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에서 문화를 만나다 3> 부산 또따또가와 감천문화마을
<골목에서 문화를 만나다 3> 부산 또따또가와 감천문화마을
  • 정인서 박용구 기자
  • 승인 2013.08.29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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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작가들 모여 협업공간 활용 높여
시각적 효과보다 장기적 전략으로 시민참여 이끌어내
▲ 부산 원도심의 40계단은 피난민 시절부터 현대까지 부산문화의 역사를 관통하고 있는 곳이다. 계단 가운데 있는 남자(?) 비가오나 눈이오나 일년 내내 아코디언을 켜고 있다.

광주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문화공간을 떠올려보자. 예술의 거리와 대인예술시장, 시립미술관과 비엔날레전시장 등이 있는 중외공원, 민간미술관이 모여 있는 증심사지구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예술의 거리는 광주 도심의 한복판에 있어서 그 상징성이 더욱 크다. 그러나 그동안 많은 혈세를 쏟아 부었지만 도무지 변한 게 없다. 이번에 10회에 걸쳐 연재하는 기획기사는 예술의 거리를 진단하고 서울, 부산, 대구 등 유사한 거리와 중국 상하이의 현지 취재를 통해 광주 예술의 거리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한다./편집자 주

1 예술의 거리, 그 이름의 뒤안길
2 아시아문화전당 준공 이후 어떻게
3 부산, 예술인 공방 탄생의 현실과 미래
4 대구, 역사를 넘은 골목문화투어
5 서울, 인사동 화려한 불빛의 명암
6 상해 문화창의단지를 돌아본다(상)-타이캉루
7 상해 문화창의단지를 돌아본다(중)-무간산루 등
8 상해 문화창의단지를 돌아본다(하)-상해시 정책
9 광주시의 문화특구 계획은 무엇인가
10 광주 예술의 거리, 골목을 살리자

부산을 찾아간 날은 비가 엄청 내렸다. 아침 일찍 광주를 출발할 즈음에도 비가 많이 내렸는데 부산에 도착하니 광주는 비가 멈추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우리 일행이 비를 몰고 부산으로 갔다는 이야기가 됐다며 전화를 통해 웃음을 지었다.
부산 원도심창작공간인 또따또가(Totatoga)의 김희진 운영지원센터장을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은 오후 2시였다. 좀 일찍 도착해서 우선 또따또가 일대를 둘러보고 사진을 찍기로 했다. 다행히 이 무렵 비가 멈춘 상태였다.
부산의 또따또가는 최근 언론매체를 통해 창작예술촌의 성공사례로 자주 등장하는 곳이다. 이름도 참 이상하다. 자료를 찾아봤더니 관용이나 문화적 다양성을 뜻하는 프랑스어 ‘똘’레랑스(Tolerance)와 ‘따’로 활동하지만 ‘또’ 같이 활동한다는 의미, 그리고 거리나 지역을 나타내는 한자어 ‘가(街)’를 합성한 말이라 한다.
이 지역은 광주 구도청 인근의 인쇄골목이 연상되는 인쇄출판사들이 집중된 곳이다. 6.25 이후 피난민들의 집단촌락을 형성했던 남포동 40계단 주변의 중국 중앙동과 동광동 일대에 비어있는 상가와 후미진 사무실 등을 임대하여 각 문화단체와 작가 개인의 창작공방이 들어있다.

