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 멋을 찾아서(6) 종이작가 천영록
남도의 멋을 찾아서(6) 종이작가 천영록
  • 유현주 수습기자
  • 승인 2016.05.26 0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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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힘을 종이에 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하는 종이’. 종이는 잘 구부려지고, 구겨지고, 접히고 또 잘리는 등 무궁무진한 변신이 가능한 소재이다. 이러한 종이의 매력에 빠져 종이를 소재로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가 있다. 바로 천영록 작가이다.

1974년 완도에서 태어나 조선대학교에서 섬유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대학 시절부터 종이의 무궁무진한 변신에 매료되어 종이를 이용한 작업을 주로 하기 시작했다.

학교 다닐 때부터 종이로 작업을 했어요. 제 전공이 섬유미술인데 섬유가 원단도 다루고 굉장히 많은 재료를 사용하거든요. 그런데 종이는 다루기가 쉬워요. 접으면 접히고 자르면 깨끗하게 잘리고 이런 장점이 있거든요. 그래서 종이가 저하고 잘 맞는 것 같았어요. 게다가 종이자체의 느낌도 포근해서 보는 순간 따뜻한 느낌이 들고요

사실 그는 서양화 전공을 목표로 입시 준비를 했었다. 하지만 가족들은 서양화를 전공하면 돈을 벌기가 어렵지 않겠냐며 극심한 반대를 했다. 결국 그는 디자인 전공으로 대학에 입학한다. 집에선 디자인을 하면 생활이 어렵지는 않겠다며 안심했다. 전공은 디자인이었지만 그는 점점 순수미술과 가까워졌다. 섬유는 회화와 비슷한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제가 원래는 서양화 회화 입시 준비를 했는데, 가족들의 반대로 섬유 디자인을 전공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디자인 중에서도 회화하고 가장 가까운 게 섬유거든요. 표현할 수 있는 게 정말 다양해요. 가족들에겐 디자인이니까 어디든 갈 길이 열려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면서, 작업은 전혀 그 반대인 순수미술 쪽으로 하게 되었죠. 전공이 공예과라고 하지만 지금은 순수미술 쪽으로 광주·전남, 그리고 서울까지 다양한 곳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어요

그의 첫 작품이 탄생하던 순간, 그것은 정말로 우연이었다. 그가 잠깐 잠든 동안 비바람과 빗방울들이 모여 그의 작품을 완성시켰다. 말 그대로 자연의 힘이었다. 여기에서 깨달음을 얻은 그는 자연의 힘을 주제로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해나가기 시작한다.

첫 작품 제작을 앞두고 제가 사실은 종이에 일일이 구멍을 뚫는 작업을 하려고 했어요. 여름에 종이를 펼쳐둔 채로 작업실에서 낮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그 동안 소나기가 내렸어요. 이 비바람이 종이 한지를 날려버렸는데, 신기하게도 제가 실을 걸어놨던 곳에 한지가 올라가서 비를 맞았더라고요. 그래서 비 와 버렸네, 작업 망쳤다.’라고 하면서 정리하려고 작업실 밖에 나가서 보니까 종이에 비가 내린 모양대로 구멍이 잔뜩 나있었어요

▲우연히 그의 작업실 창문으로 날아든 비바람과 그 바람에 몸을 싣고 두둥실 떠오른 종이. 그리고 그 종이에 자신의 흔적을 남긴 빗방울들. 이러한 자연적인 요소들이 천영록 작가에게 큰 영감을 주었고, ‘자연의 힘’이라는 주제를 담은 작품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잔뜩 빗방울의 흔적을 담은 채 줄 위에 맥없이 늘어져있는 종이. 이 종이의 모습에서 천 작가는 새삼스럽게 자연의 위대함내지는 자연의 힘을 느꼈다.

