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 멋을 찾아서(2) 극단 갯돌 손재오 예술 감독
남도의 멋을 찾아서(2) 극단 갯돌 손재오 예술 감독
  • 유현주 수습기자
  • 승인 2016.04.28 07: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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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고 순수한 남도의 멋을 작품에 담다”

▲ 손재오 예술 감독
모든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다라는 세네카의 명언처럼 자연스럽고, 순수한 남도의 멋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연출가가 있다. 바로 극단 갯돌의 손재오 예술 감독이다.

1984년 서울에서 극단 생활을 통해 예술 활동을 시작한 그는, 이듬해 고향인 목포로 돌아왔다. 마음이 피곤해 예술을 시작했지만 배가 고파 고향으로 돌아온 그였다. 서울에서 내려온 그는 어느 날 전봇대에 붙은 작은 광고를 보게 되었고, 이 광고는 그의 운명을 송두리째 뒤바꿔놓았다.

원래 서양연극을 했었는데, 우리 것에 대한 관심도 많았어요. 목포로 내려와서 길을 걷는데 전봇대에 탈춤강습회 회원을 모집한다는 광고가 붙어있더라고요. 이 기회에 탈춤을 배워보자 싶어서 광고에 써진 곳으로 찾아가 문을 두드렸죠. 그 곳이 극단 갯돌이었어요.”

손 감독은 그날, 그 순간을 전봇대에 붙은 광고 하나가 사람의 운명을 뒤바꿨다라고 표현한다. 영화 같은 운명. 전봇대에 붙은 작은 포스터였지만 손 감독은 그 포스터에서 자신을 끌어당기는 힘을 느꼈다고 한다.

고향에 내려오니 안정감이 들었다. 편안함 속에서 다시 뭔가를 시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든 그는 1985년 극단 갯돌에 입단해 <폭풍의 언덕>, <품바>, <우리읍네>, <만선>, <불감증> 등 연극은 물론 뮤지컬 <난영>, 마당극 <달머리 사람들>, <홍어장수 문순득 표류기> 등 다양한 작품을 기획하고 연출했다.

그는 멋을 즐길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정, 풍성한 먹거리 등이 어우러져 자연스럽고 순수하면서도 매력적인 남도의 멋이 된다고 생각한다. 자연을 닮은 순수한 멋. 이러한 남도의 멋과 신명이 후손 대대로 전해져야한다는 생각을 지닌 그는 그의 작품에 이러한 멋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또 고민한다.

▲ 신안군 우이도 출신 홍어장수 문순득의 3년 2개월에 걸친 여정이 담긴 뮤지컬 <홍어장수 문순득 표류기>
이러한 손 감독의 노력은 마당극 <홍어장수 문순득 표류기>를 통해 결실을 맺었다. 조선후기 신안 우이도의 홍어상인 문순득이 태풍을 만나 표류하며 일본 오키나와, 필리핀, 마카오, 중국 등을 거쳐 32개월 만에 고국으로 돌아오는 긴 여정을 담은 이 작품은 매 공연마다 객석을 가득 채우며 관객들 사이에서 크나큰 호응을 얻었다.

공연이 널리 알려졌을 때 가장 기뻤죠. 평소 작품을 만들 때 삶과 예술이 동일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딱 '홍어장수 문순득 표류기'가 예술과 삶이 동시에 움직인 케이스였어요. 이 작품에는 32개월의 고난에 찬 문순득의 역사가 있어요. 그는 우리 민초 중 세계를 처음 돌아다닌 한 사람인데, 그의 인생관을 우리가 좀 닮아갈 필요가 있고, 또 닮아가는데서 그치지 않고 그의 인생관을 기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이 문순득이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만든 거예요.”

폭풍우로 인해 표류하게 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문순득. 32개월간 머나먼 타국을 전전하면서도 고국으로 돌아가고 말겠다는 의지하나만으로 결국 고향땅을 밟게 된 그의 이야기는 충분히 현대의 사람들에게도 울림을 준다.

