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미술 잊힌 현장들 4 광명 부천 남양주-사라지거나 바뀌거나 변화되거나
공공미술 잊힌 현장들 4 광명 부천 남양주-사라지거나 바뀌거나 변화되거나
  • 정인서 기자
  • 승인 2014.09.25 15: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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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미술, 지속성의 다양한 모습 드러내
유지관리 주체 없어 효과성 의문시되어
▲ 광명 철산동 프로젝트의 타일벽화는 대부분 떨어진 채 흉물스럽다

이번 취재는 ‘2006 아트인시티’ 사업 가운데 경기도에 있는 광명, 부천, 남양주 일대를 방문했다. 사전에 지역별로 프로젝트의 신청자나 감독들과 연락을 취했다. 일부는 연락이 됐고 일부는 연락이 되지 않아 메일을 남겨놓기도 했다.
광명 철산동 프로젝트는 이 사업을 제안했던 넝쿨어린이도서관 지킴이 최미자씨와 연락이 됐지만 안현숙 감독은 연결되지 않았다. 최미자씨도 사업 이후로 연락을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토요일(13일) 1시에 만나기로 한 터라 광주에서 부지런히 차를 몰아 5시간여만에 겨우 시간을 맞췄다.
철산동 약속장소까지는 구불구불 곡예운전을 하며 산등성이까지 올라갔다. 전체적인 인상은 판자촌이 있는 광주 양3동 발산마을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최미자씨는 넝쿨도서관으로 안내했다. 가는 길에 아직도 ‘살아남은’ 벽화를 소개했다.

광명, 주민협의 없이 일방적 진행 문제

▲ 최미자 광명 넝쿨어린이도서관 지킴이
절 뒤 담에 황토타일을 붙여놓은 작업하며 아파트 옆의 타일작업은 상당 부분 떨어져 흔적 정도만 남은 상태였다. 특히 손바닥만 한 황토타일 작업은 광주비엔날레에선가 발표하고 남은 재료들을 그냥 붙여놓고 몇몇 학생들을 불러다가 그곳에 그림을 그리거나 붙이기 작업을 했다고 한다.
또 큰 옹벽에 그려진 벽화는 ‘바닷가’ 모습이었는데 지난해 주민들이 우리 동네가 바다와 무슨 관계가 있냐며 시에 요청해 다른 그림으로 바꿨다. 그리고 미장원과 동네 간판 몇 개 그리고 컨테이너 가건물로 노인정을 만들기도 했는데 몇 년 전 관할 구청에서 불법건축물이라며 철거했다.

당시 공공미술 사업은 지역의 현실적인 상황을 반영하지 않고 주민들과의 대화도 별로 하지 않은 채 거의 일방적으로만 진행했다는 것이 최미자씨의 주장이다. 특히 이 사업을 제안했던 최씨는 동네 주민들이 만든 넝쿨도서관을 중심으로 놀이터도 없는 소외된 지역에 도서관다운 인테리어와 뒷마당에 쉼터를 만드는 작업, 노인들의 공간이 필요해 사업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 감독은 도서관에만 국한하지 않고 이를 매개로 마을 전체의 포인트를 줘가며 작업을 진행한다는 구상이었다. 결국 도서관측과 기획자간의 사업에 대한 이해갈등이 발생하였다. 이에 대해 공공미술위원회가 중재자로 나섰으나 도서관측에서 결국 사업포기를 해 사업장소가 철산동으로 확대된 것이다.
최씨가 기자 일행에게 건넨 첫 마디는 이랬다. “저는 공공미술의 공자만 들어도 마음에 썩 편하거나 즐겁거나 이런거가 아니었던 것 같았어요. 대신 공공이라는 데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는 되었죠. 대체 공공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나중에 불협화음으로 끝났을 때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가 무엇인가 라고 생각해봤을 때 공공이라는 부분과 소통이라는 부분인 것 같아요.”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비평가모니터링을 담당한 김윤경 큐레이터는 “대상지 변경 등으로 대부분의 작업이 주민들의 참여를 기반으로 이루어진 것은 제작과정의 참여일 뿐 작업을 제안하고 구상하는 것은 프로젝트팀의 일방적인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이곳 철산4동은 개발붐이 일었던 1980년대 말, 경제적 여건으로 밀려난 서민들이 고지대로 흘러들어와 형성된 곳이다. 광명역 앞 화려한 번화가와 달리 구불구불한 가파른 계단이 즐비한 이곳은 아직도 하염없이 재개발을 기다리며 건물 보수 등이 미뤄지면서 노후한 상태로 남아있다.

