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미술 잊힌 현장들 8-에치코쓰마리, 세계적 예술전 열리는 작은 시골마을
공공미술 잊힌 현장들 8-에치코쓰마리, 세계적 예술전 열리는 작은 시골마을
  • 일본 도카마치, 쓰난마치=정인서 권준환 기자
  • 승인 2014.10.22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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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민들이 직접 관리·운영하는 공공미술
작은 배려가 모여 지역의 젖과 꿀로 발돋움

21세기미술관 주변뿐만 아니라 역 앞과 거리 곳곳의 수변공간, 인도의 소화전까지 세세하게 신경 써 조성해 놓은 가나자와(金沢) 시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던 일본 일정 첫 번째 날(15일).
두 번째 날도 취재진은 설렘을 안고 숙소를 나섰다. 가나자와 역을 출발해 도카마치(十日町)역에 도착했다. 이 날은 요코하마까지 강행군을 해야 했기에 아침 식사도 거른채 오전 7시 10분 기차를 탔다. 2시간 반 정도 걸려 도착한 니이가타(新潟)현에 속한 도카마치 시는 그야말로 시골이었다. 역 앞은 자동차 한 두 대가 가끔 지나갈 뿐이었다.

자연스럽게 서쪽출구로 나갔다. 우선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렇게 작은 시골 마을 기차역 앞 광장도 다양한 공공미술품들로 꾸며져 있었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광장을 둘러봤다.

어디에서나 만나는 수변공간 작품들

아이를 품에 안고 있는 어머니 돌조각부터 나팔 부는 사나이 동상까지, 작은 광장 안에 크고 작은 미술품들이 구석구석 자리하고 있었다.
특히 우물처럼 생긴 곳에서 물이 나와 시계탑을 중심으로 돌아 흐르는 공간은 보는 이에게 청량감을 줬다. 일본에서는 물을 활용한 쉼터공간을 꽤나 자주 볼 수 있다. 흐르는 물 위로 하늘이 비치고, 사람이 비친다.

계속해서 물을 흐르게 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 비용이 들겠지만, 이렇게 꾸며진 공간은 지역민이나 관광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기분 좋게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물은 늘 생명의 원동력과 같아서 이러한 수변공간은 에너지를 분출케 한다.

도카마치의 공공미술을 취재하기 위해 왔지만, 굉장히 한적한 시골이었기 때문에 취재진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2층 역 대합실 입구에는 도카마치관광협회 현장 사무실이 있었다. 이곳 담당자에게 도카마치 공공미술에 관련된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이 직원은 한참을 이곳저곳 전화하더니 결국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사람과 통화할 수 있게 해줬다. 전화기를 통해서 통역이 된 셈이다. 그녀는 말끝마다 ‘스미마셍(すみません:죄송합니다. 부탁합니다)’이 꼭 붙었다. 무엇이 그리 죄송할까 의아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일본인들은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한다고 했다.

실제로 취재진이 음식점에서 점심을 사먹고 계산할 때 주인이 돈을 받을 때도 ‘스미마셍’이라고 했다.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이긴 하지만, 당신의 돈을 받아 미안하다는 것이다.

전시작품 900여점 중 200여점 현장에 남아

약속된 시간이 되어 에치코쓰마리 사토야마 현대미술관(越後妻有里山 現代美術館)으로 향했다. 사토야마 미술관의 홍보부에 근무하는 시바야마 유미(芝山 祐美)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사토야마 미술관은 조만간 새로운 전시가 이뤄지려고 하는지 내부 곳곳에서 공사가 진행중이였다.

2층으로 올라가 미술관을 둘러보았다. 원근감과 점점 좁아지는 통로를 이용해 실제 터널 속에 있는 것 같은 작품도 있었고, 미용실 앞에 매달린 삼색원통 간판처럼 거대한 통이 돌면서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처럼 느껴지는 작품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취재진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각양각색의 가루들이 조금씩 담긴 투명한 플라스틱 통들이었다. 이 가루들은 흙이었는데, 니이가타 현의 여러 땅에서 수집한 것들이었다. 분홍색에 가까운 것에서부터 시커먼 흑색까지 모두 576가지였다. 작품 옆에는 이 흙들이 어디에서 가져온 것인지 지도에 빨간 점들을 찍어 표시해놓았다.