손재오 감독은 <홍어장수 문순득 표류기>를 완성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문순득 표류국가 상생 프로젝트를 통해 문순득을 대접했던 일본 오키나와, 필리핀, 마카오, 중국 등과 교류하며 홍어장수 문순득에게 은혜를 베풀었던 것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달했다.

우리 후세들이 문순득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들의 진정성을 알고, 그것이 예술로서, 삶으로서 이어지도록 교류를 한 것이다. 또한 이 교류가 예술을 넘어 삶의 태도로까지 연결되어지는 그 지점이 내가 작품을 하려는 의지라며 손 감독은 앞으로도 이런 교류를 계속 해나갈 것을 다짐했다.

문순득 프로젝트의 첫 대상은 일본 오키나와였다. 지난해 가을, 손 감독은 류큐왕국의 전통과 문화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오키나와를 방문해 교류하고, 또 류큐의 고대전통을 이어받은 에이사 무용을 보존하고 계승하는 소노다청년회 에이사를 초청해 함께 공연을 했다. 국적과 언어는 다르지만 문화라는 공통분모로 이들은 하나가 되었다.

또한 그는 <홍어장수 문순득 표류기>외에도 뮤지컬 <난영>을 통해 목포의 눈물을 부른 가수 이난영의 삶을 재조명했다. 이 또한 작품을 통해서 이난영 여사의 일대기와 살아온 내역을 재조명해 목포의 눈물이라는 노래로 인해 목포가 입은 은혜를 보답하고자 했다.

목포의 눈물을 부른 목포 출신 가수 이난영은 1965년 사망하면서 고향 목포가 아닌 경기도의 한 공동묘지에 묻히게 된다. 당시 연예인장으로 장례가 치뤼졌기 때문이다.

그 당시 이난영의 두 딸은 김시스터즈라는 이름으로 미국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는 가수였다. 바쁜 일정으로 인해 엄마의 죽음을 알았음에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미국에서 공연을 해야 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 이난영의 두 딸은 고국으로 돌아와 공연을 통해 엄마를 추모했다.

이난영은 고향을 소재로 한 노래를 부르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지만 죽은 뒤에는 먼 타지에 홀로 쓸쓸히 묻혔고, 그녀의 무덤 또한 관리해주는 사람 없이 오랜 시간 방치되었다.

손 감독은 이 사실을 너무나도 안타까워했다. 목포 출신이며, 목포의 눈물을 부른 가수 이난영의 유해가 목포로 돌아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다. 또한 이러한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지역민들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러한 생각들을 자신의 뮤지컬 <난영>에 담았다.

▲ 뮤지컬 <달머리 사람들> 중
그는 작품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원했다. 작년에 공연했던 뮤지컬 <달머리 사람들> 또한 작품을 통해 지역민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한 작품이었다. 작품을 구성하던 때 무안 월두리를 찾아가 갯벌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주민들을 만난 것이다. 지역민들과 줄 땡기기도 도와주고, 당산제도 함께 지내며 일명 친척관계를 맺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문화적인 지원을 하면, 또 마을 주민들은 갯돌의 단원들에게 낙지도 가져다주는 등 서로 끊임없이 정이 오갔다. 이 과정에서 손 감독은 예술가의 삶이 작품의 소재에 있는 사람들과 어떻게 연결이 되어야 하는지, 또 작품으로 완성된 뒤에 어떻게 관계로 번져나가는지 등의 부분에 대해 깨달음을 얻었다. 월두리 주민들과의 소통을 통해 삶과 예술이 동일시되는 자신의 예술관을 실현한 것이다.

한편, 손재오 감독은 자신과 같은 분야를 꿈꾸는 젊은 친구들에게 당연한 이야기지만 젊을 때 이것저것 다 해봐야 해요라며 모든 일을 몸으로 직접 체험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몸이 말하는 것이 있어요. 몸을 통해 텍스트를 정리하는 것이지, 텍스트를 먼저 받아들이고 몸으로 무언가를 하려 하면 잘 되지 않죠. 몸이 굉장히 중요해요. 몸은 마치 여행자처럼 이곳저곳 떠돌며 돌아다녀야 해요. 그래야 시각이라던가, 청각이라던가. 또 내가 만지는 촉각이라던가, 이러한 오감이 다양한 것에서 경험되어지고 기억되어지고, 쌓아나가면서 내 자신이 만들어지는 거죠.”

