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미술 잊힌 현장들 3 중흥동 프로젝트
공공미술 잊힌 현장들 3 중흥동 프로젝트
  • 정인서 기자
  • 승인 2014.09.18 14: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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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지역 생활환경 개선 예술대중화 거리 멀어
사후관리 없는 현실성 떨어진 아이디어만 난무
단기사업, 실패할 수밖에 없는 조건 간직해
박성현, “문화도시 의미 살리는 노력 필요”

지난 2009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5년여 동안 주인을 찾아가지 못한 로또복권 1등 당첨금액이 326억원, 또 5등까지 포함해서는 2,078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복권 당첨금은 소멸시효가 1년으로 미수령 당첨금은 기획재정부 소관 복권기금에 편입돼 공익사업에 쓰인다.

이러한 복권기금은 대체로 법정배분사업 외에 취약계층 지원, 보훈기금, 문화예술진흥기금 등에 사용된다. 지난 2006년 이후 문화관광부에서 벌이는 공공미술 사업들도 이러한 복권기금에서 지원된다. 이왕 줄 상금이었는데 찾아가지 않으니 문화의 세기에 걸맞게 문화진흥 사업에 활용된다고 한다.

2006 아트인시티 사업도 마찬가지로 복권위원회에서 8억5천만원이 지원되었다. 정부 예산을 별도로 마련하기보다 복권 미수령금을 활용하니 의미는 있다 하겠다. 광주의 ‘중흥동 공공미술프로젝트’도 이 기금에서 5천만원이 지원되었던 사업이다.

아트인시티사업은 원래 명칭이 ‘소외지역 생활환경 개선을 위한 공공미술사업’이다. 정부 차원에서 시행된 첫 사업이었다. 전국의 10개 소외지역의 요구를 공모방식으로 선정해 공공미술 전문가가 결합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기획이었다.

이번 사업의 의도는 갤러리나 미술관과 같은 특별한 공간에서만 만날 수 있고 전문가들 외에는 일반인들은 접근할 수 없었던 점을 삶의 현장에 투영시켜 공동체 속에 함께 살아있는 예술로 존재시키겠다는 구상이었다.

따라서 기존의 1%법에 따른 건축물 공공장식물은 단순히 성과 위주 작품이었다면 이번 공공미술은 특정 장소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주민참여를 유도한다는 것이 일차적 목적이다. 더불어서 도시의 시각적 환경개선을 함께 일으키면서 예술의 대중화와 예술향유 기회를 확대하고 젊은 작가들의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다.

개발예정지에 대한 인간애 이끌어내

8년이 지난 중흥동 공공미술은 어떠한 변화를 보였을까? 중흥3동 지역에서 실시된 공공미술은 박성현 예술감독을 비롯하여 84명, 43개 팀이 참여하였다. 중흥동 A.B.H프로젝트로 명명된 이 사업의 부제는 ‘하늘 아래 텃밭으로 오르는 아홉길’이다.

중흥3동은 야트막한 당뫼(또는 와우산)로 오르는 9갈래의 골목길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 곳이다. 정상에 오르면 높지 않은 산이지만 바로 옆의 말바우시장을 비롯하여 무등산과 광주 시내가 눈에 들어오는 전망이 좋다. 마치 1970년대 달동네에서 도시 풍경을 내려다보는 듯한 형상을 띤다.

중흥3동은 20년 가까이 재개발예정지로 묶인 달동네인 탓에 옛 샘터와 텃밭, 작은 마을공터 등이 지금도 남아있다. 기록에 따르면 대략 1600년경부터 형성된 마을로서 오랜 역사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해방 전에는 800가구가 살았다하니 꽤 큰 부락을 형성했다고 한다.

이 사업은 작가들이 어메니티(Amanity), 비오톱(Biotop), 휴머니티(Humanity)의 세 주제를 통해 중흥3동의 지형적, 인문학적, 사회학적, 미학적 접근이라는 방식으로 현장 작업과 함께 주민화합과 공동체의식의 함양을 도모한다는 것이었다.

어디나 그렇듯 도심 외곽지역은 미개발로 남고 아파트 문화로 인해 단독주택이 많은 곳은 쇠락하기 마련이다. 지금은 주택 대부분이 낡고 방치되거나 빈집으로 남아 있다. 게다가 주민의 30% 이상이 60세 이상 토박이 노인이 거주하고 있다. 중흥3동은 이런 점에서 어떤 식이든 관심과 나눔이 필요한 지역이다.

이 사업이 완료된 이후 발간된 ‘아트인시티 2006 보고서’에서 미술평론가 오남석씨는 중흥동 프로젝트는 미술이 공적 기능을 가질 때 요구되는 조건들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고 했다.

오 씨가 흥미롭다는 것은 우선 예술가의 창조적 표현 욕망을 드러낼만한 지역이고 박성현 감독이 삶의 기능적인 측면과 정신적으로 쾌적한 미학적 가치를 바탕에 두고 결정적으로는 지역 주민들의 기억된 삶을 끌어내어 기록되지 않았던 삶의 흔적들을 인간의 역사성과 연계하여 인간애를 유도해낸 성공한 대표적인 예라고 평가했다.

생태적 접근, 공동체 유대감 회복

▲박성현 감독
박성현 감독을 만났다. 중흥동 프로젝트의 컨셉이 무엇인가를 물었다. <재크와 콩나무>라는 동화적 매개체로서 접근하였다고 했다. 전시의 거점장소인 당뫼(와우산)는 잭의 어머니가 팔아오라던 ‘소’와 우연적인 상징성을 내포하면서 그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는 점에 착안했다는 것이다.

