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미술 잊힌 현장들 9-요코하마. 계획된 도시 속의 공공미술
공공미술 잊힌 현장들 9-요코하마. 계획된 도시 속의 공공미술
  • 일본 요코하마=정인서 권준환 기자
  • 승인 2014.10.28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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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계획과 공공미술, 상업이 만나 관광자원 창출
시민수준 높이면서 차근차근 시민 참여시켜야

취재진은 도카마치(十日町)시에서 시바야마 유미(芝山 祐美)씨의 친절 덕분에 방대한 지역에 걸쳐 분산 전시돼 있는 에치코쓰마리 공공미술작품들을 둘러볼 수 있었다. 한참동안 우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마중하던 시바야마 씨를 뒤로 하고 요코하마(橫浜)시로 향했다.
일본이 자랑하는 세계 최초의 고속철도인 신칸센(新幹線)을 타고 이동했는데, 도카마치와 요코하마 사이에는 고지대가 많아 귀가 먹먹한 경우도 더러 있었다. 해가 넘어가며 노을이 질 때쯤 출발해 약 3시간 30분 정도 걸려 요코하마역을 거쳐 JR간나이(関内)역에 도착하니 늦은 밤이 됐다. 취재진은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일정 덕분에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녹초가 돼 쓰러졌다.

개항 200주년 꿈꾸는 타임캡슐

요코하마는 가나가와(神奈川)현에 위치한 항구도시다. 임해공원인 야마시타 공원(山下公園)과 일본에서 가장 높은 랜드마크 타워 빌딩, 그리고 차이나타운 등으로 유명하다.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인해 시가지와 항만시설 등이 모두 무너졌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공군의 폭격으로 시가지의 절반이 파괴되는 등 상처가 많은 도시다.

요코하마에 도착한 다음날 아침, 취재진 통역 담당인 마성웅 요코하마시립대학 도시사회문화연구과 연구원이 생각보다 좀 늦었다. 인터뷰 일정 조율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었다. 당초에 약속이 되어 있었지만 상대방 사정에 따라 수시로 바뀌곤 했다.

우리는 이날 오전 숙소에서 나와 요코하마의 항구와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말리 좀 통하지 않았지만 소화(昭和) 58년생으로 우리 나이로 32살의 젊은 가이드인 李萌의 안내로 요코하마 스타디움이 있는 요코하마 공원 옆길을 따라 10여분을 걸어 나가자 넓은 바다와, 지붕에 잔디가 깔린 오산바시(大橋) 국제여객선 터미널이 보였다. 거대한 배 모양의 여객선 터미널 위로 초록색 잔디가 깔려있으니 굉장히 세련되게 느껴졌다.

오산바시 부두가 바로 보이는 조노하나(象の鼻) 테라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한 쌍의 젊은 연인, 손을 잡고 애완견과 함께 산책중인 노년부부,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누워 바닷바람과 햇살을 즐기는 젊은 남성에 이르기까지 참 한가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오죽했으면 한쪽 벤치에 누워있던 노숙자마저 한가로워 보였을까.
바다를 오른쪽에 끼고 이 작은 공원을 걷고 있는데, 기념비 하나가 눈에 띄었다. 조노하나 테라스는 개항 150주년을 기념하며 개방된 공원으로서, 요코하마의 캐릭터 타네마루(たねまる)가 기념비와 함께 서 있었다. 단순한 기념비뿐만 아니라, 개항 200주년을 꿈꾸는 타임캡슐도 함께.

철저한 계획도시로 재설계 작업

마성웅 씨와 약속한 시간이 되어 간나이 역으로 이동했다. 함께 먼저 찾은 곳은 요코하마 시청이었다. 시청에 들어서자마자 어디선가 청아한 소리가 들려왔다. 목탁소리 같기도 하고,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같기도 했다. 로비 천장에 매달린 대나무로 만들어진 모빌들이 내는 소리였다. 모터가 돌아가며 대나무끼리 부딪히고, 종이 울렸다. 한 걸음 간격으로 천장에 가득 매달려 있었지만, 나무로 만들어져서 그런지 보고, 듣는데 부담이 없었다.

마성웅 씨는 요코하마라는 도시가 지진과 전쟁으로 인해 무너진 도시를 철저한 계획 아래 다시 일으켜 세웠다고 말해줬다.
장기적 관점으로 도시를 설계했으며, 설계된 것은 변경하지 않고 고수했다. 이 구역에는 이러한 콘셉트의 건물을 짓겠다고 공모를 내고, 할 사람이 없으면 무리하게 진행하지 않고 그냥 놔두었다. 때문에 요코하마를 ‘설계된 도시’라고 한다.
또한 도시계획과 공공미술이 만나고, 미술과 상업이 이어져 ‘Bank ART’라는 관광자원이 만들어 졌다. 실제로 요코하마 시내 곳곳에는 물을 활용한 수변 공간, 알록달록 화려한 색으로 꾸며진 의자, 한 가족을 형상화한 철제 미술품 등 다양한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Bank ART Studio NYK(이하 뱅크아트)’의 오사무 이케다(池田 修)대표와 약속한 시간이 되어 그곳으로 이동했다. 오산바시가 바로 보이는 바닷가에 위치한 뱅크아트는 요코하마 도심부 재생의 기점이 되는 프로그램으로 시작됐다. ‘도시에 서식한다는 것’을 이념으로 지속적으로 활동해오고 있는 시민문화단체였다.

