 좁은 땅덩이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질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바로 장터 마당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도시화 바람이 불면서 본격적으로 서울역광장이나 시청앞 ‘서울광장’ 등이 생기기 시작했지만 서양에서와 같은 광장의 역할을 제대로 소화해 내지 못하고 있다.

문화전당앞 민주광장 ‘청춘열기’ 기대

최근에는 세종로 광화문광장이 한국의 광장문화의 새로운 형태를 제시하고 있다. 이곳은 이제 파리의 콩코르드, 로마의 에스파냐와 콜로나, 런던의 트라팔가르, 뮌헨의 마리엔처럼, 한국 사회의 ‘광장 문화’를 대표하고 있다. 이처럼 광장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문화를 광장문화라고 말한다.

광주에도 광장문화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곳이 생겨나 반갑다. 문화전당앞(옛 도청앞) 민주광장, 광주시청앞 광장, 광주버스터미널의 유스퀘어광장, 광주역광장 등이 있다. 대부분 이들 광장은 공공기관의 무슨 대회 유치를 위한 집회나 데모를 위한 일시적인 장소, 그리고 산행이나 타지로 가는 행사차량들이 임시정류장처럼 이용하는 곳에 불과했었다.

금남로 문화전당앞 광장은 이곳은 1996년부터 5·18민주광장으로 부르고 있다. 문화전당 건축공사 기간 동안 소규모 야외공연이나 전시공간으로 활용되었으나 9월중 아시아문화전당 개관 이후에는 색다른 광장문화가 형성될 것으로 기대되는 곳이다.

광장 일부가 선보이면서 젊은이들이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 모습들이 자주 눈에 띠었고 이곳에서 김광철 작가는 최근 행위예술의 작품을 보여주기도 했다. 기자가 찾아간 날은 박관우 작가의 1인 시위가 있었다. 앞으로 주말에 차없는 거리로 지정되면 많은 젊은이들의 광장으로 변모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광장의 중앙에는 분수대가 있다. 1971년에 만들어진 이 분수대가 44년 만에 지난 7월부터 보수공사를 벌이고 있다. 5·18 사적지 27곳 가운데 유일하게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다. 2010년 6월 주변 냉각탑 붕괴 사고 등으로 분수 가동이 중단됐다. 5년 동안 시원한 분수를 보지 못했는데 분수와 음악과 예술이 흐르는 광장으로 재탄생이 기대된다.

이곳 광장은 금남로(1~3가)에 이르기까지 5.18광주민주화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던 장소다. 피로써 민주주의를 지켜낸 ‘5·18광주민중항쟁’의 현장이다. 정치적으로 용어를 순화시켜 ‘광주민주화운동’이라고 바꾸어 부르고 있다. 어쩐지 마땅치 않다. 아직도 이 두 용어가 혼용되어 사용되고 있지만 후자가 ‘공식 명칭’으로 쓰인다.

1980년 5월 당시 오랜 박정희 군사정권의 몰락 이후 민주화의 열망을 기대했던 광주사람들은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려는 전두환 등에 반대하는 집회를 이곳 광장에서 연일 열었다. 광주사람들에게 전남도청은 항쟁의 본부였고 그 앞의 분수대를 연단으로 한 광장은 각종 집회를 열며 두 손 번쩍 들며 함성을 외치며 항쟁의 의지를 불태웠다.

첫 시민시장으로 선출된 윤장현 광주시장은 시민과의 소통을 강조하면서 디자인자문단회의, 금남로광장 워킹그룹회의 등을 통해 문화전당앞 민주광장과 금남로 1~3가를 연결하는 보행환경 개선사업을 통해 전체를 광장 개념으로 접근하는 광주명품길 사업을 추진 중이다.

시청, 시민중심 공익형 광장 변모

광주시청앞 광장은 시청사 1층과 시청앞 광장을 연결하는 ‘시민숲광장’을 지난 7월부터 문을 열었다. 시는 지난해 7월 아이디어 구상단계부터 시민들의 의견수렴과 토론회, 리서치, 전문가 릴레이 워크숍 등을 거쳐 제시된 총 1,192건의 다양한 의견을 토대로 종합계획을 확정했다.

시는 시청사 1층을 시민들이 머물고 이용하는 시민공간과 함께 공익적 기능을 수행하는 공간으로 특화하며 시청앞 광장을 연결하여 시민들이 머물고 싶은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열대야가 극심했던 8월 7일부터는 시민들을 위해 시청앞 잔디광장에서 텐트를 설치하여 시민들에게 색다른 추억을 만들어 주고 있다.

한 여름 무더위에 지친 시민들에게 휴식을 제공하고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한 ‘열대夜 친구야 같이 놀자’라는 프로그램으로 시청사 내·외부 공간을 시민들에게 개방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밖에도 영화상영, 어린이 자전거 대여, 문화콘서트 등의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광복70주년을 의미 있게 기념하자는 뜻으로 이곳 광장에 김구, 안중근, 윤봉길, 유관순 열사의 사진과 그 주위에서 많은 태극기 물결이 출렁이고 있다. 시를 찾는 시민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대한민국’의 애국심이 절로 나오게 만들었다.

윤 시장은 시청사와 광장을 최대한 시민들에게 돌려주겠다는 생각이다. 아직은 시민활용이 많지는 않지만 다양한 시민모임공간이 만들어져 다양한 행사를 치를 수 있다는 점에서 ‘시민광장’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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