미술관을 다 둘러본 후 시바야마 씨는 에치코쓰마리의 공공미술 작품들을 보러가자고 했다. 그녀와 함께 일하는 유까리 미와(有香里 三輪)씨도 동행했다.
차량에 탑승해 출발했는데 잠시 후 취재진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 작품을 보러 가는데 시골마을이라 차가 막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30분 이상을 이동해야 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후로도 계속 작품 하나를 보기 위해 10여분 또는 멀리 갈 때는 20~30분을 차로 움직였다.
에치코쓰마리는 도카마치 시와 쓰난마치(津南町) 시를 묶어 이르는 말이다. 도시와 지역, 아티스트와 사토야마, 젊은이와 고령자의 교류와 협동이 낳은 약 200점의 예술작품을 마을과 논, 빈집, 폐교 등을 무대로 삼아, 760㎢에 이르는 지역에 분산 배치했다.

대부분의 작품은 세계의 유명한 예술가들의 손에서 탄생했으며 현지 주민들이 직접 관리·운영한다. 따라서 방대한 지역에 걸쳐 곳곳에 공공미술품들이 자리하고 있다. 지금까지 900여점의 작품들이 전시됐고 현재는 200여점이 현장에 남아있다.

이처럼 야외 들판에 크고 작은 작품들을 전시하면서 ‘대지의 예술’을 세웠고, ‘대지의 예술제’라고 해서 2000년부터 3년에 한 번씩 개최되는 세계적 규모의 국제예술전이 열린다. 제6회 예술제인 에치코쓰마리트리엔날레는 내년 7월26일부터 9월13일까지 약 2달여간 열릴 계획이다.

인간과 자연은 하나 '대지의 예술제'

시바야마 씨가 취재진을 가장 먼저 데려간 곳에는 기둥에 매달린 원통에서 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는 작품이었다. 홍성도(대한민국) 작가의 ‘Growing Tree In Tsumari’였다.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나타낸 작품으로, 현대 사회에서 나무가 인간의 보호와 관리에 따라 상태가 결정되어지는 상황을 표현했다. 작가는 ‘매달려 자라는 나무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요구하는 하나의 메신저’라고 적었다.

이어 겨울이면 눈이 가장 많이 내린다는 스키장이 바로 옆에 위치한 쓰난마치 공공미술작품 밀집지역으로 이동했다. 사방으로 침엽수들이 우뚝 솟아있었고, 호수를 돌아 이어지는 길가 곳곳에 제각기 의미를 가진 작품들이 세워져 있었다.

주로 나무와 숲, 그리고 자연에 관련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중간에 연필 수천자루를 세워놓은 작품이 있었다. 이 작품의 이름은 ‘숲’이었다. 그 소리를 듣고 취재진 중 한명은 “연필도 나무는 나무니까, 숲 맞네!”라고 말하며 웃었다.

이어 이재효 등 다른 한국 작가와 일본, 대만 작가들의 작품도 보여주었다. 마지막으로 취재진이 들른 작품은 아키코 우쓰미(일본) 작가의 ‘For Lots of Lost Windows’였다. 언덕 위의 작은 초원에 커다란 창(窓)이 세워져 있고, 바람에 따라 커튼이 나부끼고 있었다. 창의 10여m 앞엔 이 창을 통해 반대편 세상을 볼 수 있도록 계단 하나가 놓여있다. 어쩌면 작가는 펄럭이는 커튼에 비추는 햇살과 이 땅에 부는 산들바람을 관람객이 느껴보길 바랬을지 모른다.
또한 이곳을 방문하며 깊게 느껴진 것이 있었다. 차도 얼마 다니지 않는 조그만 시골 마을 한 언덕에 오직 공공미술 작품 하나를 위해 공원을 조성하고 승용차 10여대 정도의 주차장을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작은 배려 하나하나가 모여 지역을 먹여 살리는 지금의 에치코쓰마리를 만들지 않았나 싶었다.

