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양님, 하나님 은총 속 지역 ‘여성운동’ 이끌다
최양님, 하나님 은총 속 지역 ‘여성운동’ 이끌다
  • 김다이 기자
  • 승인 2014.01.02 02: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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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친화도시 광주, 텃밭 일구는 여성일꾼들(8)
광주 YWCA 최양님 회장

▲광주 YWCA 최양님 회장
광주지역을 대표하는 전통 깊은 최초 여성단체는 광주 YWCA가 있다. 광주 YWCA는 1922년 척박했던 식민지 현실 속에서 여성 계몽운동 등을 위해 처음 문을 열었다.

그리고 광주YWCA의 목적에 부합한 여성운동, 청소년운동, 환경운동, 평화통일 운동 등 시대가 요구하는 운동을 지역사회와 함께 이루어가며 시대적 사명감을 감당해왔다.

그 가운데 지난 2012년 제 27대 회장으로 취임한 광주YWCA 최양님 회장을 만나봤다. 전통은 무시할 수 없다는 말처럼 90년 역사가 넘은 광주 YWCA는 여성운동을 이끌어온 장본인이다. 광주 여성들의 인권, 지위향상을 위해 지금까지 밑거름 역할을 해왔다.

최근 불거진 성빈여사 사건 거듭 사과

최근 <시민의소리>가 보도했던 광주 YWCA 산하기관인 ‘성빈여사’ 그룹홈의 아동생계비 유용에 이어 대규모 비자금 조성 문제가 불거지면서 떠들썩한 적이 있다.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는 복지 시설이었기에 이번 일은 지켜보던 사람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줬다.

한해를 마감하는 2013 마지막 날에 광주YWCA를 찾았다. 최 회장을 만나고 그녀는 가장 먼저 ‘성빈여사’에 대한 사과의 말을 입에 올렸다.

광주YWCA의 수장이자 총책임을 맡고 있는 최 회장은 “올해의 가장 가슴 아픈 일은 성빈여사의 사건이고, 아직도 마무리 짓지 못해 자꾸 마음 속에 걸리고 안타깝다”며 “그렇게 되기까지 몰랐다는 사실이 책임을 맡고 있는 입장에서 시민들에게 너무 죄송스럽고, 후원해주고 있는 분들에게도 죄송스럽다”고 사과의 말을 거듭 강조했다.

평소 최 회장이 갖고 있는 생활신조는 ‘정의’라고 한다. 정의가 언제나 ‘승리’ 한다는 말처럼 잘못된 것을 보면 지적을 하고,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녀는 현재 갖고 있는 솔직함 감정도 표현했다. 그래서 인지 그녀의 진정성, 진솔함을 배로 느낄 수 있었다.

최 회장은 “광주 YWACA와 광주 여성운동계를 이끌어온 조아라 회장님도 연세가 많으셔도 항상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시정할 수 있도록 정의 편에 있으셨다”며 “그렇기 때문에 정체성을 회복하고 찾아가야 하는데 그게 잘 되지 않고 있고, 그러다보니 솔직히 스스로 움츠려 들곤 하다”고 털어놨다.

여성운동가 다수 배출한 수피아여고 졸업

하지만 광주 YWCA가 걸어온 발자취를 함께한 그녀는 약 30여 년간 여성운동계에 몸을 담구면서 지역사회와 시대가 요구하는 여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늘 앞장 서왔던 것도 사실이다.

광주가 여성친화도시로 선정되기까지 광주YWCA에서 여성운동을 하며 그 밑바탕을 그리는 일에 일조했다.

그녀는 화순 동면 오곡 산골마을에서 1947년에 태어났다. 어린 시절 늘 동네 어른들에게 사랑을 받고 자라왔다던 그녀는 3남 1녀 중 집안에서 딱 하나뿐인 외동딸이었다.

어린 유년시절을 떠올리며 “어렸을 때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대단히 예뻐해 주시고 사랑을 받고 자라왔다”며 “양념딸(혹은 고명딸, 아들이 많은 집의 외딸), 양념딸 불리다가 ‘양님’ 이름을 갖게 됐다”고 회고했다.

