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수의 경제톡⑲ 변화된 세상 속, 어떤 사람이 성공하는가?(1)
이상수의 경제톡⑲ 변화된 세상 속, 어떤 사람이 성공하는가?(1)
  • 이상수 스마트미디어인재개발원 이사
  • 승인 2018.10.02 09: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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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주인으로 살자
집단지성의 환상에서 벗어나자
앙트레프레너가 되어보자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책을 읽고 공부하고 자기계발을 하는 이유는 회사가 요구하기 때문에...’, ‘회사가 요구하는 인재상이기 때문에...’ 라고 답한다. 한마디로 책을 읽는 행위 등이 자기 필요에 의하여 실시하는 것이 아니고 회사가 요구하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자기 주도적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고 피동적인 인간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고 배우고 비교하고 판단해야만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 모든 것을 극복하는 순간의 집중력이다. 결국은 타인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 꾸준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자만이 미래사회에서 성공한다고 볼 수 있다. 이번 호에서는 변화된 세상 속에서 어떤 사람이 성공하는가를 이동우가 저술한 미래를 읽는 기술(2018)과 관련 서적들을 중심으로 소개한다.<필자 주>

기술의 주인으로 살 것인가, 노예로 살 것인가

기술의 자동화로 우리들의 생활은 더 편리해졌고 잡다한 일에 대한 부담은 줄어들었다. 제한된 시간에 더 많은 일을 하거나 과거에는 할 수 없었던 일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일상이 기계로 대체된 자동화 테크놀로지 시대에 삶은 더욱 편리해졌지만, 과연 우리는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일까 한번 생각해볼 시점이 되었다. 이점에 대하여 니콜라스 카(Nicholas G. Carr)유리감옥(2014)에서 기계가 똑똑해질수록 인간은 무능해진다고 지적하였다.

1) 기계가 똑똑해질수록 무능해지는 인간

니콜라스 카의 유리감옥은 기계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오늘날 인터넷, 인공지능, 웨어러블 디바이스, 빅데이터 등으로 점점 가속화되고 있는 자동화는 인간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고 있다. 저자는 스마트폰, 내비게이션, 로봇청소기 등과 같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기계는 물론 의료, 항공, 전쟁 등 우리 사회 전반을 뒤덮고 있는 자동화의 이면을 똑바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 이면이란 기술이 발달할수록 인간은 더 무능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사람들은 이런 문제 제기에 동의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미 여러 조사에서 이런 현상이 발견되고 있고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스마트폰이 생겨난 이후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전화번호를 과연 몇 개나 기억하고 있을까 생각해 볼 일이다. 필자도 전자계산기가 우리 생활에 보급된 이후 계산문제가 나오면 먼저 떠올리는 것이 전자계산기이다. 암산을 하려고 하기보다 전자계산기가 있으면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다.

최근에는 구글의 검색엔진이 점점 더 고도화되어 사람들이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아도 일상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의 검색엔진을 만든다고 한다. 그렇다면 검색 엔진이 더 정교해질수록 사람들은 더 멍청해질 것이라는 추론을 할 수 있다. 이처럼 디지털 기기에 종속된 인간의 사고는 둔해지고 있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아무 일도 하지 못할 것 같고, 내비게이션이 없으면 길을 찾지 못할 것 같다는 볼맨 소리를 주위에서 쉽게 들을 수 있다.

의료업계도 현재 자동화의 영향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미국은 10여 년 전부터 전자의료 기록의 자동화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진료 기록의 자동화가 건강관리 비용을 크게 줄였다거나 환자들의 육체적정신적 건강을 크게 개선했다는 증거는 희박하다. 오히려 의사와 환자 사이에 컴퓨터 스크린을 집어넣어 그들의 사이를 더 벌려놓았고 질병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방해한다는 게 의사들의 의견이다.

비슷한 예로 2013년 미국연방항공국(FAA)은 항공사들에게 일제히 안내문을 발송했다. 내용은 적절한 때에 조종사들에게 수동 비행을 홍보할 것을 권장한다는 것이었다. 조종사들이 자동 조종장치에 과도하게 의존할 경우 비정상의 상태가 된 비행기를 신속하게 원 상태로 돌려놓은 능력이 저하될 수 있기 때문이다.

2) 기술의 양면성과 인간이 가야할 길

인간의 삶 깊숙이 파고든 자동화의 향방은 중요하지만 불안한 질문을 던진다. 소프트웨어는 수많은 변수들을 헤아려 가장 옳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인가이다. 편리하다는 이유로 기계에 모든 통제권과 선택권을 넘긴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금의 이 기술들이 우리들의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면 우리들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생각해 볼 일이다. 자동화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더 쉽게 얻도록 해주지만 우리가 누구인지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을 차단한다. 우리는 스크린의 피조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나는 기술의 주인인가, 노예인가?’ 문제는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간의 사고력이 더 저하되고 기술에 더 의존한다는 점이다.

