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 팔아 정치하지 말라”
“고인 팔아 정치하지 말라”
  • 정영대 기자
  • 승인 2009.08.21 22: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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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정치인·내년 지방선거 입지자 ‘염불보다 잿밥’
민주당 ‘조문정치’ 시민추모 분위기 저해 비판 거세

 

▲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일부 정치인들과 입지자들의 지나친 행동이 시민 추모 분위기를 해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어떻게 추모객보다 정치인들 수가 더 많냐.”

광주시와 민주당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상주노릇을 자처하며 옛 전남도청 분향소에 멍석을 깔았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의 “어버이를 잃었다”는 말마따나 고인과의 남다른 관계를 생각하면 무작정 타박할 노릇만도 아니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의 마음은 착잡하다 못해 못마땅하기까지 하다. 일부 정치인들과 내년 지방선거 입지자들이 상주를 빌미로 ‘조문정치’에 열을 올리고 있어서다. 마음이 염불보다 내년 선거 표밭에 더 가까이 가 있는 형국이다. 특히 지난 20일 오후 지역정치인 200여명이 일반 조문객의 분향까지 막아서며 합동분향에 나서 추모객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한 추모객은 이를 빗대 “정치인들에게 장이 섰다”고 푸념했다. 그는 “고인의 장례식이 정치인들의 행사가 돼버렸다”며 “장사가 될 만하면 정치인들이 뛰어드는 것이 관례가 됐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일부 정치인들과 선거지망생들은 명함을 돌리고 유력정치인에게 눈도장을 찍느라 분향소 입구를 막아서기 일쑤였다. 유력정치인들은 이른바 ‘명당자리’인 상주석을 차지하기 위해 보이지 않은 힘겨루기를 하는 추태도 선보였다.

광주전남합동분향소는 당초 광주시와 민주당, 시민단체가 함께 마련한 것이다. 그런데 정치인들과 시 공무원들의 등쌀에 지역원로와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광주전남 추모위원회의 설자리가 묘연해져 버렸다.

광주시 관계자는 “광주시청에 분향소를 별도로 마련하려고 했는데 시민사회와 함께하는 열린 국장을 치르자고 해서 옛 전남도청에 분향소를 마련하게 됐다”며 “국장이니까 당연히 시가 주체가 돼야 하는데 민주당도 주체가 돼야 한다고 해서 이렇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애초에 시와 민주당, 시민단체가 2시간씩 돌아가며 조문객을 맞기로 했다. 하지만 정치인들이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 시민단체 인사들은 오후 3시께가 돼서야 상주자리에 설 수 있었다.

광주시당 관계자는 “민주당 몫의 상주명단을 미리 짜놨는데도 하다보면 끼어드는 정치인들 때문에 난감하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 때문에 일반 추모객들은 “정치인들이 자신의 입지를 위해 고인의 죽음마저 ‘사유화’하고 있다”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한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는 “정치인과 시 공무원들 때문에 일반 시민들의 자발성을 이끌어내기 힘들다”며 “정치인들이 고인을 팔아 정치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시민사회단체에서 추모모임을 꾸렸음에도 불구하고 어디 자리 잡기도 힘들다”며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는 아직 뜸하고 정치인과 정당지지자들만 북적거리고 있다”고 말했다.

분향소 설치를 둘러싼 해프닝도 입길에 올랐다. 17일 하루 사이에 영정사진이 제단에 세 번씩이나 오르내린 것. 광주시당이 분향소 설치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언론사 마감을 고려해 고인의 영정사진을 올린 뒤 합동사진을 찍은 것이 화근이었다. 이후 영정사진을 내린 뒤 분향소 설치작업을 재개했는데 뒤늦게 도착한 방송사가 재차 촬영을 요구하자 또 다시 분향사진을 연출하면서 화를 키웠다.

그 와중에서도 일부 구청장과 시의원들은 앞줄 차지를 위해 보이지 않는 실랑이를 벌였다. 이후 세 시간이 지나서야 고인의 영정이 제자리를 찾았다.

한 추모객은 이를 두고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며 “저렇게까지 해서 언론에 나오고 싶냐”며 혀를 끌끌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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