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미술 잊힌 현장들 5-대전 군산, 도시재생 아닌 삶의 동력 찾는 희망
공공미술 잊힌 현장들 5-대전 군산, 도시재생 아닌 삶의 동력 찾는 희망
  • 정인서 문상기 기자
  • 승인 2014.10.02 04: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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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노숙자 공간 페인팅으로 쾌적한 느낌 주려
군산, 새로운 공간체험 다른 장소로 확산되는 듯
▲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로 유명해진 초원사진관이 이제는 공공영역으로 자리잡았다.

노숙자들의 공간, 그리고 산등성이 판자촌의 모습에서 희망을 찾으려 했다. 공공미술은 소외지역의 삶의 희망을 주기 위한 차원에서 시작된 정부 공모형 미술사업이다.
그러나 대전 홈리스센터와 군산 해망동 일대는 이제 그 희망은 없어보였다. 이는 이번 취재 도중 잠시 들렸던 옥천군의 ‘향수30리’ 공공프로젝트도 사람들에겐 회자되곤 있지만 지금은 처참하리만치 폐허가 되었던 점에서도 이를 반증하고 있었다.
대전홈리스센터는 노숙자들의 공간이다. 지금은 노숙자지원센터로 이름을 바꿨다. 건물은 3층 규모이지만 각 층이 그리 커 보이지 않았다. 김태연 팀장을 만났다. 당시 프로젝트의 신청자는 이 센터의 김정민씨였지만 김태연 팀장이 당시 상황을 잘 안다며 기자 일행을 안내해주었다.
대전홈리스센터는 대전 역세권 주변의 노숙자들을 위해 열려있는 응급구호센터의 역할을 하고 있다. 다만 건물이 노후화되어 있고 인테리어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열악한 환경으로 그들에게 제대로 된 환경지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김 사무국장은 “벽면 자체가 되게 노후하고 보기가 안 좋았죠. 그러다보니깐 이곳에 오는 노숙자들도 결코 좋지는 않았을 것 같구요. 저희도 그렇고 약간 으슥하고 이런 느낌을 오히려 받았던 상황이었어요.”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서 당시 환경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지금의 센터 내부가 확연하게 바뀐 모습은 아닌 것 같았다. 칙칙했던 내부 공간에 페인팅을 통해 깔끔하고 화사하게 바꾸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이라도 좋은 느낌을 주려했다 게 그의 설명이다.

▲ 대전노숙자지원센터 윗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에 아트인시티의 그림 흔적이 남아 있다.
쪽방촌 사람들의 변화를 기대하며

이처럼 공공미술은 특정 지역이나 공간의 문제와 연계되어 있다. 이 센터의 경우 내부 공간에 나무와 꽃 그림을 장식을 했다. 화려하지도 않으면서 약간의 변화를 주었다. 계단을 타고 올라가는 공간에도 그림을 그렸다.
이곳에서 뒷골목으로 돌아 100여m 쯤 떨어진 곳에 파랑새 둥지가 있다. 거리에서 힘든 생활을 하고 있는 20여명이 일자리를 찾아 자립할 때까지 기거하는 공동체의 비좁은 공간이다. 그리고 대전역에서 센터로 이어지는 쪽방촌 골목은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디좁은 골목길과 쪽방, 사창가, 여인숙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홈리스가 꾸미는 홈은 공공미술의 개입을 통해 센터와 파랑새둥지 그리고 이를 연결하는 골목길 등을 쾌적하게 변화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 과정에서 노숙자들도 작가들과 협업하여 자발적으로 참여하거나 미장이나 목수 기술이 있는 노숙자는 임금을 받는 노동자로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쉼터도 만들고 쪽방미술관도 문을 열었다. 김 국장은 “당시에 휴게공간을 좀 만들기도 했고 쪽방 하나를 임대하여 조그맣게 쪽방미술관처럼 운영했어요. 그러나 이 프로젝트 자체가 장기적인 사업이 아니어서 결국은 문을 닫았지요. 하지만 당시에는 좋았어요. 이런 것들이 장기적으로 가면 좋죠.”라고 말했다.
파랑새 둥지로 가는 길에 햇볕을 쐬고 있던 할머니 한 분을 만났다. 이전에 이곳에 그림도 그리고 조그만 미술관도 있었다는 데 생각나느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오래 전에 2층 쪽방 건물이 상당히 긴데 군데군데 그림을 그려서 보기가 좋았제. 일제시대 집도 아직 남아있는데 그때는 사람이 많이 왔지만 요즘도 가끔 와서 사진을 찍어갑디다. 근데 그림은 많이 지워져 버렸는디.”