“‘이거 뭐지? 정말 새롭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뒤로 이렇게 비를 맞으며 작업을 했어요. 우연치 않게 얻어진 작업이에요. 의도치 않게 자연이 알아서 해줬으니까요. 밥상만 차려주면 날씨가 알아서 다 해주고

우연히 그의 작업실 창문으로 날아든 비바람과 그 바람에 몸을 싣고 두둥실 떠오른 종이. 그리고 그 종이에 자신의 흔적을 남긴 빗방울들. 이러한 자연적인 요소들이 천영록 작가에게 큰 영감을 주었고, ‘자연의 힘이라는 주제를 담은 작품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지금도 천영록 작가에게 큰 영감을 남긴 그의 첫 작품은 그의 작업실 한편에 고이 모셔져 있다. 자연이 그에게 선물한 그의 첫 작품은 처음이상의 가치가 담겨 있어 단연 애착이 갈 만 하다. 천영록 작가는 저 작품은 주변에서 사겠다고 해도 안 팔고 계속 소장하고 있어요. 어려울 때 혹 할 때는 있었지만 이 작품은 끝까지 갖고 있으려고요라고 덧붙인다.

빗방울의 힘을 빌려 만든 작품 외에도 자연을 주제로 하는 그의 새로운 시도는 계속 되었다. 매일 소모되어지는 종이 신문, 하루가 지나면 생명을 잃어버리고 마는 종이 신문에게 새 생명을 주는 것이다.

신문을 물에다 풀어요. 다시 원 재료로 돌려놓는 거죠. 우리가 신문은 하루 딱 읽고 버리잖아요. 이렇게 버려진 신문에게 다시 새로운 생명을 준다고 할 수 있죠. 사실 원래는 한지를 재료로 작업을 하곤 했는데 한지 가격이 정말 비싸요. 그래서 작업하는데 굉장히 부담스러웠어요. 그러던 어느 날 지나가는데 신문이 보이는 거예요. ‘아 이 신문이면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다싶었어요. 신문을 재료로 쓰면 버려진 것을 주워오면 되니까 돈이 안 들어가잖아요

▲ <자연을 읽다>. 버려진 신문을 모아 물에 풀어 펄프로 만든 다음 바닥에 놓인 작업 공간에 뿌린다. 이로써 버려진 신문은 새 생명을 얻는다.
버려진 신문을 모아 물에 풀어 펄프로 만든 다음 바닥에 놓인 작업 공간에 뿌린다. 바지를 걷고 작업 공간으로 들어가 자유롭게 펄프를 뿌린다. 그 나름대로의 퍼포먼스다. 보통 한지공예하면 사람들은 색지로 무언가 만드는 것을 상상하곤 한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퍼포먼스와 이러한 과정을 통해 탄생한 작품은 순수미술에 가깝다.

버려진 신문을 모아 작업을 시작했는데 그때가 여름이 지나가기 시작하던 때였어요. 그래서 가을분위기를 담아 나뭇잎에 잎맥이 사라지는 과정을 표현했어요. 한편으로는 도시적인 거에서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신문 자체에 활자들이 너무 딱딱 끊어져있는 것을 제가 싹 무너뜨린 거죠. 새롭게, 자연적으로

작품을 만들 때 자유롭게 펄프를 막 뿌려요. 그 뒤에 그 뿌린 것을 그대로 말려서 떼 냅니다. 그래서 뿌릴 때의 느낌이 제대로 다 표현돼요. 같은 방법으로 만든 작품이라도 어떤 작품은 심하게 뿌려서 구멍이 많이 나 있고요, 또 다른 작품은 좀 그래도 조심스럽게 뿌렸는지 구멍이 적게 나 있어요. 작품마다 그 때 분위기가 담겨 있죠

그의 작품에선 색다른 시도도 나타나지만 남다른 관점도 돋보인다. ‘눈은 왜 하얀색일까?’라는 호기심은 한지를 여러 겹 덧대고 그 안에 형형색색의 점이 들어있는 작품으로 다시 태어났다.

