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걸어요(5) 임란 의병 박광옥을 기리는 회재로
함께 걸어요(5) 임란 의병 박광옥을 기리는 회재로
  • 박용구 기자
  • 승인 2015.06.25 14: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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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와 나주를 이어주는 또 하나의 주요 간선도로 기능
▲ 회재로는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에서 지석천을 건너 서창방면 좌측 도로에서 바로 시작해 고싸움놀이테마파크, 전평제, 서부농수산물도매시장, 풍암호수, 국제양궁장, 백운광장 고가도로가 시작하는 대남대로를 지나 프라도호텔 위 사거리에서 독립로를 만나면서 끝이 난다.

회재로는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에서 지석천을 건너 서창방면 좌측 도로에서 바로 시작해 광주광역시 남구 독립로까지 이어진 15.534km 연장의 꽤 긴 도로다. 또 광주에서 나주로 가는 또 하나의 통로이기도 하다.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 옛 광이리에서 1번지를 시작하는 회재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먼저 하얗게 무리지어 늘어선 비닐하우스 군락이 눈에 들어온다. 이어 이 길은 충렬공 고경명(忠烈公 高敬命)을 모시고 있는 포충사로 가는 포충길과 고싸움놀이테마파크, 부용정칠석동은행나무로 갈 수 있는 다른 길들과 만난다.

광주의 회재로는 바로 이 칠석동에서부터 프라도호텔 위 사거리까지 연결되는 12.98km다.

한적한 국도의 풍경을 담고 있는 이 길을 따라 조금 더 가다보면 용두동 지석묘로 가는 길이 나오고, 연산군이 예뻐했던 후궁의 아버지 우부리를 잡아 장살(杖殺. 죄지은 자를 때려죽이는 사형방법)시킨 조선 중기 문인이며 의인이었던 박상의 호를 따 붙인 눌재로도 나온다.

정감있는 시골풍경은 회재 박광옥이 직접 만들었다는 전평제까지 이어진다. 전평제는 원래 450여년전 회재가 1568년 그의 나이 43세 때 당시 광주 선도면 개산(蓋山), 현재 매월동 회산(懷山)에서 살면서 매월과 벽진마을 주민들의 물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개산 남쪽의 물을 끌어들여 농사를 짓기 위해 방죽을 막아 개산방죽(介山防築)이라 이름한데서 유래하고 있다.

▲ 전평제는 원래 450여년전 회재가 1568년 그의 나이 43세 때 당시 광주 선도면 개산(蓋山), 현재 매월동 회산(懷山)에서 살면서 매월과 벽진마을 주민들의 물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개산 남쪽의 물을 끌어들여 농사를 짓기 위해 방죽을 막아 개산방죽(介山防築)이라 이름한데서 유래하고 있다.
회재는 이 방죽에 인공섬을 만들어 수월당을 짓고 기대승(奇大升)·박순(朴淳)·이이(李珥)·노사신(盧思愼) 등과 교유했다. 회재로는 바로 이 조선 중기의 문신인 회재 박광옥을 기리기 위해 그의 호를 따서 지난 2009년 행정안전부 장관이 고시했다.

회재는 1526년(중종 21)에 광주에서 태어나 1593년(선조 26)에 광주에서 생을 마감한 문신이다. 본관은 충청북도 음성(陰城)이다. 1546년(명종 1)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나주 선도면(船道面)에 집을 지어 개산송당(蓋山松堂)이라 이름하고 문하생들과 함께 성리학을 연구하고 향약을 실천했다.

1568년(선조 1) 학행으로 천거되어 내시교관(內侍敎官)에 임명되었다. 1574년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종부시주부가 되었다. 1578년 전라도·충청도의 도사를 거쳐 1579년 예조정랑, 1580년 지평이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신병으로 관직에서 물러나 있으면서 고경명(高敬命)·김천일(金千鎰)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고, 고향의 의병도청(義兵都廳)에서 군대의 장비와 양식을 조달했다. 당시 전라감사 이광(李洸)의 무능을 탄핵했으며, 새로 감사에 부임한 권율(權慄)을 도와 많은 공을 세웠다. 의병 활동의 공로로 다시 관직에 올라 나주목사로 재임하다 운명했다.

1602년(선조 35) 서창 벽진동(碧津洞)에 세워진 의열사(義烈祠)에 제향되었으며, 뒤에 벽진서원으로 고쳐졌다. 운봉(雲峰)의 용암서원(龍巖書院)에도 제향되었다.

전평제에서 회재로는 다시 서부농수산물도매시장, 시청자미디어센터, 서구 신흥개발지역인 풍암1지구, 풍암저수지, 풍암생활체육공원, 풍암2지구 등을 옆에 끼고 지나면서 서우로, 풍금로, 월드컵 서로, 월드컵 동로 등과 만난다.

회재로가 끼고 있는 이들 풍암저수지와 풍암생활체육공원은 이 지역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서 기능을 톡톡히 하고 있다.

원광대 한방병원을 조금 더 지나면 2015년 광주하계U대회 양궁경기가 펼쳐지는 신축 국제양궁장이 나오고, 이 길은 회서로, 군분로와 만나고 헤어지면서 백운광장 고가도로가 시작하는 대남대로를 지나 프라도호텔 위 사거리에서 독립로를 만나면서 끝이 난다.

회재로에 대한 길 안내는 곳곳에 나무랄 데 없이 잘 되어 있었다. 번지수를 구간별로 안내하고 있어 참 보기 좋았다.

다만 “회재로라는 도로명 주소는 알아도 왜 회재로라고 이름을 지었는지는 모른다”는 지역 주민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먼저 회재가 누구인지, 어떠한 일들을 했는지, 왜 회재로라고 도로명을 지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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