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걸어요(4) 눌재로
함께 걸어요(4) 눌재로
  • 권준환 기자
  • 승인 2015.06.16 18: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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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명 붙이기보다 새로운 문화 재생산해야

눌재로는 남구 압촌동에서 서구 서창동과 벽진동에 걸쳐 있는 도로다.
눌재로를 통해 서구에서 선정한 서구 팔경(八景)인 용두동지석묘와 만귀정(晩歸亭)을 둘러볼 수 있다.
또한 근처 서창둑길은 영산강을 따라 자전거를 타는 즐거움도 맛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눌재로의 ‘눌재(訥齋)’는 조선 중기 문인이었던 박상(朴祥)의 호다. 박상은 1474년(성종5년)에 광주에서 태어났다.
박상의 아버지 박지흥(朴智興)은 세조(世祖)가 계유정난(癸酉靖難·1453)을 일으켜 왕위를 찬탈하자 벼슬을 포기하고 처가인 지금의 서창동으로 내려왔다.

박상은 28세 되던 해 식년시(조선시대 식년(式年)에 시행된 과거시험-정기적으로 3년에 한 번씩 열렸다) 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교서관정자(校書館正字), 승문원교검(承文院校檢), 병조좌랑(兵曹佐郞) 등을 거쳐 전라도 도사(都事)를 지냈다.

우부리 장살 사건, 목숨을 건 의로움

박상이 전라도 도사를 지낼 때에 나주에 남의 논밭을 빼앗고 부녀자를 겁탈하는 등 몹쓸 짓을 서슴지 않는 우부리(牛夫里)라는 자가 있었다. 우부리의 딸은 연산군이 예뻐하는 후궁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우부리에게 뭐라 하지 못하고 속만 태울 수밖에 없었다. 명색이 왕의 장인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박상은 우부리를 잡아 장살(杖殺. 죄지은 자를 때려죽이는 사형방법)시켰다. 이를 안 연산군은 자신의 장인을 사형시킨 박상을 체포할 것을 명한다.
박상은 화를 피하지 못할 것을 예상하고 스스로 상경한다. 하지만 박상을 체포하기 위해 내려오던 금부도사(禁府都事)와 길이 엇갈렸고, 그 사이 중종반정(中宗反正·1506)이 일어나 화를 면할 수 있었다.

박상은 바른 소리를 직언할 줄 아는 신하였다. 그는 담양부사로 부임할 적에 순창군수였던 김정(金淨)과 함께 중종반정 때 폐위된 단경왕후(端敬王后) 신씨(愼氏)의 복위를 간청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중종의 노여움을 사 나주로 유배되기도 했다.

일부 학자들은 박상이 자신의 목숨이 날아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우부리를 사형시키거나, 단경왕후 복위를 간청하는 등 불의를 참지 않았기 때문에 그로부터 ‘의향(義鄕)’의 전통이 시작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이처럼 광주 출신의 훌륭한 위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이 사실이다. 박상의 호를 따 이름을 붙인 눌재로에도 이 위인에 대한 간단한 정보조차 전혀 없다.
또한 눌재로 구간의 대부분이 인도 없이 차도만 있어 걸어 다니기엔 굉장히 위험했다.

눌재로, 왜 '눌재'로인지 알 길 없어

그래도 눌재로라는 이름만큼 박상 공을 기리는 기념비랄지 제사를 모시는 재실, 또는 묘가 있을 줄 알았다. 실제로 걸어보기로 했다.
서창동주민센터 바로 옆에 있는 서창향토문화마을을 지나, 서구 팔경 중 하나인 만귀정도 만나볼 수 있었다. 하지만 눌재로 끝 벽진교에 다다를 때까지 눌재 박상과 관련된 표지판이나 그밖에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

결국 차를 타고 눌재로와 회재로가 만나는 사거리를 지나 사동길로 접어들어 눌재 박상의 재실과 묘, 생가터가 있는 사동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동마을로 들어가는 입구 역시 아무런 안내가 되어 있지 않았다.

마을 입구에 차를 대고 올라가고 있으니 아저씨 한 명이 무슨 일로 이곳을 찾았는지 물으며 다가왔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자신이 안내해주겠다고 한다.
그는 박상의 후손인 박종석 씨였다.
눌재 박상의 재실을 본 후, 마을 뒤편 봉황산 중턱에 있는 묘까지 둘러봤다.
박종석 씨는 “후손인 우리도 훌륭한 선조를 알리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광주시 또한 함께 힘을 보태줬으면 좋겠는데 관심이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단순히 위인의 호를 따 도로의 이름을 짓는다고 해서 위인을 기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광주시가 광주 출신으로서 업적을 남긴 선조들을 알리고 이를 통해 광주만의 새로운 문화를 재생산하기 위한 노력들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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