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시대 광장문화8, 마드리드 마요르광장
소통의 시대 광장문화8, 마드리드 마요르광장
  • 마드리드=정인서 문상기 기자
  • 승인 2015.10.15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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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의 심장처럼 뜨거운 곳
건물로 둘러싸인 널찍한 광장에 낭만을 보듬어
타파스와 와인 한 잔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듯
▲ 마드리드 마요르광장에는 관광홍보부가 사용하고 있는 카사 데 나 피나데리아 외벽에 프레스코 벽화가 아름답다.

광장이라면 탁 트인 모습을 연상한다. 솔광장이 그러했다. 하지만 마요르(Mayor)광장은 사방이 건물들로 둘러싸여 있다. 마요르광장은 광장이라고 그 이름을 붙일 수 있을 만큼 무척 넓었다. 주변 건물들은 대부분 4백년 정도 되는 건물들이었다.
마요르광장은 처음 아라발광장으로 알려진 곳에 낡은 집들이 광장 주위에 불규칙하게 지어졌으며 서민적이고 대중적인 공공장소였다. 1561년 펠리페2세가 마드리드왕궁으로 거처를 옮긴 후 건축가인 후안 데 에레라(Juan de Herrera, 1530~1593)에 의해 마요르광장이 설계되어 1580년부터 확장 및 정리공사를 시작했다. 펠리페3세 때 에레라의 제자인 고메즈 데 모라(Gomez de Mora)가 이어받아 1620년 이시드로 성인 축제 때 광장을 완성했다. 이때 주변 건물들이 4층으로 함께 지어졌다.

▲ 마요르광장이라고 이름을 지은 펠리페3세의 동상이 광장 중앙에서 하늘을 찌를 듯 하다.
9개의 문이 있는 스페인의 안마당

마요르광장은 마드리드 합스부르크왕조의 상징이다. 솔광장과 왕궁의 중간 쯤에 있다. 광장 한 중앙에는 동쪽을 향해 펠리페3세의 청동 기마상이 있다. 이 기마상은 1616년에 이탈리아 출신의 바로크 조각가인 후안 데 볼로냐(Juan de Bolonia)가 피렌체에서 그의 수제자인 피에트라 타카와 함께 제작한 것으로 1848년에 이 광장으로 옮겨졌다. 펠리페 3세가 이 광장의 이름을 부여한 왕이다.
그동안 이 건물들은 1631년, 1672년, 1790년에 3번이나 화재를 겪었다. 그 때마다 개보수를 거듭하면서 마지막으로 후안 데 비아누에바(Juan de Villanueva)가 공사를 맡아 1854년에 완성하였다. 현재의 광장은 9개의 아치를 갖춘 129m × 94m의 직사각형 모양이며 건물은 5층으로 증축되었고 1953년 다시 개장한 이후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옛날에는 이 광장에서 왕가의 의식을 치르기도 했지만 종교재판을 통해 죄수에 대한 화형을 하는 역사적으로 잔인했던 기록을 갖고 있다. 아라곤왕국의 페르난도2세와 카스티야왕국의 이사벨1세는 부부이면서 800여년의 이슬람 통치를 벗어난 이후 이슬람을 상대로 국토회복운동의 명분을 세우기 위해 1480년부터 이곳 마요르광장에서 잔인한 종교재판을 벌였다는 것이다.
이슬람이 지배했던 시절에는 가톨릭, 유대교 등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종교의 자유가 있었던 반면 가톨릭이 지배하는 시절에는 이슬람이나 유대교는 핍박을 받아 쫓겨나거나 사형을 당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당시 왕은 이들을 사악한 이단자 집단으로 만들어야 전쟁의 명분을 세우고 교황청과 유럽 대륙을 지지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종교재판은 1700년까지 계속되었다. 기록상으로는 4만4,000여명이 재판을 받았고 800여명 이상이 처형당했다고 한다. 기록을 찾지 못했거나 기록에 남지 않은 재판과 처형은 분명 더 있었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또한 투우를 비롯해 각종 축제의 장소로도 다양하게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매년 5월 15일을 전후해 마드리드 시의 수호성인인 이시드로를 기념하는 성 이시드로축제가 벌어진다. 작가인 고메스 데 라 세르나(Gomez de la Serna)는 이곳을 ‘스페인의 안마당’이라고 표현했다.