문화소외층도 문화접근권은 있다

대전홈리스프로젝트는 흔히 말하는 도시재생 차원에서 이루어진 사업이 아니다. 도시재생은 무분별한 도시 확산과 중심시가지의 쇠퇴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도시정책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대전홈리스프로젝트는 노숙자들의 공간, 인근 주변에 약간의 쪽방촌 환경에 페인팅을 하고 약간의 그림을 그렸을 뿐이다.
이 프로젝트는 당시 정세학 감독의 구상은 “홈리스 지원센터를 노숙하는 분들이 밝은 분위기에서 상담하고 쉬어갈 수 있는 곳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사무실 내부 그래픽과 상생을 의미하는 옥상휴게소를 구축했다. 또 파랑새 둥지는 작가들이 그곳에서 살고 있는 분들과 함께 각자의 방을 꾸밈으로써 방마다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면서 원하는 방에서 심리적 안정을 갖는 느낌으로 꾸몄다고 한다.
이 프로젝트에 모니터링을 담당했던 고영직 문학평론가는 “우리 사회에서 쪽방촌이라는 말이 호출하는 이미지는 더 이상 팔리는 존재가 되지 못한 사회적 패배자와 같은 의미로 통용된다”고 했다. 대점홈리스 주변에 거주하는 이들이 사회적 약자라는 신분(?)이 주어져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문화적 권리의식과 자존감 회복에 대한 의지와 욕망마저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고 평론가는 이러한 점에서 “예술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문화소외층의 문화접근권을 신장하기 위해 공공미술이라는 장르개념에 구속되지 말고 여러 예술장르의 자연스러운 결합으로 확대되어야 하고, 참여작가가 사업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주민과의 교감을 통해 원만한 작업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감독과 모니터의 역할에도 불구하고 대전홈리스 프로젝트의 모습은 당시 흔적이 여기저기 조금씩 묻어 있을 뿐 살아있다고 할 수 없다. 이는 구본호(2013)의 <공공미술, 도시의 지속성을 논하다>에서 공공영역의 주요 요건은 문제 제기의 장, 삶의 현장에서 열릴 것, 구성원들이 소외되지 않고 자발적으로 참여할 것, 연대하는 공간 등이라고 밝혔다.

▲ 대전 인근의 옥천군에서도 공공프로젝트로 '향수30리'프로젝트를 벌였으나 지금은 거의 폐혀가 된 채 안내 간판만 뎅그러니 남았다.
해망동, 근현대사의 문화적 퇴적층

