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창 송만갑, ‘미지근한’ 출생지 논란
국창 송만갑, ‘미지근한’ 출생지 논란
  • 오윤미 기자
  • 승인 2009.06.09 09:2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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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불붙은 캐릭터 전쟁 ②인물사례
구례, ‘설’로 일축 …순천, 아직은 ‘시큰둥’
순천 낙안읍성 출생설 고증작업 선행돼야

최근 불거진 ‘출생지’ 논란으로 국창 송만갑 선생의 생애가 재조명되고 있다. 구례 태생으로 알려졌던 그의 출생지가 순천 낙안읍성이라는 설이 제기된 것.

▲ 구례에 조성된 동편제 전수관. 구례는 민적부와 조선창극사 등 자료를 토대로 생가복원과 송만갑 판소리 고수대회 등을 개최하며 '동편제' 고장으로 명성을 떨쳐왔다.
국창 송만갑 선생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판소리계의 거장이자 동편제의 아버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판소리 적통을 이은 그는 13세 때 소년 명창으로 이름을 날릴 정도로 끼와 재능을 타고났다. 남다른 재능으로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전통적인 가문의 소리에 만족하지 못한 그는 ‘이단아’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혈통에 구애받지 않고 소리를 추구했던 그는 평생을 바쳐 동편제를 구축했다. 서편제와 달리 별다른 기교 없이 수수함을 강조한 동편제는 강하면서도 호방한 남성적 소리다.

이번에 불거진 출생지 논란은 그의 직계 제자인 송순섭 명창이 문제제기를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구례는 2000년 구례읍 백련리 국창 송만갑 선생 생가 일대 2439㎡ 부지에 동편제전수관을 짓고 민적부와 조선창극사 등 자료를 토대로 최근까지 생가복원과 송만갑 판소리 고수대회 등을 개최해오며 ‘동편제’ 고장으로 명성을 떨쳐왔다. 누구보다 앞장서 송만갑 명창 구례 기념사업을 주도했던 송순섭 명창은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것이야 말로 그분의 뜻을 기리는 중요한 임무다”고 소신을 밝혔다.

2001년 송만갑 선생이 ‘문화인물’로 선정돼 국립국악원에서 공연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곳에 놓여있던 그의 자서전이 눈에 들어온 것.

송 명창은 “그때만 해도 구례서 기념사업을 해왔기 때문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며 “이후 스승인 박봉술 선생의 기념사업을 준비하며 자서전을 들춰보니 순천 낙안읍성 태생인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1931년 삼천리 잡지 4월호에 게재된 자서전에 “나는 순천군 낙안에서 출생하여 소년시대를 보냈다”고 명시돼 있는 것.

이를 근거로 (사)동편제전수회(이사장 송순섭)는 공연과 책자 발간 등을 통해 송만갑 선생의 출생지를 바로 잡으려는 노력을 펼쳐왔다.

송 명창은 “자서전 뿐 아니라 후손들의 증언, 가족 소유의 토지대장 등 자료를 살펴보면 순천 낙안 태생임을 확인할 수 있다”며 “무엇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송만갑 선생의 생애가 재조명돼 기념사업이 활기를 띠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나 출생지 논란에도 정작 해당 지자체들은 ‘미지근한’ 반응이다. 논란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고증작업 등 노력을 기울여야 함에도 불구 수수방관하고 있는 것.

구례군청 관계자는 “출생지설은 민간단체 주장일 뿐 순천시 공식입장이 아닌 걸로 알고 있다”며 “이는 단지 하나의 ‘설’일 뿐이며 우리가 나서서 입장을 밝힐 부분은 아니다”고 일축했다. 구례군은 출생지 논란과 상관없이 10월 소리축제를 예정대로 개최하는 등 기존의 기념사업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 구례 태생으로 알려졌던 국창 송만갑 선생의 출생지가 순천 낙안읍성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사)동편제 전수회는 송만갑 선생의 자서전을 근거로 순천 낙안설을 주장하고 있지만 정작 해당지자체인 구례와 순천은 시큰둥한 반응이다. 사진은 최근 낙안읍성에 복원된 생가.

출생지로 지목받은 순천 역시 달가워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순천시 관계자는 “송만갑 선생 출생지가 순천이라고 밝혀져도 쉽사리 기뻐할 수 없는 것이 자칫 지자체간 공방으로 비화될 수 있기 때문”이라며 “더구나 내년 선거를 앞두고 국악협회 내부갈등에 끼어들기 힘든  ‘윗분’들의 고민도 한몫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낙안읍성의 한 문화해설사는 “낙안읍성에 생가 터가 새롭게 조성됐지만 어떻게 설명하라는 시의 전달을 받은 적이 없다”며 “교육 때 잠깐 ‘아직 결정된 사안이 아니니 입조심하라’는 당부를 받았다”고 조심스러운 분위기를 전했다.

학계에서는 출생지 논란보다는 엇갈리는 진술이 공존하는 현상 자체에 주목했다. 지난 5월 3일 열린 학술대회에서 김기형 고려대 교수는 ‘관점 전환’ 필요성을 제기했다.