▲ 마요르광장의 밤은 와인 한 잔으로 낭만을 즐기는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잔인한 종교재판에서 시민광장으로

마요르광장에서는 시내의 어느 방향으로든 갈 수 있는 9개의 문과 길이 이어져 있다. 또한 광장 쪽으로 난 건물들의 창문과 발코니는 237개에 달한다고 하나 세어보지는 못했다. 이 발코니에서는 이 광장에서 일어나는 왕가의 의식부터 화형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들을 지켜볼 수 있었다.
직사각형 모양의 마요르광장은 생각보다 쉽게 찾을 수 없는 곳에 있다. 취재진도 처음에 지도를 보고 찾아갔지만 놓쳤다. 광장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산미구엘시장이나 다른 여러 거리에서 마치 좁은 골목과 같은 통로를 지나야 한다.
마요르광장은 건축학적으로 동질성과 통일성이 뛰어나 인상적이고 매력적이었다. 바로크양식의 건물에 들어선다기보다는 마치 거대한 저택의 좁은 복도를 지나 널찍한 안마당으로 들어서는 느낌을 주었다. 또 유럽 건축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케이드는 주로 중세 후기의 건축 유산으로 알려져 있다.
취재진은 마드리드에 도착한 날 저녁, 다음날 낮, 그리고 또 저녁에 이곳을 발을 들이 밀었다. 갈 때마다 분위기가 달랐다. 특히 주말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은 더욱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외식을 하는 일들이 많아 주말엔 더욱 붐빈다고 한다. 마드리드를 찾는 사람이면 누구나 낮에는 이곳에서 사진을 찍고 밤에는 타파스(tapas)를 골고루 시켜 와인 잔에 술을 담아 낭만을 즐기는 공간이 된다.
다만 마요르광장이라고 써진 북쪽의 대표적인 건물은 광장 공사 때 처음 지어진 바로크시대 후기의 건물로 두 개의 탑이 있고 깃발들이 휘날렸다. 이 장소에는 제빵사들의 길드가 있었던 곳이다.
이 건물 카사 데 나 피나데리아(Casa de la Panaderia)는 창문을 제외한 외벽에는 프레스코 벽화가 그려져 있다. 카를로스 프랑코가 1992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키벨레(Cybele), 바쿠스(Bacchus), 큐피드(Cupido) 등의 모습을 담은 그림들을 그리도록 했다고 한다. 이 벽화 가운데 열매를 따먹는 곰 그림이 있는데 솔광장에 있던 커다란 곰 조각상과 관련이 있을 듯하다.
마드리드는 ‘산딸기와 곰의 마을’이라고 한다. 도시가 건설될 때 사람들이 마을 산등성이 올라 마드로뇨 나무를 붙잡고 열매를 먹는 곰을 보고 마드리드라는 이름과 나무의 이름이 비슷하므로 이 둘을 도시를 상징하는 문장으로 삼았다고 한다.