▲ 새로운 그림으로 바뀐 부천 복지관앞 담벼락 벽화
부천, 벽화는 다시 새로운 모습 단장

부천 원종동 프로젝트는 복지관의 천민경 사회복지사가 신청자였다. 지금은 이직을 했고 당시 박영균 감독도 알 만한 사람을 찾지 못했다. 조금은 걱정스러웠다. 복지관으로 전화를 걸었다. 토요일쯤 방문하겠다고 했는데 일단 천민경씨에게 연락을 해서 전화가 가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틀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었다. 개인정보라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았다.
기자 일행은 광명을 거쳐 무작정 원종동종합복지관 현장으로 찾아갔다. 오후 늦은 시간이었는데 다행히 사무실에는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었다. 사무실로 들어가 취재의 목적을 설명했다. 그리고 현장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기자 일행에게 먼저 복지관 앞 담벼락을 보여주었다. 이곳 100m의 담에는 지난해 부천시 승격 40주년을 맞아 사업비 지원을 받아 환경생태지킴이 ‘푸른 하늘’이라는 동네 주민모임에서 새롭게 그렸다고 했다.
담 한 쪽에는 큰 입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자연과 함께 이웃을 만나고 서로의 삶을 공유하는 우리 동네 녹지공간 창출사업’으로 “담벼락에 꽃을 피우다”라는 글이 쓰여 있다. 결국 예전 작업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셈이다. 다만 예전 작업이 있었기에 그 담벼락에 새로운 작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고 생각해본다.

▲ 주민들의 민원이 많은 부천 원종종합복지관의 3층 높이에 걸린 괴기스러운 얼굴 모습
또 복지관 놀이터를 보여주었다. 1999년에 만든 놀이터는 70여평의 공간에 미끄럼틀 1개와 그네 2개, 그리고 주민들이 쉴 수 있는 조그만 정자와 조경시설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시설이 노후하고 어린이 안전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복지관이 있는 오정동은 부천의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발이 늦고 낙후된 지역으로 빈곤계층 밀집률이 높은 곳이다. 더욱이 저녁이 되면 청소년들이 몰려와 담배를 피우거나 놀이터의 판자로 불을 피우는 등 위험한 지역으로 치부되었다. 아니면 술 마시고 행패를 부리는 이들도 있었다.

따라서 이 지역을 밝고 환하게 만남의 장소로 꾸미고 주민들이 참여하는 벽화작업을 통해 주민화합과 동네에 자긍심을 심어주겠다는 의도였다. 벽화는 ‘200인의 원종동 사람들’이라는 주제였다.
복지관 수강생과 주민이 참여하여 자기 얼굴을 그렸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참여하는 사람들끼리 자신의 얼굴에 대한 이야기, 어렸을 적 얼굴에 대한 이야기 등 다양한 소통이 이루어졌다. 대부분 평생 자기 얼굴을 처음 그려본다고 했다. 주민들간의 소통벽화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퇴색해지자 개보수가 필요했다. 마침 부천시 승격 40주년 사업 중의 하나로 원종복지관 앞 담벼락은 옛 흔적은 사라졌지만 새로운 모습으로 에너지를 받아있었다.

하지만 놀이터는 완전히 변했다. 지금은 가벼운 배구나 배드민턴을 할 수 있는 시설로 바뀌어 있었다. 예전의 미끄럼틀이나 정자는 아예 찾아볼 수 없었다. 근처에 공원이 없어서 청소년들의 우범지대로 전락했고 크게 파손된 데다 복지관 아이들이 놀다가 사고가 발생해 전체를 철거했다는 것이다.
복지관 관계자는 한 가지 아쉬운 이야기를 했다. “건물 바깥쪽 벽 3층 높이에 얼굴 형상이 크게 붙어있는데 괴기스러운 모습이어서 흉물스럽다는 주민들의 민원이 많아요. 당시 공공미술 작업으로 남은 것이라고는 저것뿐인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어요. 떼기도 어렵게 되어 있어서요.”

