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미술 잊힌 현장들 7-가나자와를 살리는 현대미술관
공공미술 잊힌 현장들 7-가나자와를 살리는 현대미술관
  • 일본 가나자와=정인서 권준환 기자
  • 승인 2014.10.16 06: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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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미술관’ 누구나 즐기는 공공미술 공간
선진 시민의식도 관광객 만족에 한 몫 해

가나자와(金沢). 일본 이시카와현(石川縣)에 속해있는 도시다. 아사노강(浅野川)과 사이강(犀川), 2개의 강이 흐르고 있으며 그 사이에 가나자와성을 중심으로 성 아래 형성된 성하마을(城下町)이다. 성 주변에는 겐로쿠엔(兼六園)이라는 커다란 정원이 자리잡고 있으며, 성 위쪽으로는 히가시차야가이와 카즈에마치 등 전통적인 역사적 건축물이 밀집해 있다.

가나자와는 한때 장인들을 데려와 독특한 전통공예 제품을 생산해 각광받았었다. 1500년대 후반 에도시대 지역 영주였던 마에다 가문이 가나자와만의 독특한 상품을 만들고자 했기 때문이다. 마에다 가문의 노력은 고급 장인들을 배출하는 성과를 낳으며 전통공예 분야에서 성공적인 지역으로 발전했다. 이 때문인지 공예 분야의 유네스코창의도시로 인정받은 곳이다.

가나자와의 대표명소, 21세기 미술관

취재진은 일본 고마쓰(小松)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버스를 타고 가나자와 시로 향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일본의 풍경을 감상할 여유도 없이 잠깐이나마 달리는 버스 안에서 잠이 들었다. 새벽 2시부터 광주에서 시작된 일정으로 인해 잠을 청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40분을 걸려 도착한 가나자와 역은 경이롭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훌륭했다. 역 주변의 수변시설은 무척이나 잘 조성돼 있었고, 쓰레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가나자와역 동쪽 광장 입구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대형 조형물과 천정을 뒤덮는 유리와 철제골조는 보자마자 감탄이 터져 나오게 만들었다.

인구 45만 명뿐인 도시의 역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였다. 내년 봄이면 신간선이 들어온다는 홍보안내판이 150일 남았다고 알려주고 있었다. 취재진은 우선 짐부터 풀고 가나자와 시의 대표적 명소인 ‘21세기미술관’으로 향하기로 했다. 미리 위치를 파악했다지만 초행길이라서 쉽사리 호텔을 찾기 어려웠다.

일단 가나자와 지도를 보거나 역 주변의 안내지도판을 찾았지만 호텔은 표시되지 않았다. 주민들에게 물어물어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길을 물을 때마다 가나자와 주민들은 길을 멈추고서 친절히 알려주었다. 자신이 모르면 핸드폰으로 검색해 끝까지 알려주는 것을 보고 선진 시민의식에 대해 또다시 절실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호텔에 짐을 푼 취재진은 호텔 직원으로부터 버스 노선을 안내받고 21세기미술관으로 향했다. 일본의 버스는 한국과는 반대로 뒷문으로 탑승하고 앞문으로 하차했다. 버스에서 내려 미술관으로 향하는 길바닥에 가나자와 성과 성을 둘러싸고 흐르는 강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작품이 아니라 소화전이었다. 이런 작은 부분까지도 많은 신경을 썼다는 것이 느껴졌다.

공공개방, 동시대성 강조하는 미술관

21세기미술관에 미리 연락을 취해 아키모토 유지 관장과 인터뷰를 진행하려 했었다. 하지만 취재진이 이곳을 찾아가는 날엔 부재중인 관계로 고타로 우라카미(浦上 光太郞) 이사장이 직접 일행을 응대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1970년대 초, 도심에 위치해 있던 현청, 초등학교, 중학교, 국립가나자와대학이 교외로 이전하면서 도심공동화 현상이 심각해졌다. 민·관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논의한 끝에 미술관 건립이라는 대안을 도출했다.
하지만 기존에 있던 이시가와현립미술관과 중복되는 부분이 있지 않느냐는 논란이 일었다. 또한 현대미술 전시가 과연 관광객을 끌어 모으고 경제적으로 효과가 있지 않을 것 같다는 의견도 분분했다.

이처럼 논의가 있은 지 30년 만인 2004년 10월, 결국 현대미술전시관인 ‘21세기미술관’이 문을 열게 된다. 취재진이 찾아간 때가 마침 10주년을 맞아 미술관측의 전시 행사가 분주한 듯 했다.

21세기미술관은 3가지 목표가 있다고 소개했다.
첫 번째로 공공에게 개방한다는 것이다. 정원이나 공원처럼 누구나 쉽게 이곳을 찾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목표다. 우라카미 이사장은 “우리 박물관은 새로운 ‘지역광장’으로서의 역할이 기대되고 있다”며 “시민과 산업계 등 다양한 조직과의 연계를 도모함으로써 새로운 미술관 활동을 전개할 것이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로 동시대성을 강조하는 작품전시를 주로 진행할 것이라는 점이다.
우라카미 이사장은 “21세기 미술관은 세계의 ‘현재(지금)’와 함께하는 미술관이다”며 “세계 동시대의 미술표현과 시민이 함께하는 장소를 제공하는 역할을 다 할 것이며, 다양한 표현이 나타나고 있는 예술활동을 접하고 체험함으로써 지역사회와 미래 창조의 가교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인구 45만 작은 도시, 150만명 넘는 관광객 찾아