뱅크아트 입구는 보통 사람들은 찾기 어려웠다. 큰 길가에 있지만 사실은 좀 널찍한 골목 안으로 들어가 있는 옛 부둣가 창고 건물을 문화시설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안으로 들어가자 지난 5월부터 뱅크아트에 근무한다는 한국인 직원 정진애씨가 내부에 위치한 카페로 안내했다. 

그가 먼저 준 자료를 보니 ‘도시에서 사는 것’이 아닌 ‘서식하는 것’이라 한 이유는, 관습에 의해 길러진 도덕이나 제도가 아니라 동물적인 감각을 통해 능동적으로 도시와 관계 맺고자 하는 의식적인 표현이라고 했다. 또한 요코하마 지역 레스토랑과 주택, 공공건축, 공터와 빈 건물, 역사적 건조물 등 다양한 장소와 사람들과의 관계를 구축해 가는 것이 뱅크아트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지향점이었다.

오사무 이케다, "영향보다는 영감을 준다"

바다와 인접한 뱅크아트 테라스의 테이블에는 사람들이 두세 명씩 모여 앉아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잠시 후 오사무 대표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사무 대표는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심포지엄에 참가한 적이 있다”며 “최근에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전람회를 하고 싶다는 요청이 오는 등 광주와는 꽤 많은 소통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생이나 대학원생과 연관된 프로그램이 있냐는 질문에 “대학측과 교류는 많이 했다. 국내외 재단이나 학생들과의 교류를 통해 한국에서도 많이 오고 많이 간다. 동아시아문화도시로 지정된 광주뿐만 아니라 부산이나 인천과도 교류가 있다”고 답했다.
광주에서 초대한다면 올 의향이 있냐고 묻자 그는 “광주는 파트너로서 좋은 관계이기 때문에 물론 초대해주면 갈 것이고, 또한 초대할 것이다”고 밝혔다. 문화도시를 꿈꾸는 광주라면 시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공식적인 국제교류를 진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오사무 대표는 요코하마의 공공미술이 시민들에게 아직까진 크게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요코하마 시민들에게 영향을 주기보다는 다른 국제도시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 같다는 것이다. 자신은 정치가가 아니기 때문에 시민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힌트’뿐이라고 했다. 시민들에게 영감을 주면 요코하마 시의 높은 사람들(정치인이나 기업CEO 등을 말하는 듯하다)이 이런 것을 해야겠다고 생각이 바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시민들이 체감하기에는 아직 멀었다”며 “원래는 시민들과 해야 하지만, 현재는 전문가와 하고 있다. 처음부터 시민들의 눈높이에서 하면 작품수준이 낮아진다. 따라서 시민들의 예술에 대한 수준을 높이면서 차근차근 공공미술에 시민들을 참여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 시민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트뱅크가 크게 두 가지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먼저 국제적인 문화의 발신이고, 두 번째로 일반 시민들에 대한 문화의 발신이라는 것이다.
오사무 대표와의 면담에 자리를 함께 한 무라카미 하루미(村上 温美) 요코하마시 동아시아문화도시 홍보담당은 “광주비엔날레를 봤는데, 요코하마 트리엔날레보다 좋았다”고 칭찬했다. 하지만 이어서 “예술품 하나하나의 수준은 높았지만, 창조도시라는 콘셉트와는 맞지 않았던 것 같다”고 쓴 소리를 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뱅크아트 내부에서 현재 전시되고 있는 작품들을 둘러본 후 떠날 때가 되자 오사무 대표는 다음에 시간이 있으면 또 들르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KiRiKo, 니코홀릭에 빠져보세요

어느새 땅거미가 지고 하늘은 어둑어둑해졌다. 취재진은 숙소로 향하는 길에 바다를 끼고 도는 산책로를 걸어봤다. 다리 위의 폐선 부지를 활용한 길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파스텔 빛의 아주 약한 조명들만이 길을 비추고 있었다.

사람들의 얼굴까지 자세히 보이지는 않고 형체만 보였다. 밤에도 대낮처럼 환한 한국의 조명과는 아주 달랐다. 마성웅 씨는 요코하마의 야경을 망치지 않기 위해 일부러 약한 조명을 설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라카미 홍보담당은 마침 이날 저녁 숙소 근처에 있는 차이나타운 요코하마박람관 3층 테라스에서 이벤트행사로 공연이 있으니 참석해달라고 했다. KiRiKo(桐子, http://kiriniko.com/)라는 현재 대학에 다니고 있는 여학생의 연주회였다. 그녀는 6세 때부터 중국 악기인 얼후(二胡)를 배우기 시작해 12세 때부터 대중연주를 시작한 신동이라고 했다.

그녀는 2008년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주석이 참석한 '일중청소년우호교류해 개막식'에서 연주를 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후 2011년 중국정부 전액 장학금유학생으로 1년간 중국 최고의 음악대학인 북경의 중앙음악학원에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녀의 신들린 연주에 빠진 취재진은 언젠가 그녀를 광주로 불러와 연주회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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