▲ 마석초 녹촌분교 입구
마석, 공공미술이 동네페스티벌로 승화

남양주 마석프로젝트는 이주노동자문화단체인 믹스라이스였다. 조지은 양철모가 만든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기록하는 문화그룹이다. 이 프로젝트는 조지은 양철모 외에 이제, 도현주 등이 기획을 맡아 진행했다. 다행히 어느 레지던시 사무실에서 조지은 양철모의 이메일을 안내받았다. 전화번호는 개인정보이니 알려줄 수 없다고 말한다.
무작정 두 사람의 이메일에 취재의 의도를 적고 일요일(14일)에 마석초등학교 녹촌분교를 갈 예정이니 어떻게든 만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부천 원종동프로젝트를 취재하던 중 전화가 왔다. 양철모 작가였다. 메일을 늦게 봤는데 지금 지방에 있으니 내일 오전에 올라가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자 일행은 녹촌분교 현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저녁 늦게 남양주로 향했다. 퇴근시간이 겹쳐 서울을 지나 빠져나가는 순환도로가 어디든 막혀 있었다. 지리를 잘 모르기 때문에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운전할 뿐이었다. 이게 없었다면 아마 녹촌분교까지 찾아가는 밤길이 매우 험난하고 힘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엄습했다.
다음날 오전 10시께 녹촌분교 운동장에서 한참 사진을 찍고 있는데 양철모 조지은 작가가 함께 찾아왔다. 우리 일행은 운동장 한쪽에 앉아 한참을 이야기했다. 그들은 자주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당시 작업했던 프로젝트는 시간이 흐르면서 퇴색되고 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면서 대신 어떤 형태로든 발전하고 있다면 마석프로젝트는 의미 있는 일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양철모 작가는 공공미술의 지속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저희가 처음 이 사업을 했을 때 지속성에 대해 물어 봤었어요. 지속성은 작가들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공공미술추진위원회도 생각해야 하고 정부와 지역도 같이 생각해야 하는 것이지 이를 단순히 작가들이 어디 가서 돈을 받고 행위를 하고 끝나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를 했지요.”

▲ 마석프로젝트 기획자인 양철모 조지은씨와 외국인 노동자 알룸씨
녹촌분교가 있는 곳은 마석가구단지가 있는 상가 거리를 구불구불 한참 지나 가장 마지막에 있는 장소였다. 20만평 부지에 무려 400여 공장이 오밀조밀 밀집되어 있고 도로변으로는 상가가 불을 켜고 있었다. 주요 노동자층은 저임금 외국인이주노동자였디. 한때 2천여명의 외국인노동자가 노동 및 주거를 했던 공간이다.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이들 작가와 늘 상의를 하는 방글라데시 출신의 알룸이라는 외국인노동자가 왔다. 그는 이곳에서 공공미술 프로젝트 이후 연극동아리를 만들어 몇 년 했는데 너무 힘들어 이제는 동네페스티벌 운영에 적극 참여한다고 했다.
2006년 마석프로젝트를 수행할 당시에는 외국인노동자가 8백명 정도로 줄었다. 그러나 밀집된 공장지대의 특성상 이들의 문화 복지시설은 아주 열악하기 그지없다. 녹촌분교 운동장만이 그들에게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그런데 학교 운동장은 누가 책임자인가에 따라 공공성이 달랐다.

마석프로젝트는 사실 운동장 배수공사가 가장 큰 공공프로젝트였다. 운동장이 중요한 공간으로 작용하는 데 지형상 비가 오면 경사진 곳을 따라 운동장에 물이 차고 흙이 쌓여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배수로 공사를 통해 비가와도 운동장에 물이 차지 않도록 하는 일이 중요했다고 한다.
조지은 작가는 “결국에는 지역 분들이 돈을 기부해서 운동장에 마사토를 채웠다”면서 "어떻게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공공미술은 꾸미거나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유기적인 공동체들이 작동하는 지점에서 새로운 역동성을 갖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당시의 마석프로젝트는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은 훼손되거나 흔적만 남아있지만 운동장 배수공사는 운동장의 기능을 활성화시켰고 알룸의 제안으로 외국이주노동자로 구성된 ‘마석동네페스티벌’이 올해로 3회째 열렸다.
양철모와 조지은 작가는 이런 지역 활성화의 새로운 모습이 바로 공공미술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지역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끊임없이 변화하고 다양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것이 공동체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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