군산 해망동 프로젝트로 넘어가보자. 지난 7월 군산을 한 번 방문했을 때 해망동에 관한 인터넷 자료를 보고 이를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차를 몰면서 ‘해망동’을 내비게이션에 입력한 후 아무리 돌아다녀도 공공미술로서의 프로젝트와 관련된 흔적들을 찾지 못해 다음 일정상 포기하고 말았다.
이 사업의 제안자는 군산에서 오랫동안 건축사무소를 운영해온 장종우 대표였다. 바다를 바라본다는 의미의 해망동은 군산의 해안가 산비탈에 자리한 주민들이 있는 곳이다. 주로 어업활동에 종사하고 있지만 인구는 점점 감소하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 때는 급작스럽게 성장한 마을답게 적산가옥이나 해망굴 등 한국 근현대사를 증거하는 다양한 문화유산이 남아있는 곳이다. 마을 앞에 펼쳐진 바다의 풍광과 마을 뒤로 자리한 월명공원은 이 지역을 흔히 보기 어려운 흥미로운 공간이라는 장소성을 부여받고 있었다.
장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장 대표는 이 사업의 제안을 했지만 실제 현장에서 사업을 수행한 감독과 교류하며 영향을 주었던 군산의 공공미술가를 소개해주었다. 그가 알려준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 취재의 의도를 설명했더니 흔쾌히 만나자고 했다. 해망동 인근에는 ‘8월의 크리스마스’ 영화촬영지로 유명한 초원사진관이 있고 인근의 카페에서 만났다.

대학 강의를 나가고 있다는 신석호 작가는 공공미술에 관한 해박한 이야기를 술술 풀어갔다. 군산은 ‘2006아트인시티’ 사업 이전에 민중미술과는 다른 개념으로 공공적 개념에서의 미술활동 작업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서 작가는 다만 “지금의 공공미술의 프로젝트 중심으로 되어 가다 보니까 기금 주고 기금 따먹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면서 “그 중에 그것을 실천적으로 자기 작업과 미학적 과제라든지 이런 것들로 연결시켜서 하는 몇몇 그룹은 성공적인 부분이 있지만 아직은 과도적인 현상으로 봐요”라고 말했다.

▲ 군산 근대골목을 쉽게 돌려면 청년들이 일하고 있는 자전거 인력거를 이용하면 쉽게 다니고 가이드를 받을 수 있다.
공공미술, 실패하면서 새로운 성장

이제 해망동 프로젝트는 그 흔적을 찾기 어렵다. 해안가와 도심을 잇는 해망굴에 진행됐던 작업들은 덧칠을 해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일부 칠이 벗겨진 곳에서나마 그 흔적을 느꼈다. 가장 중요한 공간이었던 산비탈의 집들은 해안도로 확장사업과 해안가 조경사업의 하나로 아예 사라지고 말았다.
당시 해망동 프로젝트가 갖는 장소성은 해망동이 항구로서의 기능은 상실했으나 근현대기 역사적 퇴적층이라는 문화성을 풍부하게 간직하고 있는 곳이었다. 환경적으로 바다와 월명공원을 끼고 있고 자연적인 산비탈 마을이 갖는 적산가옥과 자생적인 계단과 미로형 골목은 그 자체로 새로운 공간체험을 불러일으킨 곳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공간체험은 다시 할 수 없게 되었다. 많은 프로젝트들이 장기적인 비전을 갖지 않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이다. 아니면 정부 부처간의, 정부와 지역 지방자치단체와의 협력적 소통관계가 부족한 데서 나온 결과라고 하겠다.

한 쪽에서 새롭게 경관작업을 하고 있으면 한쪽에서 이를 다시 부수고 다른 작업을 하는 일들을 우리는 비일비재하게 봐왔다. 그 이유는 장기적인 비전을 마련하지 않은 채 의사결정권자의 즉흥적인 판단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사례 때문이다.
구본호는 이런 점에서 문제를 지적한다. 즉 전통적 공공미술이 공공의 개념을 장소와 관련시켜 작품을 만들고 소통하여 그것을 바라보는 수용자, 대중(또는 지역주민)의 취향을 반영하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대전과 군산의 프로젝트가 그런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렇다고 이들 프로젝트가 실패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우선 장소에 맞는 작품으로 지역공동체와 관람객의 참여, 일시적 작업 등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서 작가는 무엇이든 영속한 것이 없다는 관점에서 보면 다만 지속성의 시간적 길이가 부족했을 뿐 아트인시티 프로젝트는 지역의 기억에 남아 다른 곳에서 다른 작품으로 반영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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