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민속학 큰 별 지다
남도 민속학 큰 별 지다
  • 오윤미 기자
  • 승인 2009.07.06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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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9일 전남대 지춘상 교수 별세
1만여 장서 모교에 기증…재평가 활발

“옛 것은 고리타분하다”는 보편적 편견에 휩싸인 세상을 일깨우며 남도 땅에 ‘민속학’ 뿌리를 내린 그가 세상을 떠났다. “현장만큼 좋은 교과서는 없다”는 원칙으로 평생을 발로 뛴 그의 삶은 ‘살아있는 민속학 사전’이나 다름없다. 

남도 민속학의 거목 지춘상 전남대 명예교수가 지난 5월 29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남도민속진흥 운동가’를 자처하며 민속학 발전에 힘써온 지 교수는 남도 민속학 1세대다.

▲ ** 일생을 ‘남도 민속학’에 바친 지춘상 교수는 남도 민속학 발굴에 그치지 않고 무형문화재 지정에 온 힘을 쏟았다. 사진은 우수영 강강술래 지도하는 모습. ⓒ전남대 국문학과 제공

1958년 대학 강단에 민요로 민속학의 지평을 연 지 교수는 한국전쟁 직후 시골 여인의 애달픈 삶 소리를 듣고 ‘민속학’에 인생을 걸었다. 

1970년 중요무형문화재 제33호로 지정된 광산 칠석고싸움 놀이와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1호인 거문고 뱃노래는 지 교수의 수많은 업적 중 하나일 뿐이다. 점차 사라져가는 농요와 민속놀이 등 민속학을 되찾기 위한 지 교수의 열정은 남달랐다.

남도 곳곳을 무거운 녹음기와 카메라를 들고 누볐다. 민속학에 대한 도서자료가 많지 않았던 시절이라 동네 노인들의 증언과 현장 채증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길이 좋지 않을 때는 지게에 장비를 메고 다니는 수고로움도 감수해야 했다.

지 교수의 직전 제자인 나경수 전남대 국문과 교수(한국민속학회장)은 “밥은 굶어도 카메라와 녹음기는 늘 가장 좋은 것을 쓰셨다”며 “제자들에게도 민속학은 발로 쓰는 학문이라며 철저한 현장조사 중요성을 강조하셨다”고 회상했다.

현장 조사는 그야말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6·25의 잔흔이 채 가시지 않았던 1960년 당시엔 으레 간첩으로 오해받거나 수상한 사람 취급을 당하기 일쑤였다.

윤여송 호남대 교수는 “1970년대엔 무장공비들이 섬을 통해 잠입하다 보니 섬사람들 경계가 특히 심했다”며 “섬사람들에게 신분증을 보여주고서야 겨우 섬 구석구석을 살필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탓할 수 없었다. 민속학에 대한 개념이 채 잡히기도 전인데다 불운한 시대가 아니던가.

변덕스런 날씨 역시 현장조사의 장애물이었다. 1072년 진도군 섬 관매도의 ‘리타호 태풍’ 사건은 강직했던 지 교수의 성품을 엿볼 수 있는 유명한 일화다.

▲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광산 칠석고싸움 놀이. ⓒ전남대 국문학과 제공

밤낮을 가리지 않고 민속자료 수집 조사에 열중했던 지 교수 일행은 뜻하지 않게 태풍에 발이 묶여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가지고 간 양식마저 다 떨어졌던 터라 선물용으로 산 돌미역을 물에 불려 끼니를 때워야 했을 때도 지 교수는 묵묵히 조사에 매진했다.

나 교수는 “그렇게 힘들게 다니면서도 늘 열정이 넘쳤다”며 “꼭 민속학을 하기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고 평했다.

누구도 흉내 내기 어려울 만큼 많은 업적을 남긴 그가 떠난 자리엔 수많은 자료들이 그를 대신하고 있다.

1950년대 미공개 자료뿐 아니라 희귀자료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보존·활용 방안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역사 사료로서 가치가 높은 만큼 심도 있는 아카이빙 작업이 절실하다는 것.

유족들은 고인의 뜻에 따라 1만여 권의 서적을 전남대 도서관에 기증했다. 지난달 25일 지 교수의 집에 보관 중이던 서적들과 영상, 사진자료 등이 트럭에 실려 옮겨졌다. 자료가 워낙 방대한 터라 정리하는 데만도 상당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나 교수는 “지 교수의 자료가 남도민속학 전체의 자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지원기관을 선정해 학술자료 활용 등 그가 남긴 남도민속학의 뿌리를 어떻게 보존, 계승할 것인지 지역사회가 같이 고민했으면 한다”고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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