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미술 잊힌 현장들 6 부산 대구 합천-지역차별화 통한 거듭나기 가능한가
공공미술 잊힌 현장들 6 부산 대구 합천-지역차별화 통한 거듭나기 가능한가
  • 정인서 문상기 기자
  • 승인 2014.10.09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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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성 사라진 현장 볼 때마다 큰 아쉬움 남아
장소선정과 유지관리 문제 사전 면밀 검토해야

이번 기획취재는 부산과 대구, 합천지역의 공공미술 현장이다. 그 동안의 다양한 공공미술 현장을 돌아본 경험으로는 대도시의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크게 기대하지 않을 정도다. 부산은 대도시라는 점에서 은근히 기대를 했다.
대구는 사전에 전화로 확인한 결과 공공미술이 이루어졌던 공간의 운영주체가 바뀌어 잘 모르는 듯 취재 자체에 대해 전화선을 타고 넘어오는 목소리에서 부정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현장 확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합천은 초등학교이기 때문에 크게 어렵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중요한 것은 아트인시티2006의 장소선정에 있어서 공통성을 찾을 수 없고 단순히 소외지역이라는 점에서만 의미를 되새겨본다고 할 수 있다. 초등학교, 공장지대, 달동네, 복지시설 등이 주된 대상이었다.

▲ 부산 물만골 공공미술프로젝트의 달팽이도서관은 2007년 보고서 사진과는 달리 책이 한 권도 없고 유리창은 깨졌으며 바닥에는 흙과 쓰레기뿐이었다.
소외지역 공공미술은 ‘정치적 폭력’

아트인시티의 개념을 들여다본다면 작업이 이루어지는 현장의 지역공동체와 다양한 소통을 통해 주민들과 함께 미술이라는 주제로 나눔을 갖고 삶의 환경을 개선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사실 공공미술의 주요 과제이다. 스스로 주인의식을 높이고 지역의 가치를 발굴하고 재창조한다는 것이다,
구본호(2013)가 강조하는 것은 그의 책 제목처럼 ‘도시의 지속성을 논하다’라는 것이다. 물론 공공미술은 ‘공공’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다양한 시각을 가질 수 있다. 구본호는 이를 영역과 방법에 따라 분류될 수 있다면서 미술을 위한 장소성과 의식적 공유공간을 위한 공공성의 관계 등 두 가지로 보았다.
이는 공공장소에 있는 미술이라는 관점에서 장소 속의 미술(기념조형물, 유물), 장소로서의 미술(건축물 미술장식품, 새로운 장식미술)이 있고 참여와 개입이라는 관점에서 장소특정미술이라고 하는 3가지로 나누었다.
여기에는 장소적 정체성을 빼놓을 수 없다. 윤지영(2011)은 <도시디자인 공공디자인>에서 정체성을 장소와의 동일화를 의미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소외지역의 정체성을 무엇으로 해석할 것인가와 관련이 있다. 그러나 소외지역이라는 조건이 붙은 공공미술은 정치적 권력이 개입한 흔적이 엿보인다.
그러다보니 사업은 시행됐지만 사업 종료 이후 불과 1년이 조금 넘은 시점에 전반적으로 훼손된 작품이 많아 유지관리 및 보수의 문제점을 드러낸 것으로 지적됐다. 이는 변민재(2008)의 경희대 교육학석사학위 논문인 <소외지역 생활환경 개선을 위한 공공미술사업 현황 분석>에서 나타난 것이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주민참여형 공공미술로 소통과정을 중요시한다고 했지만 지역여건상 노인과 어린이들이 많았고 짧은 기간과 준비부족 등으로 주민과의 소통문제가 두드러졌고 나중에 주민들의 손에 의해 작품이 철거되거나 관리 주체가 없어 거의 방치된 실정이었다.