테크놀로지의 사용자이자 제작자로서 우리는 기술을 지금보다 인간답게 만들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자동화를 맹신한 대가로 빼앗긴 삶의 행복감과 만족감을 되찾아야 한다. 각종 테크놀로지 도구들을 단순한 생산 수단이 아닌 우리 자신의 일부이자 경험의 수단으로 복귀시켜 균형과 조화를 이룰 때, 기술은 디지털 시대에 누릴 수 있는 진정한 자유를 우리에게 제공할 것이다.

집단지성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라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 集團知性)’은 집단지능(集團知能협업지성(協業知性)과 같은 의미이다. 다수의 개체들이 서로 협력하거나 경쟁하는 과정을 통하여 얻게 된 집단의 지적 능력을 의미하며, 이는 개체의 지적 능력을 넘어서는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집단지성이 우수하다고 믿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만, 집단지성은 어떤 상황에서 이를 활용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의 효용성 여부는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잊고 있다. 대체로 협동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경우에는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의사결정에 있어서 집단에 2류가 다수를 차지하게 되면, 2류의 사고방식이 그 집단을 지배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2류는 공동의 목표, 또는 조직의 유효성을 생각하지 않으며, 그저 업무만 처리하려 든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개인은 똑똑하지만 집단은 단순 무식하다는 표현도 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집단의 크기가 바로 퍼스트 클래스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 우리가 개인일 때는 똑똑하고 강하지만 팀으로는 오합지졸이라는 말이다. 이는 각 개인의 성과가가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며, 집단에 모인 개인들의 잘못은 아니다. 집단지성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군터 뒤크(Gunter Dueck)가 저술한 왜 우리는 집단에서 바보가 되었는가?(2016)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1) 개인은 똑똑하고 집단은 무식하다

경영자들은 집단지성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개인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집단지성으로 이룰 수 있다고 하면서 수많은 프로젝트에서 집단지성을 구현하려고 한다. 그러나 의사결정이나 창의적 아이디어를 발굴하려는 경우에 자칫 잘못하면 목소리 큰 사람의 의견대로 집단의 문제가 귀결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이는 집단에서는 여전히 조직 내 압력이 존재하고 정보에 대한 폭포효과(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오피니언 리더층에 마케팅을 집중하면 전체 소비층에 그 효과가 빠르게 확산되는 폭포효과처럼 영향력이 강한 일부 소수에게 정보가 집중되는 현상)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직은 온갖 이해관계로 변화를 이끌어낼 의지를 갖기가 힘들다. 이런 집단에는 반드시 불신이 생겨난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일의 본래 목표를 잊고 업무성과 수치에만 주의를 기울인다. ‘책임을 다하는 직원이 아니라 점수만으로 평가받는 점수 인간이 되는 것이다.

2) 성과 중심주의에서 집단지성으로 가는 길

이제 경영자는 명령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최근 몇 개 기업들은 직원평가시스템이 직원 간 협력을 해치고 창의적인 문화를 저해한다고 판단하고 직원들의 성과에 서열을 매겨 상대 평가하는 스택 랭킹 제도(Stack Ranking System)를 폐지했다. 오히려 여러 직군에 속한 개인들의 특성을 파악하여 최선의 업무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개인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지속적이고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피플 팀(people team)을 신설했다. 잘하는 프로그래머는 생동감 넘치는 기업에서 나온다. 과거에는 규모를 키워 대량생산으로 생산비용을 절감하고 더 많이 판매하는 것이 최고의 경영이었고 기업이 추진하던 모든 변화는 비용 절감과 최적화에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단기적인 성과 중심의 사고를 버리고 장기적이고 단계적인 변화를 꾀해야 한다. 그것이 진짜 집단지성을 이루는 길이다.

직업의 시대가 가고 앙트레프레너의 시대가 온다

최근 오스트레일리아의 학자들은 현재 초등학생들이 본격적으로 직업을 갖게 되는 1015년 후에는 한 사람이 평생 3040개의 직업에 종사하게 된다고 전망했는데, 만일 이 예측이 현실화된다면 거의 1년에 한 번씩 직업을 바꿔야 한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듯 2016년 다보스포럼에서는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직업이 20년 뒤에는 대부분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더 이상 직업적 미래를 꿈꿀 수 없게 되었다는 뜻이다. 여기에서는 테일러 피어슨(Taylor Pearson)의 직업의 종말(2017)을 중심으로 어떤 스타일의 인재가 되어야 할 것인가를 소개한다.

