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걸어요(14)금남로, 광주의 상징으로 도약
함께 걸어요(14)금남로, 광주의 상징으로 도약
  • 정인서 기자
  • 승인 2015.08.27 1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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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공동체, 빛과 생명의 거리로 승화시켜야
충장축제, 월드뮤직페스티벌 등 다양한 공연

‘금남로(錦南路)’.
이 세 글자를 적어놓고 더 이상 쓸 말이 별로 생각나지 않았다. 광주의 상징으로 가슴 속에 불길처럼 남아있는 이 길에 대해 어떤 수식어를 더 붙일 수 있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앞섰기 때문이다.
금남로에 대한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곳은 기쁨보다 슬픔이 더 많은 곳이 아닐까 싶다. 금남로는 옛 전남도청, 지금은 아시아문화전당이 들어서는 곳부터 쭉 뻗어있는 큰 대로이다. 길이 2.3㎞, 너비 30~40m이며 금남로 1~5가로 이루어져 있다. 문화전당 앞 광장에서부터 광주천 발산교까지를 잇는 도로다.
금남로는 피로써 민주주의를 지켜낸 ‘5·18광주민중항쟁’의 현장이다. 정치적으로 용어를 순화시켜 ‘광주민주화운동’이라고 바꾸어 부르고 있다. 어쩐지 마땅치 않다. 정치적 책략에 다름 아니다. 아직도 이 두 용어가 혼용되어 사용되고 있지만 후자가 ‘공식 명칭’으로 쓰인다.
1980년 5월 당시 오랜 박정희 군사정권의 몰락 이후 민주화의 열망을 기대했던 광주사람들은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려는 전두환 등에 반대하는 집회를 연일 열었다. 광주사람들에게 분수대 광장은 항쟁의 본부였고 이곳을 중심으로 금남로 1가, 2가, 3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시민들이 매일 운집하여 두 손 번쩍 들며 함성을 외치며 항쟁의 의지를 불태웠던 곳이다.
금남이란 이름은 정충신(鄭忠信) 장군의 군호인 금남군(錦南君)에서 따온 것이다. 정충신의 시를 새긴 시비가 광주사직 공원에 있다. 아마도 정충신 장군의 얼을 이어받은 지역을 뜻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5.18 분수대와 시계탑, 시민 품으로

광주시가 발주한 몇몇 용역보고서를 보면 금남로를 ‘인권의 거리’로 부르는 게 좋다는 의견들이 있었다. 또는 ‘민주의 거리’로 하자는 사람들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렇게 부른다고 해서 거리 이름이 그렇게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광주 밖의 사람들이 금남로를 어떻게 부르는가에 달려 있다. 얼마 전 금남로 보도환경 개선사업, 일명 명품길 콘텐츠회의를 한 달여간 참여한 적이 있다. 광주와 서울지역 전문가들이었다. 이 회의에서는 금남로가 바로 항거의 상징이고 민주와 인권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금남로’라고 부르자는 데 서로 동의했다.
금남로는 관청가로 형성되기 시작하여 지금은 수많은 은행, 보험, 관공서 등 빌딩들이 들어서서 광주의 중추 기능을 하고 있다. 5.18 추모 행사 때는 온 시민이 금남로에 모여 광주의 혼과 넋을 위로하고 그 날의 아픔을 함께 한다.
서석로에 속하는 문화전당 앞 광장에는 최근 분수대가 재가동을 위해 개보수 중이다. 1971년에 만들어진 이 분수대가 44년 만인 지난 7월부터 보수공사를 벌이고 있다. 5․18 사적지 27곳 가운데 유일하게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다. 2010년 6월 주변 냉각탑 붕괴 사고 등으로 분수 가동이 중단됐었다.
한때 농성광장으로 옮겨졌던 시계탑도 되돌아왔다. 시계탑은 5․18 당시 사건의 현장을 ‘목격’했던 상징적 의미가 있었다. 1980년대 중반 농성광장으로 옮겨진 시계탑은 원래의 자리로 복원돼야 한다는 시민 염원에 따라 당시 관련자들의 증언, 5․18기념사업위원회 자문과 문화재 전문가의 검증 등을 거쳐 복원사업이 진행됐다.
특히 5․18종소리는 복원 과정에서 오월의 추모곡이자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노래인 ‘님을 위한 행진곡’을 음악 전문가의 재능 기부와 자문을 통해 5개국 8개 버전의 차임벨로 편곡해 매일 오후 5시18분에 울려 퍼지도록 했다.
당초 시계탑은 지난 1971년 청년회의소 전국회원대회 광주 개최를 기념해 광주청년회의소와 자매결연한 일본청년회의소가 선물한 것으로 당시 10여년간 옛 전남도청 앞 광장을 지키며 5·18민주화운동을 비롯한 광주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지켜봐왔다.
논란은 있었지만 민주의 종도 다시 설치해 타종을 하기 시작했다. 또한 지하상가가 형성되면서 분수대 밑에 자리한 만남의 광장은 자율적인 공연 행사도 많으며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1969년 확장 이후 금융가 중심 재편