저는 처음에 이 작품 작업을 여기에서 했는데, 이 건물이 재건축을 했거든요. 원래는 유리창이 컸어요. 그리고 저 뒤가 대나무 밭이었거든요. 창밖으로 내리는 눈을 보다가 불현듯 눈이 왜 흰색일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어요. 색이란 건 빛에 의해서 보이거든요. 눈은 내릴 땐 흰색으로 보여도 녹을 땐 여러 빛으로 빛나잖아요. 그래서 눈은 색이 있다라는 결론을 내게 되었어요. 작품에 여러 색상을 넣다 보니 많이 밝아졌어요

그 자연의 힘을 주제로 일종의 퍼포먼스를 담는 것이 그의 작품의 큰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기존의 종이를 사용하기 보다는 처음부터 작품에 알맞은 종이를 만든다는 것 또한 그의 작품만의 특색이다. 또한 다른 사람들은 그림을 그리기 위한 재료로 종이를 사용하지만 그는 종이자체가 작품의 소재이다. 종이 자체를 직접 만들어서 그만의 작품세계를 표현한다. 이것이야말로 다른 작가들의 작품과 그의 작품 사이에서 드러나는 뚜렷한 차이점이다.

이러한 특징들과 아울러 그의 작품에서 빠지지 않는 존재가 또 하나 있다. 바로 구멍이다.

대부분 제 작품에는 구멍이란 주제가 등장해요. 이러한 구멍을 신혼 첫날밤에 문을 손가락으로 뚫어놓은 것 같다고 하기도 하고. 구멍이란게 우리가 보면 궁금증을 유발하잖아요. 뚫려있으면 뭔가 한번 쯤 보게 되요. 그런 걸 유도해보고 싶었어요

그의 전시전에선 다른 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품명을 찾아볼 수 없다. 작품에 대해 정보가 없는 사람들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한 작가의 배려다. 또한 작품을 받아들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관람객으로 인해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것. 그것이야말로 정말로 작가가 바라는 점이라고 한다.

제 작업엔 정해진 답이 없어요. 그냥 일반인들이 보고 나는 이게 깊은 숲 같아’, ‘나는 저게 눈이 아니고 별자리 같고, 또 음표 같아이런 식으로 본인들이 답을 내려주면 돼요. 저도 물론 제 작업을 좋아하지만, 일반인들이 보고 좋아해주는 게 저는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지난 4월 개인전을 열었을 때, 명제를 다 뗐어요. 명제가 있으니까 관람객들이 명제를 먼저 보고 이게 어떻게 이거야?’, ‘이게 아닌데?’ 이렇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명제가 없이 이걸 보니까 관람객들이 스스로 작품을 보며 답을 주는 거예요. 의외의 반응들이 좀 있었죠. 작품을 보고 계신 분들에게 다가가 말을 주고받다 보면 그 사람의 시점에서 본 게 정말 새롭게 보이고 그러죠. 제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의 생각을 한 번 끌어내봤으면 좋겠어요

틀에 갇힌 것을 정말 싫어한다는 천영록 작가. 하지만 그는 작품을 액자라는 틀에 가두고 말았다며 웃는다. 관람객들에게 자신의 방식을 고수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작품을 본 사람들로 하여금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도록 인도하는 그의 모습에서 기성 작가와는 다른 새로움이 느껴진다.

천영록 작가는 흔히 사람들은 작품의 이름을 보고, 작가의 경력을 본 뒤 작품을 평가하게 돼요. 그래서 작품의 이름을 다 떼고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 그 방법도 좋은 것 같아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같은 작품을 보더라도 해석이 다 다르니까요라고 덧붙인다.

▲ <행복한 꿈으로 물들다. 2016-01>
작가로서 가장 기분 좋을 때는 모르는 사람들이 내 작품 좋다고 알아주고, 구입해줄 때에요. 제가 생각하고 있는 세상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때. 그것 같이 좋은 건 없죠. 전시를 할 때 매번 전혀 모르는 분들이 작품을 하나씩 사가곤 해요. 전혀 모르는 분들이 작품을 구입 해주고, 또 그걸 제가 댁에 가서 걸어드리곤 하는데 그 집에 다른 유명한 작가들 그림이 벽에 걸려있고 하면 제 눈도 즐거워요. 다른 작가들의 좋은 작품을 보고, 또 그 사이에 제 작품이 걸리고. 그럴 때가 제일 기분이 좋아요. 물론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것도 좋죠. 하지만 좋은 결과물이 좋은 사람들에게 간다면 더 좋지 않겠어요?”