부산 물만골, 사후관리 흔적 찾을 수 없어

부산의 경우 물만골과 수정동 부산종합사회복지관 프로젝트가 있었다. 물만골프로젝트는 부산 연제구 연산2동 황령산 중턱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물이 많이 솟는 곳이라 하여 물만골인 이곳은 80년대 도심 철거민들과 농촌이주민들이 모여 형성된 마을로 1,600여명의 지역주민 가운데 40% 정도가 건설노동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1953년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이 물만골은 2005년 주민조직을 통합해 물만골공동체를 구성하여 보건의료, 교육 등 마을 문제를 자체 해결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여기에는 도한 많은 자원봉사자들의 노력도 보태졌다.
물만골프로젝트의 사업제안자는 김이수 당시 물만골의료복지상담소 소장이었다. 의사 출신인 그는 지금 자리를 옮겨 연락처를 알 수 없었다. 그의 제안서를 보면 “도시빈민지역으로 사회취약계층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장소, 놀이와 문화가 공유하는 공간을 제공하여 다음 세대의 교육공간으로 활용하고 마을주민 및 부산지역 주민들이 즐겨 찾는 장소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
특히 지난 2002년 자연생태마을 우수마을로 지정된 점을 감안하여 자연생태마을 조성과 어울려져 지속가능한 공공문화 활동이 효과적인 장소라고 하였다. 이곳은 백종옥과 하석원 예술감독과 동아대 조소과 학생들과 13명의 청년작가들이 참여하였다.
변민재의 조사에 따르면 7천만원의 예산을 들여 공공장소로의 놀이터와 노인회관 장식, 마을벽화 등이 진행되었다. 이듬해 일부 파손된 곳은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보수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취재진이 찾아간 지난 4일에는 나무와 잡초가 자라 놀이터 기능을 할 수 없고 달팽이도서관은 유리창이 깨지고 안에는 온통 쓰레기 천지였으며 책은 아예 한 권도 없었다. 물만골잠자리라는 놀이기구는 녹슬거나 훼손된 곳이 많이 이용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마을회관 현판은 처음 꽃조각 장식으로 만들어졌으나 언젠가 이를 뒤집어 붓글씨로 써놓았다.

▲ 부산 수정동 프로젝트는 부산종합사회복지관 입구와 옹벽을 중심으로 작업이 진행됭 다행히 복지관 측에서 그동안 관리한 덕분에 당시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다.그러나 당초 사업취지인 주민참여는 점차 시들해졌다.
부산종합복지관, 직원들이 유지 관리해

수정동 프로젝트는 좀 나은 편이었다. 시간은 많이 흘렀지만 이를 관리할 주체가 있었기에 당시의 모습을 그런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이 작업은 부산시 동구 수정4동 부산종합사회복지관과 주변 공간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당시 복지관은 2005년 시멘트 마감작업을 했고 인근 수정아파트 16동 아파트와 골목길 하나 정도의 근접한 거리로 황량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이 아파트는 지은 지 50년쯤 됐다. 큰길에서 이곳까지는 산비탈을 따라 구불구불 오르막길을 한참 올라가야 했다.
제안자는 손창우 당시 복지관 사회복지사였다. 취재진이 방문한 날은 토요일이었고 마침 전기승압공사를 하고 있었다. 예술감독은 서상호 오픈스페이스배의 대표였다. 3천만원의 예산으로 7명의 참여 작가가 벽화와 설치, 주변 조경작업 등으로 진행됐다. 문화적 접촉이 희박한 열악한 주거지역에 미적 감수성을 더하고 생활을 위한 예술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희망프로젝트’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 작업은 보존성이 강하게 만들어진 부조조형물 ‘꿈의 항해’를 복지관 주차장 옹벽에 만들었고, ‘꿈의 정원’은 복지관 주차장 진입로에 나무를 활용하여 조형물과 40여개의 화분을 설치했다. 특히 화분은 미니워크숍을 통해 지역주민들에게 분양하여 주민 스스로 자신의 이름으로 관리할 수 있는 주체를 정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사를 가거나 세상을 떠난 주인을 잃은 화분들이 생명력을 지탱할 수 없게 되면서 관리 소홀이 드러났다. 결국 전체적으로 복지관 직원들이 유지관리를 하는 정도였다. 따라서 당초의 취지와는 거리감 있는 운영방식이 됐다.
이와 유사한 지역이 인근의 안창마을프로젝트이다. 이듬해 2007아트인시티사업으로 진행된 이 사업의 예술감독은 역시 서상호 감독이었다. 시가 중심지인 서면의 뒤쪽 산 아랫마을로 차로는 불과 5분 정도 거리였다. 잠시 들렸다. 비탈진 산동네이지만 6.25전쟁 이후 몰려든 사람들로 판자촌이 형성되었고 오리고기집 군락지로 부산사람들은 기억하고 있다.
서 감독은 골목골목 숨바꼭질 하는 아이들을 벽화로 구석구석 그려 아이들의 뛰어노는 함성을 기억하도록 했고, ‘안(內)창(蒼)고(庫)’라는 지역민들의 소통공간을 마련해 주민들에게 자부심을 갖는 마을이 되도록 노력했다. 그러나 당시 통장을 했다는 박순식(70)씨는 “아이들 벽화가 보기 싫어 지워버렸다”는 말을 할 만큼 주민들의 자발성이 뒤따르지 않았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성서공단, 노동조합 이주로 지속성 사라져

