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 황토로 고유의 멋을 살리다”
황순원의 소설 <독 짓는 늙은이>의 한 구절이다. 도자기는 유약 칠 한 번과 불의 세기 하나만으로도 달라진다. 빗금을 너무 세게 넣으면 깨져버리기 때문에 강약 조절은 필수다. 이러한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도예의 세계. 아버지를 따라 이 세계에 발을 담갔고, 또 아들에게 자신의 길을 물려주려는 도예가가 있다. 바로 손동진 씨다.
처음부터 그가 아버지의 길을 따라 도예가가 될 결심을 했던 것은 아니다. 학교 다닐 적 운동을 하던 그는 스무 살이 되던 해 도자기를 하던 부모님의 권유로 도예의 길에 접어들었다. 도예가가 되기로 결심한 그는 무형문화재인 고현 조기정 선생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기초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손 씨가 도예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주위에서 “대회에 나가보라”는 권유가 들어왔다. 열심히 만들어서 출품한 작품이 대회에서 상을 받자 더 의욕이 생기기 시작했다.
도자기 인생 40년. 썩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그 당시 도자기를 하면 돈을 많이 벌지 못했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힘들어 한다’는 괜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 때문에 힘들었지만 지금은 버팀목이 되어주는 가족들 덕분에 더욱 든든하다. 특히 아버지를 따라 도예가가 되겠다는 아들이 있어 손동진 도예가는 더더욱 기쁘다.
“저는 나름대로 제가 도자기에 이야기하듯이 문양 새기기를 좋아해요. 몇몇 작가들은 그런 것을 싫어해서 현대 유약으로 대체하는 편이에요. 저는 문양 새기는 것을 좋아하고, 또 그걸 즐겨하다 보니 제 작품의 대표적인 특징이 되었어요. 그냥 맨 공간에 색색의 유약을 칠하는 것보다도 우리의 전통적인 백토나 흑사(황토)를 도포해서 문양을 새기는 것이 저는 더 재미있더라고요.”
간혹 전통 문양이 ‘고리타분한 것’으로 여겨질 때도 있다. 하지만 그는 전통 문양이 전혀 고리타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는 옛날 자연의 모습을 담은 추상적인 문양을 현대의 도자기에 새기는 것이 사람들에게 통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지금도 고가구나 도자기 경매 같은 곳에 가보면 문양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가격 차이가 엄청나요. 문양을 통해 각각의 이야기를 담은 도자기가 그렇지 않은 것보다 훨씬 가치가 높은 것이죠”
손동진 도예가 또한 자신의 작품에 문양을 통해 ‘이야기’를 담아낸다. 최근 그는 자신의 작품에 ‘나무 문양’을 새겨 넣고 있다. 대학원에서 도자기를 전공하는 아들과 함께 작업한 작품에 자작나무 문양을 새겨 ‘나무 아래에 앉아있고 싶고 거닐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손동진 도예가는 “보통 작품 하나를 놓고 봤을 땐 만드는데 15-20일의 시간이 걸려요. 하지만 여러 작품을 동시에 만들다보니 작업의 연속이죠”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작품세계에 집중하는데 그치지 않고 남도의 작가들과 활발한 교류를 통해 ‘남도의 멋’의 기반을 꼼꼼하게 다져나간다. 작가들이 그림을 그리면 손동진 도예가는 도자기를 빚는다. 지역예술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많은 영감을 주고받는 것이다.
손 씨는 “남도의 멋이란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우리 지역만의 고유함”이라고 강조한다. 아울러 그는 “남도 지역의 풍부한 ‘황토’에서 우러나오는 멋이 진정한 남도의 멋”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황토에 유약을 바르면 유약의 두께에 따라 다른 색이 나타난다. 손동진 도예가는 이러한 유약의 흘러내림을 자연스럽게 살려 호랑이 그림의 뒤에 산 무늬를 완성시키는 등 독특한 기법을 사용했다.
“가끔 도예가 중에 황토를 싫어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이게 철분을 만나면 번져버리니까. 도자기 전체를 망쳐버리거든요. 황토는 어떤 유약을 발라도 변화가 무쌍해요. 그래서 일반 작가들은 변화가 심한 것을 겁내죠. 하지만 저는 이런 점에서 재미를 느껴요. 유약을 만나서 무늬나 색이 어떻게 나타날지 궁금하잖아요”
유약을 만나면 변화무쌍하게 변해버리는 황토로 작업을 하려면 엄청난 섬세함이 요구된다. 손동진 도예가는 황토를 현대화시켜, 황토로 어두운 색이 아닌 밝고 재미있는 색을 끄집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흔히들 예술가에겐 ‘영감’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러한 ‘영감’을 손 씨는 일상에서 얻는다. 가족관계, 늘 걸어 다니는 길 등 다양한 곳에서 영감이 떠오르면 바로 메모나 스케치를 한다. 평소 그는 어떤 물체를 봐도 도자기와 접목시킨다. 손 씨에게 있어 도자기는 일상이다. 손동진 도예가는 때때로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글귀를 도자기에 새겨 넣기도 한다. 도자기 위에 정성스레 한 자, 한 자 새겨진 글귀는 그의 작품을 더욱 멋 스럽게 빛낸다.
“장작가마에서 도자기를 빼내면 정말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변해있기도 해요. 어떤 분들은 그걸 놓고 평가하는데, 저는 아직 평가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불의 심판을 받고 나온 도자기들이잖아요. 이런 작품을 내가 평가하기엔 부족함을 느껴요”
도자기가 나의 삶이고 가치관 내지는 맹목적인 사랑이라 말하는 손동진 도예가. 그가 생각하기에 도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에 자신의 생각을 담는 것’이다. 이야기를 새기고, 문양으로 표현해내는 것이 도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그는 늘 생각한다.
“조형적인 것, 선 그런 것도 중요하지만 도자기에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새겨 넣느냐에 따라서도 도자기는 변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장식 기법을 정말 좋아해요”
한편 손동진 도예가에게 있어 아쉬운 점도 있다고 한다. 바로 우리 고장 광주에 도자기 역사의 산실인 ‘충효동 분청 도요지’가 있음에도 관광자원으로 활용이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충효동 분청 도요지는 왕에게 진상하던 도자기를 만들던 곳으로 그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크다.
그는 “충효동(무등산) 분청 도요지를 개발하면 강진보다도 훨씬 접근성이 좋을 것이라 생각해요. 또 충효동은 가사문학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외국인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최상의 조건이라고 생각해요”라고 강조한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손동진 도예가는 “꼭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다”며 작업실 뒤켠으로 향한다. 그 곳에는 도자기를 굽는 가마가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최근에 한 작품들이 17일에 가마에 들어가서 지금 막 초벌구이를 마친 상태에요. 저는 물레로 만드는 작품도 좋아하지만 또 손으로 빚는 작품도 좋아하거든요. 지금 저 위쪽에 있는 건 손으로 빚은 작품들이에요. 또 저 뒤엔 엄마와 아이의 모습을 나타낸 모자상이고, 주로 큰 작품이 가마 안쪽에 있어요”
가마 안의 작품을 설명하는 손동진 도예가의 두 눈이 빛난다. 자신의 작품 하나하나를 어루만지는 손길이 마치 자식들을 어루만지는 손길처럼 따뜻하다.
‘내가 일 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이 일을 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면서도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이 도예가의 길을 아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주고 싶다는 꿈을 가진 손동진 도예가. 자신의 직업, 또 자신의 작품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이 도자기를 굽는 가마처럼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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