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형처럼 따뜻했던 분”
“아버지, 형처럼 따뜻했던 분”
  • 오윤미 기자
  • 승인 2009.07.06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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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사 뜻 받든 제자들 ‘민속학’ 연구 매진

지 교수 세상에 남긴 건 비단 민속학 뿐 아니다. 그가 누비는 현장엔 늘 십수명의 제자들이 함께했다. 후학 양성에 남다른 애정을 쏟았던 지 교수는 동료 교수들의 부러움을 살만큼 실력있는 제자들을 많이 배출했다. 남도민속학회장인 전대 나경수 교수를 비롯 목포대 나승만·이경엽 교수, 전남대 서해숙 교수 등은 청출어람이란 말이 손색없는 민속학의 대표주자들이다.

공식석상에 양복을 차려입지 않은 날이 없을 만큼 스스로에게는 엄격했던 그였지만 제자들에게만큼은 한없이 후하고 인정 많은 스승이었다.

해외 현장조사를 나가더라도 그는 꼭 제자들과 동행했다. 제자들의 대외적 안목을 높여주고, 비교 민속학 기회를 제공해 주기 위해서였다.

윤여송 호남대 교수는 “정년퇴임 후에도 매년 선생님 생신은 제자들이 챙겼다”며 “다른 사람에겐 말 못할 속이야기도 제자들과는 스스럼없이 나눌 정도로 아우처럼, 자식처럼 대해주셨다”고 회상했다.

이경엽 목포대 교수는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현장을 누비면 선생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며 “제자라면 누구나 선생을 열정적인 사람으로 기억할 것”이라고 평했다.

자식처럼 아껴주는 스승의 참된 가르침을 제자들은 학문으로 보답했다. 지 교수가 일군 민속학을 집대성한 ‘남도민속학회’는 제자들에 의해 왕성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세미나엔 꾸준히 30여명이 넘는 민속학자들이 참여해 민속학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지 교수는 지인들에게 “나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다”는 말을 종종 하곤 했다. 오로지 민속학을 위해 살아온 삶은 그의 진정한 참뜻을 알아주는 제자가 있어 가능했고, 남도민속학이라는 초석을 다질 수 있어 보람됐다.

지 교수는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다. 남도들노래, 거문도 뱃노래, 전남 농요 등은 그렇게 해서 탄생됐다.

어렵사리 발굴한 민속학을 계승하기 위해선 무형문화재 지정이 시급하다는 것을 깨닫곤 이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잊혀져갔던 남도 소리를 복원하기 위해 그는 전방위적 역할을 수행했다.

나경수 교수는 “민속학 연구를 위해 국내를 찾는 외국인들이 찾는 민속학 일번지가 바로 남도다”며 “민속학의 최고 자원은 선생의 학덕이다”고 찬사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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