▲ 한 시인의 힘으로 운영되고 있는 인문학 북카페 '백년어'는 부산문화의 힘으로 느껴질 정도다.
부산의 산증인 40계단 주변의 원도심

우연히 찾아들어간 곳이 ‘百年魚’였다. 북카페로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이곳은 ‘물고기가 사는 곳에 사람이 삽니다’라는 다소 철학적인 문구를 내걸고 지난 2009년 4월 김수우 시인이 문을 연 곳이다. 이곳에서는 문학과 역사, 철학 강좌가 주기적으로 열리면서 치유를 위한 인문학강좌를 열고 있다 한다.
카페 안에는 백 마리의 나무 물고기가 제각각 無, 眞, 覺, 去, 虛 등의 이름을 갖고 있다. 강원도 산골 옛집이 헐려 버려져 있던 서까래와 폐목 등을 모아 물고기 모양으로 조각하여 이름을 붙여 태어난 눈빛들이다. 계절별로 1년에 4번, 100쪽 분량의 ‘백년어’ 인문학 계간지도 자비로 발행할 정도다.
이런 것이 부산의 문화예술이 갖는 힘이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다른 곳을 찾아다녔다. 그런데 언론매체에 그렇게 보도된 탓에 가진 기대심리가 컸던 탓일까? 아무리 둘러봐도 문화의 거리는커녕 예술인촌이라 할 수 있을 정도의 시각적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여학생 2명이 사진을 찍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말을 건넸다. 제주도에서 대학 졸업반이라며 여름 마지막 여행을 위해 이곳을 찾았다고 말한다. 40계단 앞에는 피난민 시절의 모습을 형상화한 청동상과 거리모습이 조금이나마 재현되어 있었다.
인근의 4층 규모의 소라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6층짜리 40계단문화관이 있었다. 1층에 주민센터가 있었고 6층은 특별전시실, 찾아간 날은 전시 준비 중이라 볼 수 없었고 5층의 상설전시실은 1876년 개항 이전부터 일제 강점기를 거쳐 피난 시절의 학교와 피난살이 물 전쟁의 ‘유품’들이 남아 오늘을 지키고 있었다. 이곳 해설사 김지창(70)씨는 40계단 부근이 문화와 상거래의 중심지였다고 설명해주었다.
약속시간이 다 되어 40계단 앞쪽에 위치한 원도심창작공간 운영지원센터를 찾았다. 김희진 센터장은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40계단은 부산의 상징을 나타내는 원도심 공간이라고 한다. 아직도 40~50대는 이곳을 기억하지만 20~30대는 인식하지 못하는 지역이라 덧붙인다.
김 센터장은 원도심의 생활문화를 토대로 있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빠르게 변화하는 대중적인 것만 좇아갈 것이 아니라 이를 융합할 수 있는 대안적인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관심 있는 이들이 모여 이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 부산역 앞에서 지게를 지고 여러 짐을 날랐던 인부가 지쳐 잠시 누워있는 모습에서 한국의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따또가, 드러내놓지 않고 펼치는 문화

또따또가는 지난 2010년 3월 출범 당시에는 부산문화예술교육연합회가 부산시로부터 3억원을 지원받아 시범 운영하는 프로젝트 공간으로 문학, 미술, 음악 등 각 분야 지역 예술인이 입주해 활동하는 창작공간을 비롯하여 17개의 문화 창작공간이 있었다.
1차 프로젝트가 2012년에 끝났지만 다시 2차 프로젝트가 3년 사업으로 연장되어 지금은 27개 공간에 60실이 있고 23개 단체와 개인공방 50개 정도가 있다고 한다. 현재 확인된 활동작가만 모두 311명에 이른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와 관계없이 개인적으로 들어온 공방도 15개 정도 된다.
김 센터장은 시민들과 함께 하는 문화예술은 최소한의 가이드 역할만 해줄 뿐 문화적 가치는 시민 스스로 발견하는 것이라 한다. 다 가르쳐줄 수도 없을뿐더러 시각적으로 드러내놓고 표현한다고 해서 문화예술을 배우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 김희진 부산 또따또가 운영지원센터장
서울의 인사동과 홍대 부근이 초기엔 기획 의도도 좋고 한때 예술의 대명사가 되었지만 지금은 상업자본이 개입되어 순수창작활동가는 쫓겨나고 상업자본이 들어와 술집과 카페, 브랜드 명품점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문제점을 우려하여 부산의 또따또가는 좀 장기적인 전략을 펼치는 중이라 한다. 드러내놓고 자랑하기보다는 원도심 공간이 쇠퇴일로에 있어 빈 건물과 공간이 일부 있어 1층의 직접적인 노출공간보다는 골목의 후미진 곳이나 건물의 3~5층에 입주하도록 유도했다. 그래야 임대료 걱정을 덜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곳은 다른 지역의 예술의 거리가 미술이나 연극 등 일부 분야만 치중되어 있는 것에 반해 음악, 인문학, 공예, 문학 등 다양한 분야가 입주했다. 이는 작가와 작가 그리고 작가와 시민이 서로 공동체 활동이 가능하고 협업작업을 펼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원도심의 문화자원을 발굴하고 보존하며 이를 창의적으로 활용해 지역문화발전에 기여하고 건물주와 민간메세나의 연대를 통해 장기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에 목표를 두고 있다.
김 센터장은 이곳에 있는 예술가들은 경제적 어려움은 있지만 그래도 경제논리보다는 행복감과 만족을 우선하고 이 기운이 시민에게 미치는 것을 기쁨으로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때서야 또따또가 예술인촌의 진면목이 보였다.
이곳 운영지원센터는 최소한의 예산 운용을 위해 센터장 포함 모두 3명의 직원만 일하고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시원한 냉커피 한잔을 마시고 지난 3년간 벌였던 행사 리플렛을 챙긴 후에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감천문화마을, 인위적 개발에 대한 우려 높아