천영록 작가는 진정한 남도의 멋이란 자연스러움이라고 생각한다. 억지로 꾸며진 것이 아닌 스스로 만들어진 자연의 멋. 집과 같은 편안함을 주는 자연,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남도의 멋이 아닐까 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남도의 멋은 그냥 자연스러움. 어떻게 막 꾸며진 게 아니고 그냥 자기 스스로 자연스럽게 만들어 진 것 같아요. 가면 편하고, 정말 우리 집 같고, 우리 동네 같고. 제 고향이 완도거든요. 밖에 나가보면 바닷물이 파도를 만들어서 돌멩이를 까맣게 적셔주고, 모래도 평평하게 다져주고. 그런 느낌인 것 같아요 남도의 멋이란 게

그리고 산에 가면 알아서 풀이 나있고, 그런 것들. 어쩌면 제 작품도 다 그거랑 연결성이 있죠. 완도에서 태어난 게 제 작품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봐요. 제가 도시에서 태어났더라면 이런 작업이 아닌 그냥 페인팅 작업을 했을 것 같아요.

자신의 생각들을 종이라는 소재로 자유분방하게 표현하곤 하는 천영록 작가. 사실 그에게도 나름의 고민이 있다. 지금은 남구에서 작업실을 지원받아 사용하고 있지만 이 작업실이 완전한 내 공간이 아니라는 것이 조금은 불안하다.

지금 이 공간을 예전부터 사용했는데 중간에 리모델링을 한 번 했어요. 그런데 리모델링을 하다 보니 안에 있는 것들을 옮겨야 했어요. 공사를 하니까 비워줘야 하잖아요. 그런데 이 과정에서 작품 60점을 태웠어요. 가져갈 곳이 없으니까

작품을 보관할 공간이 없어 자식같이 여기던 작품들을 태워버렸다. 갈 곳이 없는 그에게 있어 작품을 태우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작품들이 갈 곳이 없다고 괜히 남들에게 주고, 선물해주고 그러다보면 안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천영록 작가는 집 없는 사람의 설움을 느꼈다고 한다.

참 사람이 간사하게도 갈 곳이 없으니까 작품을 태웠는데, 막상 다시 들어오려고 보니까 그 60 점이 생각나더라고요. 그걸 괜히 남 주고 선물해주고 그러다보면 안 좋을 것 같아서 다 태웠었죠. 이 때 집 없는 설움을 느꼈어요. 작업실이 없으니까. 제가 지금 사용하는 작업실도 제 것이 아니잖아요. 편하지는 않아요. 갑자기 나가게 된다면 갈 곳이 없으니까 그게 불안한 거죠

이러한 불안감 때문에 그는 리모델링 차 양과동 빛고을공예창작촌의 작업실을 비운 동안 양림동 호랑가시나무창작소에 또 다른 둥지를 틀었다. 공간이 두 개라는 생각에 처음보다는 마음이 나아졌지만 천영록 작가는 언젠가 그만의 작업 공간을 갖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지금도 꾸준히 창작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천영록 작가. 그는 최근 전시 일정으로 몹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다가오는 67일 시립미술관 전시회, 71일의 개관 초대전, 그리고 이 외에도 다양한 전시 준비 때문에 그는 보내야 할 서류가 산더미에요라며 웃는다.

종이를 도구로써가 아닌 소재로 삼고, 다양한 생각을 자유롭게 펼쳐내는 천영록 작가. 작가의 다양한 시도를 통해 만들어진 그의 작품들에서 자연의 순수함을 담은 남도의 멋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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