금남로 1가는 원래 광주군 성내면(城內面)에 속한 지역으로 북내라고 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상촌리·하촌리·시리·성저리(城底里) 일부를 합하여 북성정이 되었다. 1927년에는 일본식 지명인 본정1정목(本町1丁目)이 되었다가 8·15광복 이후 일본식 지명을 없애면서 금남로 1가가 되었다.
문화전당 건너편 충장로 1가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수협중앙회 광주지점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주차장 부지로 사용되고 있다. 문화전당에서 거리를 따라 걸으면 왼쪽에는 YMCA 건물과 그 뒤편에 시인이자 의사인 진헌성씨의 진내과의원이 있다
금남로가 1969년에 오늘의 모습처럼 확장되면서 오른쪽에는 1970년대에 금남로거리에 위치한 최초의 고층건물이었던 전일빌딩이 있다. YMCA와 전일빌딩은 광주의 오랜 상징을 담는 곳이다. 전일빌딩은 최근 광주시가 지역의 문화콘텐츠를 담는 장소, 또는 신문박물관 등이 용도를 검토 중에 있다.
왼쪽으로 길을 따라 들어가면 젊음의 거리라 부르는 충장로의 핵심인 ‘우다방’을,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동부경찰서와 학원가가 즐비한 곳이다. 두 곳을 걸러보면 다른 청춘들의 모습들을 볼 수 있다.
금남로 2가도 광주군 성내면에 속한 지역이지만 성내라고 하였다. 당시 광주읍성을 기준으로 성 안쪽이라는 뜻이다. 왼쪽은 거리에는 주로 은행과 증권 등 금융가 빌딩이 자리하고 오른쪽에는 1973년 7월 1일 광주시의 중부와 동부, 북부출장소를 통합 발족해 사용했던 구 동구청이 있었다. 이곳은 광주상공회의소가 1971년부터 금남로회관으로 사용했던 곳이다.
동구청 건너편에는 1980년대까지 광주관광호텔이 있었다. 그 터에 1990년대에 지금의 무등빌딩이 금남로의 최고층인 15층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금남로 2가 27번지의 우리은행 금남로지점은 옛 상업은행 광주지점 건물로 일제강점기의 근대식 건축물이다.
금남로 3가는 광주군 기례방에 속한 지역으로 성저라고 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후리·보통리 일부를 합하여 성저리가 되었다. 금남로3가는 해방 이전부터 광주재판소와 광주법원 등 관공서 건물이 위치했다.
기존의 법원 건물은 지산동으로 이전하고 그 자리에 금남로의 대표적인 경관이라 할 수 있는 광주은행, 가톨릭센터, 건물과 금남맨션이 들어섰다. 특히 광주은행 본점은 1979년에 금남로와 중앙로가 교차하는 위치에 9층 건물로 건축하여 사무 및 금융시설의 고층화를 가져오는 계기를 만들었다.

광주시, 금남로 명품길 사업화 추진

가톨릭센터는 광주민주화운동기록관으로 바뀌었다. 264억원을 들여 개보수해 만들었으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5·18 관련 기록물과 기념재단 및 5·18 연구소의 소장자료, 국방부와 국회에서 소장하고 있는 자료 사본 등이 전시, 보존되고 있다. 기록물은 5.18 당시 공문서, 시민군 일기장, 재판기록 등 4천271권에 85만8천940쪽, 흑백필름 2천17컷, 사진은 1천733장에 달한다.
광주은행 건너편에는 1950년 6월 한국은행 광주지점이 개설되었는데 1999년 11월 상무지구로 이전한 후 시민들의 요청에 따라 지금은 금남로공원으로 조성되었다. 이곳에는 1960년 4월 19일 자유당정권의 독재화 부정선거에 항거하다가 7명이 산화하고 백여명이 부상당한 곳으로 2011년 1월 4.19혁명기념사업회가 표지석을 세웠다.
또 광주폴리Ⅰ의 ‘유동성 조절’이라는 알레한드로 자에라폴로의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이는 금남로공원 북쪽 모서리 지하도 상가 출입구 양쪽으로 연결하여 공원과 인도, 지하도 상가가 상호 유기적으로 공존하는 개념을 도입했다는 설명이다. 이 작품은 공원 쪽에서 보면 제법 괜찮은 모습이지만 도로 쪽에서 보면 교통방해를 일으키는 장애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금남로 1가의 문화전당 앞에서 옛 광주은행 사거리 518m는 5·18광주민주화운동 등 한국 현대사의 역사를 간직한 곳으로 2011년 8월 30일 광주시에 의하여 ‘유네스코 민주인권로’로 지정되었다.
금남로 4가는 대신증권과 삼성생명, 아모레화장품 등의 건물이 특색 있게 건축되어 있고 나머지는 1970년대 이전의 건물들이 상당수 그 흔적을 갖고 있다.
금남로 5가는 교보빌딩이 높게 자리하고 있는 가운데 청장년의 일자리를 찾아주는 광주종합고용지원센터 빌딩이 있고 수창초등학교가 자리한다. 이 거리의 특색은 유명 브랜드의 가구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가구의 거리라는 것이다.
지난 7월에는 2015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에 맞춰 광주시와 광주U대회 조직위원회가 각각 마련한 '2015세계청년축제'와 '청년난장페스티벌'이 동시에 금남로 일대에서 열리면서 금남로는 세계 젊은이들의 교류와 화합의 장으로 변신하기도 했다.
또한 매년 10월이면 광주 동구가 마련한 충장축제가 금남로 1~3가 일원에서 성대하게 열린다. 더욱이 광주시가 금남로1~3가를 명품길로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이를 위해 도로환경 개선사업과 함께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담을 내용에 대한 검토를 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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