화순에서 초등학교까지 다니다, 계속해서 공부를 하기 위해 광주에서 동생과 오빠와 함께 중학교 시절부터 자취를 시작하게 됐다.

한편 그녀는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광주의 수많은 여성운동가를 배출한 수피아여고를 졸업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수피아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대단하다.

최 회장은 “제가 수피아여고를 다니면서 하나님을 알게 됐고, 조아라 회장님을 알게 된 것도 수피아를 졸업하고 나서 총동창회 활동을 하면서 인연이 시작됐었다”며 “그 인연을 시작으로 조아라 회장님을 따라 지난 1987년부터 광주YWCA에 몸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Y활동 중 ‘의정지기단’ 가장 의미있어

1970년 결혼 이후 평범하게 살아왔던 그녀는 광주 YWCA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여성운동의 의식을 깨우쳐나갔다. 처음 광주YWCA의 수많은 위원회 중 건물관리부위원회 위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 1988년 광주YWCA 이사가 됐다.

90년대 광주YWCA에서는 우리 농산물 소비운동을 펼치고, 여성이 의정활동을 모니터하는 의정지기단을 만들어 풀뿌리 민주주의 정착에 기여했다. Y안에서도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녀는 ‘의정지기단’활동을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으로 손꼽았다.

최 회장은 “1995년 발족한 광주YWCA 의정지기단에서 단장 역할을 맡으면서 기초의회에 대한 주민의 관심을 일깨우는 촉매역할을 하면서 가장 재미있게 활동을 한 기억이 있다”며 “의회를 방청하면서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그때 그 시절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조금 더 고통을 감내하고 선배님들과 함께 늘 여성운동을 하는 모습이 생각난다”고 떠올렸다.

하지만 지금은 좋은 여건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일한 생각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덧붙였다.

이후 그녀는 1996년 사회적으로 쓰레기 소각장 문제, 음식물 쓰레기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환경운동에도 동참했다. 최 회장은 “그때부터 줄곧 환경운동만 해왔더라면 환경에 대해 또다른 일가견이 있었지 않았을까요”라며 아쉬움을 내비췄다.

지금은 일주일에 한번씩 무등산 입구쪽에서 ‘탈핵운동’을 하고 있다. 그래서 임기동안 환경 분야와도 관련이 있는 탈핵운동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는 듯했다.

조아라 회장 철학, 소신 담긴 기념관 세워야

이 외에도 Y목적에 부합한 여성운동, 청소년운동, 환경운동, 평화통일운동 등 지역사회와 함께하며 1997년 하나님의 은총으로 전남노회 여전도연합회 회장을 맡기도 했다.

현재 광주에 있는 여성단체와 차별성에 대해 질문하자 “YWCA는 여성운동을 하면서도 먼저 하나님의 은총 안에서 목적을 두고 여성운동을 하고 있다”며 “단독으로 광주 YWCA에 가입한 회원만 해도 7천여 명의 회원이 있다는 저력이 있고, 바람이 있다면 광주시민 150만 명의 1%정도는 회원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 1만 5천명 회원모집에 노력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광주YWCA만의 큰 매력을 느끼며 지역여성운동 중심에서 함께 걸어온 그녀는 지난 2009년부터 2011년까지 부회장을 맡고, 2012년 광주YWCA 회장으로 선출됐다.

최 회장이 선출된 지난 2012년은 광주YWCA 창설 90주년이었기에 더욱 특별했다고 한다. “특별히 90주년 행사를 4월부터 시작해서 11월까지 하면서 수많은 행사를 하고, 주변에서 재능기부도 많이 해주셔서 아주 뜻깊은 한 해였다”며 “북한어린이 분유보내기 운동, 시민걷기대회, 기념음악회 등 바쁜 한해였다”고 말했다.

앞으로 그녀는 “언제나 늘 약자의 편에 계시며, 여성운동의 한 획을 그은 조아라 회장님을 추모하기위해 현재 조아라기념사업회에서 기념관 건립을 위해 준비 중에 있는데 회장님의 철학과 소신을 담아낼 수 있는 기념관이 세워졌으면 좋겠다”고 기도했다./김다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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