▲ 최우석 부산 사하문화사랑방 공동대표
이날 저녁 부산의 유명한 거리 서면에서 여수 출신의 최우석 사하문화사랑방 공동대표와 일전에 인사를 나누었던 박상규 시나위 연극중심 대표와 자리를 함께 했다. 이들은 국정원 대선개입 규탄 6차 시국대회에 예술인들이 모이는 날이라며 와 있었다. 우리 일행과 함께 인근 식당에서 산곰장어구이로 저녁식사를 하며 부산 문화에 관한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 대표는 또따또가는 부산 원도심의 새로운 명물이 될 것이라고 했다. 겉으론 드러나지 않지만 예술가들끼리 폐쇄적이지 않고 함께 작업할 수 있는 연계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직접적인 지원도 해주지만 관련 지자체에 다양한 제안을 통해 지역문화의 새로운 가치를 구현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서두르지 않고 긴 호흡이 필요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다음 찾아갈 곳은 부산의 명소인 감천문화마을이었다. 최 대표가 이곳의 개발방식은 다소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점차로 보완해야 할 곳이라고 했다. 비좁은 골목 어디에서든 창문 너머로 또는 대문을 열면 바로 안방이 보이는 그런 구조에 개인적인 가난만 쌓여있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했다. 다소 비인간적인 현상이라 할 수도 있다 싶었다.
또따또가지원센터 사무실에서 나와 차를 타자마자 장대같은 비가 쏟아졌다. 마치 하늘에 큰 구멍이라도 뚫린 것 마냥 앞이 보이질 않은 지경이었다. 아무리 윈도우브러시가 최강으로 빠르게 움직여도 빗물이 더 많이 내려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조심 운전을 할 수밖에 없었다.
▲ 지난 7월 17일 미국 CNN누리집에 '감천, 아시아의 예술인촌인가요?'라고 소개된 감천문화마을
감천문화마을은 산비탈에 들어선 마치 피난민촌 같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작은 집들이 색깔 있는 공간으로 바뀐 곳이다. 지난 7월 29일 미국 CNN 누리집에 ‘Gamcheon: Is this Asia's artsiest town?'이라고 소개된 이곳은 마치 영화 속 풍경을 생각하게 만든다.
다행히 이곳에 도착하자 비가 조금씩 내렸다. 작은 우산을 들고 다녀도 옷이 젖지 않을 정도여서 걸어 다니는 데 큰 불편은 없었다. 이 마을의 집들은 자의든 타의든 알록달록한 색칠을 한 벽과 슬래브 지붕으로 독특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이곳은 부산시가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을 통해 개발한 곳으로 곳곳에 벽화를 만들고 골목 중간 중간 빈집에는 작가의 공방이 있거나 전시공간이 있었다. 현재 이 지역에는 감내카페, 감내맛집, 꽃마을 문화전시관, 까꼬막, 골목점빵 등 10개 마을기업과 분도리협동조합, 감내협동조합, (사)감천문화마을주민협의회 등 9개 법인과 공동작업장 등 마을거점시설 14곳이 만들어졌다.

▲ 감천문화마을의 개발은 주민참여의 정도에 따라 그 의미와 가치가 있다는 비판도 있다.
시민 스스로 문화에 참여해야

감천문화마을이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면서 6월 말까지 18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갔고 최근 골목길을 따라 ‘전망 좋은 식당’ 등 음식점, 카페, 건축수리업 등 20여개의 다양한 업종의 점포가 개업 또는 개업을 준비 중에 있다.
이렇게 사람들이 몰리면서 많은 사람들은 이곳을 ‘한국의 맞추픽추’, ‘한국의 산토리니’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모두 좋은 말인데도 불구하고 이곳에 살고 있는 마을사람들은 쉽게 다가오기나 할까 염려스러웠다.
여름 내내 많은 중국인들이 단체관광을 왔고 지금도 많은 학생들이 찾아오는 이곳은 수많은 재잘거림 때문에 주민들이 크게 불편을 겪고 있다. 골목에서 점빵을 찾아 음료수를 달라 했더니 만들어놓은 식혜를 권유한다.
잠시 쉬면서 주인아주머니에게 물었다. 나야 장사하니까 어쩔 수 없다지만 주민들은 무척 힘들어한다고 했다. 그냥 다니면 좋은 데 떠드는 소리가 쉬는 날을 피곤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럴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복도로 르네상스에 대한 비평의 글도 많이 있다. 바라보기건축으로 일관된 풍경의 건축은 자칫 비민주와 허구라는 환상으로 남는다는 것이다.
이종민 건축가는 계간 <예술문화비평> 9호(2013년 여름) ‘도시풍경에 관한 우려’에서 감천마을과 산복도로를 실제로 구성하는 시민의 삶이 깊이 살펴져야 하며, 결국 삶의 주체로서의 그들이 얼마나 이 문화행위에 참여하고 있느냐의 문제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면서 문화의 참 가치란 참여라는 점을 강조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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