또한 그는 이러한 과정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포인트’. 골든타임을 놓치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다양한 경험 속에서 집중을 통해 자신만의 한 가지를 완성해나가고는 그 포인트. 그 부분을 잘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인생을 살다 보면 골든타임을 놓치는 경우가 많아요. 이것저것 해보면서 쌓은 경험들 속에서 하나를 고르는, 다양한 과정 속에서 집중해야 하는 그 포인트. 골든타임이 정말 중요해요. 이러한 골든타임을 적절한 시기에 잘 잡는 게 중요하죠.”

손재오 감독에게 있어 인생의 골든타임은 바로 아내를 만나 결혼해, 한 자리에 정착한 것이라고 한다. 젊었을 때 거친 생활을 통해 여러 경험을 얻은 그가 결혼을 통해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결혼을 하면 예술을 그만두고 생계를 위해 직장을 구하는 예술인도 많은데, 손 감독은 오히려 결혼을 통해 예술적 정신을 살찌웠다.

“‘결혼이라는 계기가 나를 더 가난하게 만들었지만 이 계기를 통해 예술적 정신을 더 살찌우게 되었어요. 가족들이 금전적인 지원은 못해도 마음 쪽으로는 아낌없이 지원을 해주죠. 이러한 가족들의 지원 덕분에 다행히 저는 안정되게 예술을 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결혼을 제 인생의 골든타임이라고 생각하죠. 가끔 만약 골든타임을 안 잡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생각도 들어요. 하지만 골든타임 이후로부터의 가난, 수많은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타이밍을 잘 지켰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최근 그는 지난해부터 계속 추진해온 문순득 표류국가 상생프로젝트를 위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 오키나와 소노다청년회 에이사를 한국으로 초청한 것에 이어, 올해는 필리핀 공연단을 초청할 계획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그는 홀로 필리핀에 다녀왔다. 필리핀에서 사람들과 교류하고, 또 이들을 올해 9월 한국으로 초청한다. 또한 앞으로 마카오, 중국 등도 방문해 공연단을 초청할 계획도 있다.

“1801년부터 1803년까지 문순득이 지나온 여정을 오늘의 여정으로 바꾸는 것. 그 당시에는 고난의 여정이었지만 이제는 행복한 여정으로 만드는 것. 선조들이 보냈던 고난의 여정을 기리고, 동아시아 연대를 예술과 삶을 통해 이뤄내겠다는 것이 바로 문순득 프로젝트에요.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에 의지해 세계적으로 무엇을 할 수도 있지만 이는 극히 단발적이고 오래 가지 못해요. 질기고 오래갈 수 있는 것은 결국 민간끼리 만나, 애틋한 만남을 갖는 것이죠.”

▲ 2015 목포 세계 마당 페스티벌
아울러 그는 올해 825일부터 28일까지 진행되는 목포세계마당페스티벌준비도 열심히 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마당놀이를 신명나게 즐기자는 취지의 '세계마당페스티벌'은 2015년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대표공연예술제 관광자원화사업2년 연속 선정 및 A등급 최우수 평가를 받았다. 또 관객들에게 전통의 마당을 현대적으로 확장시켜 지역의 특화된 공연축제로 성장하고 있다며 호평을 받기도 했다.

세계마당페스티벌은 이제 전국적인 것을 넘어 세계적인 축제가 되었어요. 우리 단원들이 끊임없는 애정을 가져줬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를 끌어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삶과 예술을 동일시하는 예술관을 가진 인간미 넘치는 예술가. 작품의 흥행보다는 작품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오는 사람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손재오 예술 감독 그의 작품 하나 하나에 자연스럽고 순수한, 진득한 정이 담긴 남도의 멋이 서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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