김 교수는 “고향은 개인의 성장을 규정하는 환경적 조건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며 “그렇지만 개인사에서 생물학적 고향 못지않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 제2의, 제3의 고향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석배 금오공과대 교수는 송만갑 선생이 지역구가 아닌 전국구 명창임을 각인시키며 한곳에서만 활동할 수 없는 신분적 특수성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중요한 것은 송만갑 선생이 두 지역에서 일정기간 거주하며 예술 활동을 해왔다는 사실”이라며 “이제는 두 지역이 경쟁관계를 넘어서 상보적인 관계로 ‘윈-윈’할 수 있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송만갑 선생 출생지는 순천 낙안이다”
[인터뷰] 국창 송만갑 선생 직계 제자 송순섭 명창

국창 송만갑 선생의 출생지 논란의 중심엔 선생의 직계 제자 송순섭 명창이 있다.

누구보다 앞장서 구례 송만갑 선생 기념사업을 주도해 온 송순섭 명창은 순천 낙안읍성 출생을 주장하며 “늦었지만 이제라도 선생의 자취를 바로잡는 것이야 말로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하 일문일답)

-순천 낙안읍성 출생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1931년 삼천리 잡지 4월호에 기고한 자서전과 후손들의 증언, 가족 소유의 토지 대상을 살펴보면 순천 낙안 태생임을 확인할 수 있다. 자서전에는 “나는 순천군 낙안에서 출생하여 소년 시대를 보냈다”고 명시돼 있다. 이는 그 어떤 역사 기록보다 명확한 것이다.

또한 선생의 외손녀인 김명자씨가 지난 5월 3일 개최된 ‘국창 송만갑 선생 재조명 학술 발표회’서 “외할아버지인 송만갑 국창의 묘지가 낙안에 있다”고 주장했다. 김명자씨는 어릴 적 엄마를 따라 성묘를 다녀 비교적 상세히 기억을 하고 있었다. 제삿날이 섣달 그믐날 이라고 기억을 해내곤 최근엔 외할아버지 묘지를 찾았다고 했다.

-그럼 그동안 자서전은 왜 공개되지 않았나.

자서전의 존재를 알게 된 건 2001년 겨울이었다. 송만갑 선생이 2001년 문화인물로 선정돼 국립국악원에 공연을 하러 갔다가 자서전을 발견했다. 그러나 당시엔 구례서 기념사업을 해왔기 때문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다 2005년도에 스승인 박봉술 선생의 기념사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서전을 읽어보다 알게 됐다.

-이후 순천 낙안읍성 출생을 알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순천 낙안 태생임을 인지하고 순천에 바로 연락을 취했다. 낙안읍성과 순천시에 관련 자료를 제출했지만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아 적잖게 실망했다. 사비를 털어가며 순천설을 입증할 자료를 모았다. 그러다 전 낙안읍성 장이던 안효상씨가 관심을 갖게 돼 (사)동편제 전수회(이사장 송순섭)와 함께 6개월 준비 끝에 순천 출신임을 알리는 책자를 발간해 배포했다.

지난 5월 3일엔 낙안읍성에서 학술 발표회를 개최하고 고증을 받으려 했다. 학계에서 확실히 고증을 해주길 바랐는데 아쉬움이 남는다. 현재 낙안읍성엔 선생의 생가가 복원돼 있다. 앞으로도 공연과 학술대회를 통해 꾸준히 동편제를 알리는 노력을 할 계획이다.

-그동안 국창 송만갑 선생의 기념사업은 구례서 진행돼 왔다. 누구보다 앞장서 구례서 기념사업을 주도해 오지 않았나.

그렇다. 자서전의 존재를 알기 전까지는 당연히 구례 태생인 줄 알았다. 기록에도 그렇게 돼 있어 의심하지 않았다. 1975년 구례에 처음 송만갑 기념비를 세우고, 동편제 전수관도 건립했다. 그러나 그런 노력은 모두 구례 태생이 전제됐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구례는 최근까지 생가복원과 송만갑 판소리 고수대회 등을 개최해왔는데, 구례 출생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구례엔 이만한 자료가 없다. 이번 자서전은 국악 자료 중 가장 두드려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례가 근거로 내세운 민적부와 조선창극사는 자서전에 비해 빈약하기 그지 없다. 민적본은 일제시대 만들어진 호적부인데다 민적부엔 구례라고만 표기 뙜을 뿐 구체적인 장소가 명시돼 있지 않다.  조선창극사 역시 마찬가지다. 선생이 돌아가신 후 실린 것이므로 역사적 가치나 기록면에서 따져봐도 자서전 이상의 자료가 없다.

-그러나 정작 해당 지자체에선 이렇다 할 반응이 없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구례는 그간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어 기념사업을 해왔기 때문에 쉽사리 입을 못 여는 것이다. 순천시에서 조차 반응이 없는 건 아무래도 얽히고 설킨 이해관계 때문이다.

이번 출생설을 제기한 건 내가 잘 사려고 한 게 아니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아 선생을 기리는 기념사업을 보다 명확히 하고 싶어서다. 선생의 출생지가 순천이라고 밝혀졌다고 해서 구례가 기념사업을 멈춰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어디면 어쩌나, 각자 위치에서 재량껏 동편제를 계승하면 되는 문제라고 본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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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즈라엘 2019-09-03 21:46:57
송순섭선생님의 순수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아무도 관심도 없는 일에 ....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