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가터 논란에 빛바랜 ‘정율성 업적’
생가터 논란에 빛바랜 ‘정율성 업적’
  • 오윤미 기자
  • 승인 2009.06.09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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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불붙은 캐릭터전쟁 ②인물사례
남구와 기념사업회 간 ‘생가’ 분쟁
정율성 업적 기리는 계승 작업 소홀

▲ 정율성 선생.
대다수 시민들은 정율성 선생을 떠올리며 “징해 죽겄다”고 고개부터 뒤흔든다. 고소고발을 남발하는 등 수년째 계속돼 온 생가 터 논란을 두고 하는 말이다.

때 아닌 ‘생가’ 논란에 휩싸여 정작 당사자인 정율성 선생은 뒷전이다. ‘정율성 생가는 알아도 정율성은 모르는’  웃지 못할 코미디가 벌어지고 있는 것.

이 코미디의 핵심은 정율성 선생을 조명할 만한 ‘장치’가 없다는 데 있다. 현재로선 학술대회를 제외하곤 해년마다 열리고 있는 정율성 국제 음악제가 전부이다. 그러나 이조차도 시민들의 외면을 받고 있어 실상 그의 업적을 기릴 만한 기념사업이 전무한 상태다.

정율성 선생은 중국 3대 음악가로 추앙받는 위대한 작곡가이자 혁명가다. 19세 때 중국으로 건너간 직후 40여 년간 ‘중국인민해방군가’와 중국의 아리랑이라 불리는 ‘연안송’ 등 360여곡을 작곡한 명실상부 중국 대표 음악가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선생과 비견할 만하다.

‘한국 출신의 중국 음악가’라는 특이한 이력에도 불구 그는 국내에선 잘 알려지지 않은 낯선 음악가였다. 그런 그가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한 건 1990년대 후반이다. 문화체육부장관 주최로 서울국립국악원에서 소규모 ‘한중국제음악제’를 개최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선양사업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지만 민감한 이데올로기 앞에 좀처럼 가시화되지 못했다.

역사 속에 잠들어있던 그를 다시 끄집어 낸 이가 강양신 남구 다문화지원팀장이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정율성 선생이 광주출신 음악가임을 알게 돼 그분의 생애를 조사하기 시작했다”며 “당시 국내에선 선생에 대해 알려진 게 없던 지라 기초자료로서도 의미가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13억 중국인에게 추앙받는 음악가인 그를 통해 중국과의 문화교류는 물론 관광객 유치의 효과까지 누릴 수 있을 거란 기대감도 컸다. 6개월 밤낮을 매달린 끝에 선생의 유족들과도 연이 닿았다. 남구가 주장한 양림동 출생지설 역시 유족들의 증언을 토대로 하고 있다.

▲ 광주 남구와 기념사업회는 수년째 ‘생가’분쟁을 이어오고 있다. 법적공방으로 번진 생가 논란에 기념사업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 남구는 유족들의 증언과 친필 이력서를 근거로 남구 양림동 79번지 출생을 주장하고 있다. 사진은 남구 양림동에 세워진 생가 기념비.

남구는 2004년 정율성기념 국제학술대회를 시작으로 2005년 정율성국제음악제 개최 등을 통해 ‘정율성 선생’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남구는 ‘문화자치구’라는 이미지까지 얻는 후광효과를 누렸다.

이후 정율성기념사업회(이하 기념회)가 발족해 기념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출생지’ 여파에 치우쳐 계승사업은 제자리걸음이다. 기념회는 토지대장을 근거로 동구 불로동 출생을 주장하며 남구와 ‘생가’ 논란을 불러왔다. 법적 공방까지 번진 생가 논란은 현재 사문서 위조와 명예훼손, 무고, 허위사실 유포 등 4건이 법원에 계류 중이다.

이들의 시끌벅적한 소모전을 바라보는 시각은 ‘계승’이라는 본연의 취지가 무색하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 정율성 기념사업회와 하동정씨 종친회 측은 정율성 선생 가족의 토지대장 등을 바탕으로 동구 불로동 163번지(현 히딩크 호텔) 출생을 주장하고 있다.
신정호 목포대 교수는 한 학술토론회에서 “정율성 선생과 같은 한중 문화교류의 살아있는 역사와 정신을 어떻게 현재화 할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임에도 불구 충분히 검토되지 못하고 있다”며 “그의 생애에 관한 실증적 연구와 그가 남긴 업적에 대한 재평가, 역사적 가치 연구 등이 선행된 후 관련 사업이 이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역사문화원형의 고증 방식도 마찬가지다. 음악가로서 그의 삶만 조명되다 보니 혁명가로서는 저평가 되고 있는 것.

송한용 전남대 교수는 “그에 대한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일 뿐 아니라 주로 음악과 출생지에 관한 논의가 주류를 이룬다”며 “그렇다 보니 정율성 사상이나 그가 예술인으로서 무엇을 추구하였는가에 대한 역사적 연구는 사실상 거의 없는 실정이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고민은 향후 기념사업의 길잡이가 된다. 문화의 정체성을 어떻게 현대적 관점으로 풀어갈 것인가는 앞서 말한 ‘장치’에서 찾을 수 있다.

정율성 선생이 얼마나 위대한 업적을 남겼는지를 시민들이 몸소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과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기념회는 이를 위해 재단법인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최창근 기념회 감사는 “중국과의 민간교류 활성화와 관광객 유치를 위해서라도 체계적인 기념사업이 진행돼야 한다”며 “광주가 문화메카로 거듭나기 위해선 정율성 선생같은 무형 자산을 적극 활용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 단체는 내년 상해서 열리는 해양엑스포 한국관에 정율성 부스를 설치하고, 중국 유학생을 대상으로 한 정율성 콩쿨대회 등을 계획 중에 있다.

▲ 지난해 5월 남구청은 남구 양림동에 정율성로를 개통했다. 이날 개통식엔 동구 불로동 설을 주장하는 정율성기념사업회 회원들이 몰려와 강하게 항의하며 개통식은 파행으로 치닫았다. 남구청과 긴며사업회 관계자들이 뒤엉켜 몸싸움을 하는 등 아수라장이 된 것.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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