▲ 마요르광장 두 편은 보수공사 중이어서 예전모습의 그림을 넣은 가림천을 해놓았다.
100년 이상 전통상가엔 인증동판

건물 외벽이 너무 낡아 당시에 공모사업을 통해 그림을 넣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다른 건물들은 그림이 없고 단순한 색으로만 되어 있어 대조적이었다. 북쪽 시계탑 벽면에는 <돈키호테>를 탄생시킨 스페인의 대문호 세르반테스의 초상이 새겨져 있었다. 현재는 정부 소유로 관광홍보부가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 건물 맞은편은 카사 데 라 카르니세리아(Casa de la Carniceria), 즉 시청 소유로 호텔이 될 예정이라고 한다. 취재진이 이곳을 찾아갔을 때는 동쪽과 남쪽 건물들은 또다시 개보수 공사를 하는 지 건물 전체가 원래 건물 모습과 유사한 그림을 그려 넣은 가림막천을 쳐놓았고 광장 쪽에는 가림판을 세워놓았다.
광장 북동쪽에는 공사 때문에 임시로 마련했는지 컨테이너 2개쯤 연결한 공간에 여행정보센터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지금은 대부분 건물의 1층의 레스토랑과 술집들이 즐비했고 카페테라스가 있어 시민들이나 관광객들이 휴식장소로 사용하기에 적당했다.
광장 남서쪽의 모퉁이에 있는 아치형 입구인 아르코 데 쿠치예로스(Arco de Cuchillerors)로 빠져나가면 옛날 시장을 볼 수 있다. 19세기에 지은 철골구조물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산 미구엘(San Miguel)시장이 1916년 문을 연 이래 마드리드시민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시장이었다. 지금은 내부가 현대화되어 시장이라기보다는 30여개의 스탠드형 술집 같은 분위기였다. 일요일부터 수요일까지는 밤 12시에 문을 닫지만 금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새벽2시까지 영업을 한다.
지금은 구조물은 그대로 둔 채 통유리로 덮어 고급 술집처럼 변했고 앉아서 또는 서서 술이나 가벼운 음식을 먹는 사람들로 무척 붐볐다. 이곳만이 아니라 어느 레스토랑이나 술집이든 붐비는 곳이면 안이든 밖이든 서서 이야기를 나누며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다. 의자가 없다고 해서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또한 시장 왼편을 따라 내려가면 약간은 곡선형의 건물과 함께 버섯요리는 전문으로 하는 메손(Meson)이라는 술집들이 줄을 지어 영업을 했고 어느 곳이나 맥주나 와인, 특히 와인과 얼음, 오렌지 조각을 넣어 만든 상그리라를 마시는 이들로 북적거렸다.

▲ 헤밍웨이가 즐겨 다녔다는 보틴 레스토랑
헤밍웨이가 즐겨 찾은 레스토랑

특히 이곳에서 유명한 것은 전 세계 인사들이 마드리드에 오면 반드시 찾는다는 레스토랑 보틴(Botin)이다. 1725년에 문을 연 보틴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 된 레스토랑으로 기네스북에도 올라 있다. 소설가 헤밍웨이가 칭송한 이곳은 그의 소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서 “우리는 보틴에서 식사를 했다. 이곳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레스토랑 중 하나이다. 우리는 리오하를 곁들여 구운 코치니요(Cochinillo)를 먹었다”는 구절이 있다.
헤밍웨이의 한 구절 덕분에 마드리드의 보틴은 명소가 되었고 그가 언급한 코치니요 또한 최고 인기메뉴가 되었다고 한다. 보틴의 오븐은 300년째 계속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레스토랑 앞에는 동판이 박혀 있다. 길을 걷다 보면 몇몇 레스토랑과 이발소 정문 앞 인도에 이 같은 동판이 있었다.
시에서 전통이 있고 모범적인 점포로 100년 이상 영업을 해온 경우 인증동판을 붙여준다고 했다. 광주에서도 백년까지 된 점포들이 많지 않아 아쉽다. 이런 정도 수준의 점포가 있다면 동판을 붙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 카페테리아의 주인은 우리가 중국인으로 생각하고 중국말로 말을 건넨다. 그래서 코리아라고 했더니 얼른 알아듣지 못한다. 꼬레아라고 하니 알아듣는 듯 했다.
 

▲ 현대식 팝 비어 술집 등으로 변한 산 미구엘 시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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