세 번째로 젊은 세대의 작가들을 지원(support)하는 전시기능을 하겠다는 것이다. 단순히 물질적인 지원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발전할 수 있는 기본 틀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21세기미술관은 전시품들이 안으로 들어가는 기존의 미술관 구조와는 달리 밖으로 꺼내놓으려 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우라카미 이사장은 “우리는 이 미술관이 다른 미술관과 차별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다”며 “둥그런 전체 건물의 외벽을 유리로 둘렀는데, 이는 의도적으로 개념을 달리해 차별화시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대부분의 미술관들이 전통적인 방법만 고집해 내부에서 보여주려고 급급했던 반면에, 우리는 디스플레이 형식부터 과감하게 보여주는 구조로 작품들을 밖으로 꺼내고자 했다”고 밝혔다.

미술관이라는 무게감을 떨쳐버리려 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1세기미술관 밖에서는 어린이들이 뛰어다닌다. 미술관에 작품을 감상하러 온 것이 아니라 마치 공원이나 놀이터에 놀러온 것 같다. 공공미술의 참모습을 보는 듯 했다.

우라카미 이사장은 “미술관이라는 공간이 주는 중압감보다는 아이들도 편하게 와서 놀 수 있게 하고 싶었다”며 “미술관 내부 공간도 개방해 3분의 1 정도는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했다”고 전했다.

또 21세기 미술관의 최대 장점으로 동 서 남 북 어느 곳에서나 미술관 내부로 들어올 수 있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인구 45만의 작은 도시지만 가나자와 시 전체 인구의 3배가 넘는 150만 명이라는 관광객이 매년 이곳을 찾는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로 인해 연간 4천억원의 경제파급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우라카미 이사장과의 인터뷰가 끝나고 나치 야카야마(中山 なち) 21세기미술관 홍보담당이 취재진을 안내하며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해줬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The Swimming Pool(2004)’이었다. 지상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수심이 깊은 수영장처럼 보이지만 사실 물은 10Cm정도만 차있고 아래는 사무실로서, 물속을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 작품이다.

미술관 부지, 광주폴리 연상케 하는 작품 눈길

21세기 미술관은 2만 7천㎡ 부지 위에 건축가 세지마 가즈요(Kazuyo SEJIMA) 씨와 니시자와 루에(Ryue Nishizawa)씨의 팀 'SANAA'가 외벽이 유리로 된 1층의 원통 건물을 설계했다.

야카야마 씨는 ‘SANAA’팀이 이 건물을 설계함으로써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고 설명했다.
21세기미술관 일정을 마치고 취재진은 시가지 주변을 천천히 둘러봤다. 도심 곳곳에는 광주폴리를 작품을 연상케 하는 대형 공공미술 작품들이 눈길을 끌었다. 취재진은 시간 여유가 생겨 가나자와의 작가들이 집단으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는 시민예술촌을 찾아가기로 했다.

다시 상점 종업원에게 길을 물었다. 그는 지도를 한참 뒤지고 나이 든 주인에게 묻곤 하더니 버스를 타고 가나자와 역 서쪽 광장에서 내리면 가까운 곳에 있다고 했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가나자와 역 서쪽 광장으로 갔다. 가나자와 일본어 글씨를 상징하는 대형 조형물이 다시 한 번 놀라게 했다.

횡단보도에서 교통안내를 하는 분에게 시민예술촌을 물었다. 그는 한참 생각하더니 우리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멀리 떨어진 택시기사에게 달려가 길을 알아보고 나서 안내해주었다. 이곳에서 20분쯤 걸어가면 있다는 시민예술촌이 있다며 손으로 길을 안내했다. 그러나 우리는 시민예술촌을 찾아가다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그때 자전거를 타고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던 젊은 남성을 만나 길을 물었다. 그는 기가시 겐또(東 健太)라는 이름의 22살 청년이었다. 한참동안 핸드폰으로 길을 검색하던 그는 ‘시민예술촌’을 확인하고 우리에게 “Come on!”이라고 말했다. 직접 데려다 주겠다는 것이었다. 약 20분 정도 걸어 우리를 안내했다.

하지만 결국 그가 우리를 데리고 간 곳은 가나자와 역에 있는 파출소였다. 자기 딴에는 자신도 잘 모르니 자세히 안내해 줄 수 있는 곳으로 데려다 준 것인데 우리에게는 한 바퀴를 돌아 제자리로 온 셈이었다. 결과가 어떠하든 간에 그 마음만은 참 고마웠다.

가나자와시의 풍경은 오래된 전통의 일본 마을 모습을 간직했다. 그러면서도 곳곳은 현대적 건축물과 공공미술 작품들이 분리되어 있지 않고 서로 융합한 듯 어울려 거부감이 없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취재진이 볼 수 있었던 작품들은 주변 건물들과 잘 어울린 듯 했다.

▲취재진 일행이 21세기현대미술관을 찾은 날, 조윤성 조선대 교수와 대학원생을 만나 함께 고타로 우라카미 이사장과 기념촬영을 했다. 이사장은 전 주에도 장석원 전북도립미술관장(전 전남대 미대 교수)도 다녀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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