소와 맞바꾼 콩알 3개가 콩나무로 자라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면서 잭이 꿈을 이루었던 동화적인 상상력을 이곳에 심고 싶었다는 그의 꿈을 읽을 수 있었다. 결과적인 소득이 ‘부(富)’와 연결되었다는 부정적인 협소함에서 벗어나 소망, 꿈, 희망, 염원 등의 조건이 이루어졌다는 관점에서 들여다본다면 중흥3동이 제법 가능성이 엿보였다는 것이다.

이곳은 재개발이라는 조건 속에 콘크리트화 될 수밖에 없는 최소화된 보유 녹지공간이 생태문화 공간화 됨으로써 잃어버릴 수 있는 녹지공간을 확보하고, ‘재개발’이라는 이슈에 집착하는 지역민들에게 다른 각도의 삶에 대한 동기를 유발한다는 점이다. 이는 인간다운 삶에 대한 근간을 제시하려는 것이 중흥동에서 예술이 개입되는 지점이라고 했다.
박 감독은 당시 와우산 지역은 야트막한 산이지만 상당한 텃밭이 있어서 당시만 해도 주민들이 그곳에서 거둔 채소들을 말바우시장에 판매하며 일부 소득원이 있었다고 했다. 한때 대주건설에서 아파트를 지으려다가 주민들의 반대와 공원이라는 점 때문에 짓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처음 이루어지는 공공사업이다 보니 주민과의 접촉도 쉽지 않았다. 이에 대해 박 감독은 그 당시에는 주민설명회라는 것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 동장님과 면담형식을 거치고 노인당의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정도라고 했다. 당시 공공미술위원회로부터 요청을 받아 하던 터라 계획서를 내야 하는 시간이 불과 한 달여 정도였는데 공식절차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진행된 사업이긴 했지만 마을의 특성을 파악하고 접근한 방식이 무엇인가에 대해 물었다. 박 감독은 역사성보다는 도시의 하나의 생태적인 부분들이 부각이 되었고 그래서 주로 작품들도 텃밭 위주로 접근이 되었다고 했다.

특히 어느 마을이나 마찬가지로 샘이라는 샘에서 기원하는 부분들 그런 어떤 부분들과 전망이 남다른 지역이라는 점을 살려 조망권을 고려한 답사코스로서 작품을 배치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동네의 어떤 유래가 시작되는 지점과 스토리가 전개되는 지점, 예전에 마을사람들이 주로 모여서 논의했던 지점들을 쭉 돌아서 마을 하나를 볼 수 있도록 했다.

큰샘에서 시작한 골목풍경은 중흥동 보물찾기로서 골목골목에 스며들어 관심과 호흡을 함께하고, 비오톱과 관련해서는 지렁이텃밭을 녹색연합과 함께 진행을 해서 실제로 마을 주민들이 음식물쓰레기로 재활용 할 수 있는 부분들을 진행했다.

더불어 소출력라디오방송국 ‘중흥의 소리’는 참여 작가가 운영하는 프로그램으로 주민들과 참여 작가들의 소개, 텃밭 생산물의 홈쇼핑 운영, 지역현안 문제에 대한 막걸리 토론 등을 진행했다. 이것은 지역민들에게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재개발에 대한 상흔과 무기력증을 해소하여 단절되었던 공동체의 유대감을 회복하는 하나의 장이라는 차원이었다.
8년 뒤, 철저한 붕괴로 작품 찾기 어려워

그리고 8년이 지났다. 이러한 성공적인 사례는 참혹하리만치 철저하게 ‘붕괴’되고 있었다. 정부는 단 한 번의 공공미술 사업 지원으로 끝났고 후속적인 유지보수는 물론 주민참여형의 확대재생산을 통한 노력마저 없었다.

현장에서 볼 수 있는 당시의 작품은 거의 사라지고 없었다. 일부만 그 때의 흔적이 남아 “아 그 때 이런 적이 있었지”라는 정도로 추억거리만 될 뿐이었다.

당시 주민사랑방으로 활용되었던 ‘와우주막’은 빈집프로젝트의 하나로 진행되었지만 지금은 활용되지 않고 있었다. 주민의 이야기로는 샘터에는 용이 그려져 있다고 했으나 현장에서 보면 최근 지자체에서 개보수공사를 하면서 옛 흔적은 사라지고 새롭게 정비한 상황이었다.

이곳은 재개발 예정지로 당시에도 아파트가 들어설 것으로 계획서에는 제시되었다. 최근 광주의 한 아파트 업체가 말바우시장 방면의 와우산 절반가량을 들어내고 터파기를 하고 있었다. 이곳에 아파트를 짓는 것이었다. 9개의 골목길 가운데 몇 개는 사라졌다. 아마도 와우산 오르는 꿈은 절반 정도만 남겨야 할 것 같았다.

박 감독은 푸념처럼 말했다. “많은 외지 사람들이 중흥동이 아직도 찾아오는 사람이 있고 와서 보면 실망한 사람들이 많을 텐데, 다시 복원한다든가 개보수를 한다던가, 새로운 차원에서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서 문화도시 광주로서 살려내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현지에서 만난 동네 어르신들은 당시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다. 와우주막을 통해서 작가와 마을주민과 새로운 커뮤니티가 만들어졌다. 비어있는 집을 그 집을 개조하고 작가 레지던시도 진행하면서 마을사람들과 파전도 부쳐 먹고 사랑방공간으로 썼었다.

중요한 것은 행정의 관심이다. 그리고 주민의 지속적인 참여이다. 소이지역의 생활환경 개선사업으로 접근한 공공미술사업으로서 아이디어는 좋다. 그러나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노인들만 남아 있고 경제적인 소득원도 없는 마을에 공공미술을 하기 위해서는 아주 오랫동안의 시간이 필요하다. 당장 1년 사업, 또는 몇 개월 사업으로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사례를 우리는 중흥동에서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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