대구는 성서공단프로젝트이다. 성서공단 노동자들의 희망을 위한 예술가들과의 협업작업이었다. 그러나 불과 한 달간의 작업 시간 속에 얼마나 제대로 이루어졌을 지 걱정이었다. 더욱이 당초 성서공단노동조합이 있던 5층과 그 옥상을 중심으로 14개의 작업이 진행되었다.
성서공단은 외국인노동자가 많았고 저임금 노동자들이 많았던 지역이어서 비정규직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휴식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그 배경이었다. 제안자는 성서공단노동조합에 근무하는 김현주, 예술감독은 이명훈, 대구네트워커로 하정화가 참여했다. ‘예술노동자창작네트워크工場公場共場장’이라는 이름을 통해 예술가와 노동자의 거리감을 좁히는 코드로 진행됐다.
이 프로젝트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공단 전체 공간에 대한 작업을 진행할 수 없고 또 특정지역만을 할 수 없다는 점 때문에 노동자들의 대표적인 단체인 노동조합 건물을 선택했다. 공간의 분산배치보다 집중을 하였던 것이다. 노동조합이 입주했던 건물 옥상을 중심으로 무대를 만들고 주변에 벽화작업을 하였으며 별도의 쉴 공간을 꾸몄다.
옥상의 물탱크를 활용해 이주노동자를 상징하는 국기를 뒤엉키게 그려 국가 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개인의 기억을 남기도록 했다. 또 벽화로는 이주노동자의 얼굴을 단순화하여 단일색으로 제작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변민재의 2008년 당시 현장 확인에서는 옥상의 무대 관리가 양호하지 못했고 부분적으로 장비교체가 필요하다는 지적을 했다. 그리고 이동식 텃밭은 처음에만 관리되다가 채소들이 죽어 텃밭의 존재가 무의미하다는 지적을 했다.
취재진이 방문한 이번 현장 확인에서는 아예 무대는 사라졌고 이동식 텃밭은 없어졌으며 쉴 공간으로 만들어진 컨테이너 내부는 의자와 집기들로 가득 차 있었다. 노동조합 건물의 옥상이라는 점에서 관리 주체가 확실할 것으로 기대했는데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이 이주함에 따라 관리문제의 지속성이 사라진 사례였다.

▲ 합천 숭산초 어린이들을 위해 운동장과 연결된 계단에 만들어졌던 시멘트 미끄럼틀과 철제 학꽁치 미끄럼틀 2개가 철거되어 지금은 그 흔적인 계단 흰색부분이 보인다.
합천 숭산초, 일부 옛 모습 황량한 흔적

이번 취재의 마지막 현장은 경남 합천 해인사가 가까운 숭산초등학교 프로젝트였다. 학교 곳곳의 숨은 공간이나 학생들이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적절하게 안배하여 놀이공간과 쉼터공간으로 재활용한다는 것이었다.
학교 선생님들과 학생들, 지역주민들에게 사전 설명회를 통해 골고루 참여한 협력형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이 학교는 가야산 자락 아래 1940년에 개교한 역사가 깊은 학교이다. 2009년 학생 급감 등을 이유로 학교통합 대상이 되기도 했으나 동문들과 주민들의 통폐합 반대로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다.
2006년 사업 당시 전교생 68명의 작은 산골학교로 놀이기구 하나 제대로 없는 현실과 ‘늘 한결같은 따스한 품’의 기억을 담는 기획으로 진행됐다. 달무지개공공미술의 박지현 감독이 맡았고 주요 작업은 상형문자, 오색운동장, 하늘물고기 벽화, 숭산풋살경기장 등 다양한 놀이기구가 진행되었다.
비평가 모니터링을 담당한 안태호 정책활동가는 “학꽁치 미끄럼틀이 콘크리트 미끄럼틀과 나란히 서있는 모습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숭산초만의 풍경이다”면서 “이야기가 있는 미술, 이야기를 만드는 미술로서 주민들이 이야기의 주인공이고 생산자이고 담당자이다”라고 했다.
2008년 당시만 해도 놀이기구의 상태가 다소 양호했던 것과는 달리 오늘의 현장은 두 개의 미끄럼틀은 철거되어 사라졌고 풋살경기장은 찾을 수 없었다. 담벼락에 그려진 색 바랜 상형문자와 하늘물고기 만이 옛 흔적을 간직한 채 황량한 모습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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