1) 10년 후에도 직장을 다닐 수 있을까?

이제 직업의 시대가 끝나고 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구하는 패턴이 사라지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1948년부터 2000년까지는 일자리가 인구보다 1.7배 빨리 증가했다. 이때는 대학을 졸업하면 대부분 어렵지 않게 직장을 구할 수 있었다. 물론 당시에도 취업이 어렵다고는 했지만 분명 지금보다는 쉬었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런데 2000년 이후부터 인구가 일자리보다 2.4배 빨리 증가했다. 개발도상국을 제외하면 전체적인 인구 증가는 감소하고 있지만 수치상으로 봐도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게다가 임금 상승률의 시대도 끝나가고 있다.

커네빈 프레임워크(Cynefin Framework)라는 것이 있다. 문제를 인과관계에 따라 분류하고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 만든 체계이다. 이 체계에 따르면 모든 문제는 네 가지 영역으로 구분된다. 단순성, 난해성, 복잡성, 그리고 혼돈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늘날 거의 모든 일은 복잡성과 혼돈영역으로 움직이며, 이는 결코 학력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단순성과 난해성에 해당하는 영역은 학력 수준을 높여서 해결할 수 있다. 이런 문제들은 제아무리 어렵다고 하더라도 그 분야의 전문가가 있으면 해결 가능하다. 난해한 문제들을 풀어낼 수 있는 인재들을 훈련시키고, 이런 해법을 찾을 수 있는 교육과 인재들을 길러내는 평가 시스템이 존재했던 것도 같은 이유였다.

그러나 복잡성 영역과 혼돈영역의 문제는 차원이 다르다. 복잡성 영역은 시간이 한참 지난 후 돌아봤을 때 인과관계가 분명해지는 문제를 말한다. 그리고 혼돈영역은 인과관계를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영역의 문제들은 지금까지 전문가를 길러내는 교육방식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따라서, 복잡성과 혼돈이 지배하는 지금의 세상에서는 평범한 일반 노동자로 훈련받는 것은 가치 없는 일이다.

2) 스스로 길을 개척해나가는 앙트레프레너의 시대

저자는 앞으로 앙트레프레너(entrepreneur)의 시대가 된다고 말한다. 지금까지는 일련의 제도적 틀 안에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복잡성 영역과 혼돈영역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 비즈니스와 일자리 문제에서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따라서 복잡성과 혼돈영역의 일은 고정된 틀보다는 창의적이고 창발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이것은 앙트레프레너십(entrepreneurship), 즉 창업가정신을 구현하는 것과 맞닿아 있다. 그렇기에 이제는 무의미한 학위를 따느라 시간과 비용을 들이는 것보다 창업가정신을 위해 투자하는 게 미래 일자리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인간의 노동 형태와 관련해 크게 세 번의 경제전환기가 있었다. 농업경제(13001700), 산업경제(17001900), 지식경제(19002000). 지난 세기동안 우리는 지식경제에서 일과 삶의 전망은 비교적 분명했다. 지금까지는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지식의 양을 늘려가며 갖가지 기술과 자격을 취득하고, 이를 바탕으로 유망한 직업을 선택하고, 안정적인 소득을 가지고 저축을 비롯한 재테크를 하며 미래를 준비하였다. 이 때는 좋은 직업을 갖는 게 가장 중요한 레버리지 포인트였다. 특정 지역에서 특정 직업을 갖고 평생 동안 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다른 세상이다. 개인은 첨단 기술을 통해 새로운 일을 마음껏 만들어낼 수 있다. 여기에 드는 비용은 10년 전과 비교해 100배는 저렴해졌다. 하지만 이런 트렌드가 기업들에게 호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들은 다국적 기업들과 상대해야하기 때문에 어려움은 더더욱 늘어만 간다.

이제 직업의 종말은 피할 수 없다. 피할 수 없다면 받아들이는 동시에 대응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위기는 기회라고 하기에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가피한 변화를 살피며 자신의 길을 스스로 개척해 가는 것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태도이자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 앙트레프레너십이다. 남들보다 더 빠른 판단과 창업가정신으로 새로운 일에 뛰어드는 모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자료>

군터 뒤크 지음, 김희상 옮김(2016).왜 우리는 집단에서 바보가 되었는가?. 서울 비즈페이퍼.

니콜라스 카 지음(2014). 유리감옥. 서울 : 한국경제신문사.

이동우 지음(2018).미래를 읽는 기술. 서울 : 비즈니스북스.

이상수 글(2013.12.12), “천재 10명이 모이면 7명은?” 시민의소리.

테일러 피어슨 지음, 방영호 옮김(2017). 직업의 종말. 서울 : 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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