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경미, “이제는 풀뿌리 ‘여성운동’이 실현돼야 한다”
주경미, “이제는 풀뿌리 ‘여성운동’이 실현돼야 한다”
  • 김다이 기자
  • 승인 2013.10.14 0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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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친화도시 광주, 텃밭 일구는 여성일꾼들(1)

 빛고을 광주는 지역정책과 발전에 남녀가 동등하게 참여하고, 그 혜택이 모든 주민들에게 고루 돌아가면서 여성의 성장과 안전이 구현되도록 조성하는 ‘여성친화도시’ 사업이 한창이다. 여성이 살기 행복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여성친화공간을 확대하는 등 다양한 성과를 바탕으로 그 결과 지난 2011년 여성가족부가 인정한 전국 최초의 ‘여성친화도시 광역모델’로 선정되어, 여성친화도시 정책의 선도적인 광역시로 인정받고 있다. 앞으로 <시민의소리>는 여성친화도시를 나아가 여성가족친화도시를 구현하기 위해 광주 전역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성 활동가들을 만나 그들만의 속내 깊은 이야기를 담아본다.<편집자주>

21세기에 접어들면서 그동안 보조적인 역할만 해오던 여성들이 사회 주요 무대에 나서게 되고, 이제는 획기적인 정책을 구현할 수 있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심부에 점점 자리하고 있다.

생물학적 이유로 성차별을 당했던 여성들이 경제활동에 일조를 하게 되면서 여성의 인권, 여성 인력 개발 등의 개선점을 찾아 나서게 된 것이다.

그동안 공공연하게 겪어오던 여성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르게 되고, 우리나라에도 ‘여성발전기본법’이 제정되고, 여성특별위원회를 거쳐 지난 2001년 여성부가 공식적으로 출범해 현재 여성가족부로 이어오고 있다.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주경미 대표
여러 단체 연대 관계 속 여성문제 접근

바스락 거리는 낙엽과 함께 가을비가 내리는 10월 중순, 서구청 건너편 광주여성단체회관 2층에 위치한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이하 광·전여연)을 찾았다.

광·전여연의 주경미(51)대표는 지난 2월부터 광·전여연의 공식적인 대표를 맡게 된 이후 마을 곳곳에 스며드는 ‘풀뿌리 여성운동’을 지향하고 있었다.

빛고을 광주에서는 현재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의 전신인 광주·전남여성문제특별위원회가 지난 1991년 결성되면서 여성문제를 집단적으로 진단하기 시작했다.

여성의 문제를 해결하고 권익향상을 위해 똘똘 뭉친 여특위는 지난 1999년 광·전여연으로 개편되고, 지금과 같은 공식명칭을 갖고 달려왔다.

현재 광·전여연은 광주여성민우회, 광주여성의전화, 광주여성노동자회, 광주여성장애인 연대 등 소속회원사들이 모여 광주·전남 여성의 권익실현, 양성평등, 사회참여를 위해 연대·협력 관계 속에서 머리를 맞대고 있다.

이 지역 시각으로 여성문제 진단해야

초창기 결성 당시는 광주의 80년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광주 여성운동의 선배그룹인 송백회, 여학생회가 모였고 그 이후 소속과 계층에 관계없이 성평등, 민주·복지·평화를 실현하고 지역여성운동의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단체들이 회원단체로 결집했다.

여연 사무실에서 만난 주 대표는 “90년대에는 여성들이 집안일도 하면서 경제활동에 동시에 해야 하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어 여성노동문제, 보육교사 정책 등을 논의했던 시대였다”며 “이후 2000년에 들어서면서 점차 여성들이 경제활동에 더욱 참여하는 가운데 여성정책을 제도화 시키고, 시스템화 만들던 시절로 여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책화 시키는 노력하는 단계였다”고 설명한다.

이어 주 대표는 “현재는 중앙정부 중심으로만 여성문제를 살펴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며 “여전히 소외내지 배제가 되는 부분도 많을뿐더러 지역의 시각으로 지역여성의 문제를 진단하고 접근해야하고, 마을 곳곳에 풀뿌리 여성운동이 확산되어야 한다”고 전했다.

그간 20여 년 동안 여성운동에 주력해왔던 주경미 대표는 1963년 전남 화순군에서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광주에서 교육을 받으며 전남여고를 다니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주 대표가 고등학교 2학년 재학시절 80년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그 당시를 떠올리며 “그때는 광주시민 모두가 한마음이었고, 여성운동을 시작하기 전이었지만 주먹밥을 만드는 일 정도만 돕곤 했었다”며 “내가 대학을 갔을 땐 학생운동의 과도기라 생각이 들면서 이를 접으려고 했었다”고 말했다.

노동 환경에서 여성들 이중 차별받아

주 대표는 1982년 전남대 사학과에 입학을 했지만, 사람이 먹고 살고 살아가는 문제에 접근하기 시작하면서, 2학년을 마치고 학교를 그만 두고 노동단체에 뛰어들었다.

이후 그녀는 1984년부터 근로규정 공부를 시작하고, 현재 민주노총의 전신인 전국노동조합협의회와 협력하며 노동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그중 노동현장에서 여성노동자들은 또다른 문제를 갖고 있었다.

주 대표는 “90년대에 간신히 초·중등 교육만 받은 여성들이 노동현장에 뛰어들면서 학벌 수준이 남성에 비교해 부족해 임금문제에서도 차별을 받았었다”며 “10대의 많은 어린 여공들을 만나면서 방송통신대 등 교육을 배우도록 권장했었다. 하지만 진보적인 단체 내에서도 위원장이나 지부장 등 중요한 직책에는 남성들이 독차지 했었고, 여성들은 보조적인 역할을 했었다”고 말한다.

이렇게 이중차별을 받던 여성들은 또 다른 대안으로 지난 1999년 전국여성노동조합이 꾸리고, 그녀 역시 광주지부에서 사무국장을 맡으며 여성노동자들의 경제활동 문제와 더불어 임신, 출산을 해결하고자 동분서주 뛰어다녔다.

지역 정치력 만들어 여성문제 소통하길

오랜 기간 동안 여성노동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광주여성노동자회에서 함께 활동을 해온 그녀는 연륜을 갖게 되고, 현재 여성활동가 중에서 선배그룹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 광·전여연의 연대 속에서 2013년부터 대표를 맡게 된 주 대표는 “현재 광주도 여성친화도시, 여성재단이 설립되면서 눈부시게 여성권익보호 등 점차 문제점을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며 “하지만 아직까지 여성의 문제를 행정중심으로 형식적으로 제도화 된 시스템 속에서 접근하여 시민들과 협치관계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고 설명한다.

그녀는 앞으로 “내년 지방선거에서도 중앙정부의 정치력이 아닌 이 지역의 정치력을 만들어 나가고, 여성문제를 함께 소통하면서 여성의 의제가 실현될 수 있도록 풀뿌리 여성운동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바라보고 있다./김다이 기자

▲광주여성노동자회 주최로 주경미(사진 맨 오른쪽) 대표는 지난 2011년 10월 27일 여성 노동자들의 일과 생활이 조화로운 사회 구상을 위해 토론회를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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