일본 공공미술의 세계적 거장 만나

우리는 이 기획자를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출발 이전에 연락을 취했으나 전 세계를 돌아다니기 때문에 만나기 어렵다는 연락만 받았다. 그가 기획한 산과 논밭을 이용한 에치코쓰마리를 비롯하여 1994년부터 다치가와시 도심지역의 빌딩과 호텔, 영화관, 도서관 등에 109점의 작품을 붙인 다치카와(立川) 아트프로젝트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그는 2010년부터 나오시마(直島) 등 7개의 섬을 활용한 세토우치(瀨戶) 국제예술제도 기획한 세계적인 거장이다. 
 
우리는 일주일간의 취재 일정이 끝날 무렵 귀국 도쿄 인근의 공공미술을 취재하던 중 귀국 전날(20일) 아침 기타가와 후람(北川フラム)씨가 자리에 없더라도 다이칸야마(代宮山)의 갤러리를 방문해보고 싶다고 전화를 했다. 기적적인 일이 벌어졌다. 기타가와 아트프론트갤러리(Art Front Gallery) 대표가 이날 오전 중에 잠깐 들린다고 했다. 그를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다시 전화가 왔다. 12시 30분부터 30분 정도 만나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당초 일정을 바꿔 황급히 그를 만나러갔다. 그는 “에치코쓰마리는 생활환경이 어려웠던 상황 때문에 그에 대한 보상차원에서 예술제를 만들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자 했다”며 “이를 만드는 과정 안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주민들의 동참과 경험이었다”고 설명했다.
예산 지원은 어떻게 되냐는 질문에 “대부분 기업 기부금과 입장료로 운영되고, 국제적 행사이기 때문에 망신당하지 않기 위해 정부에서 조금씩 지원을 하지만, 간섭은 전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덧붙여 “3년간 50억 원(원화 기준)이 든다. 정부 지원이 10억 원, 기업 기부금이 20억 원, 입장료 수입이 20억 원으로 사실 수입금이 많아 정부로부터 돈 받을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작가 선정에 대한 기준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기준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고, 나의 감으로 뽑는다”고 강한 자신감을 내비췄다. 그들은 세계적인 톱이라고 덧붙였다. 작품 가격도 자신이 정한 수준에 출품작가들이 흔쾌히 응했고 참여하려는 작가들이 많다고 했다.

그는 내년 에치코쓰마리트리엔날레 리플렛을 건네주었다. 신작을 출품할 참여작가 수십여명의 명단이 들어있었다. 한국 작가도 몇명 눈에 띠었다. 우리는 광주비엔날레가 열리는 광주에도 훌륭한 작가들이 많으니 관심을 가져달라고 '주문'했다. 그에게 함께 기념사진을 직자고 요청했다. 그는 평소에 일본 언론매체와도 사진을 잘 찍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흔쾌히 응해줬다.

다른 문화권, 다른 방식의 배려

▲ 에치코쓰마리트리엔날레 총감독을 맡고 있는 기타가와 후람 아트프론트갤러리 대표와 취재진(왼쪽은 정인서, 오른쪽은 권준환 기자)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면서 도카마치에서의 일정을 마칠 시간이 됐다. 다음 취재계획이 있는 요코하마로 떠나기 위해 도카마치 역을 향해 갈 때, 시바야마 씨는 취재진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미술관 입구에서 우리 일행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역으로 가는 길에는 좁은 골목길을 건너야 할 일이 있었다. 그때 차량 한 대가 취재진이 있는 곳으로 오고 있었다. 우리는 당연히 차를 먼저 보낸 후 건너려고 기다렸다. 하지만 그 차는 사람이 있으니 천천히 멈춰 섰다. 그렇게 10여초를 서로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결국 그 운전자가 손을 들어 고마움을 표하며 먼저 취재진 앞을 지나갔다. 서로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 간에 각자 다른 방식의 배려로 인해 벌어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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