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처럼 사는 작가 강봉규
나무처럼 사는 작가 강봉규
  • 정인서 기자
  • 승인 2013.03.06 17: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새로운 생명력 꽃피우는 삶이 그리움이며 행복
광주시립미술관, 2013 원로작가 초대전 4월 21일까지

한 나무가 있다. 그 자리에 터를 잡은 지 꽤 오래 됐다. 그는 오랜 세월의 기억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간직한다.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의 기운, 머리 위로 흘러간 뭉게구름의 모양까지도 나무는 기억한다.
뿌리를 한 곳에 내리고도 수많은 세월을 산 나무들, 미국의 메두살레나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바오밥나무, 스웨덴의 가문비나무 등은 상상 이상의 세월을 살았다. 5천년에서 9천년쯤으로 나이를 측정했다.

사람은 얼마나 살까? 이런 나무만큼 살 수 있을까? 종족 번식을 통해 현대인의 모습이 갖춰진 세월이 이들 나무의 나이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강봉규 작가는 “사실 나무는 수령에 한계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오래된 나무를 고목이라 하지만 고목에는 새로운 생명체를 또 꽃피우는 생명력이 있어 늘 새생명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4.19혁명 때는 눈물 흘리며 사진 찍어

▲ 강봉규 작가
그의 사진을 찍었다. “늙은 사람을 왜 찍어! 다른 좋은 사진 줄 테니 찍지 마”라며 웃음 짓는다. 사진작가인 그가 사진을 못찍게 한 것은 더 좋은 사진을 바랐을 일이다. 하얀 구레나룻과 턱수염이 세상을 나무처럼 보아온 듯한 경륜을 읽게 만든다.
나무는 토양과 공기 등 환경만 갖추어지면 거의 영구적으로 산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단지 병균이 들어 사람처럼 썩어죽을 뿐이라고 한다. 사람도 씨를 뿌려 영원히 사는 것이라 생각해본다.

그가 사진을 본격적으로 찍기 시작한 지 54년의 세월이 흘렀다. 1959년 기자생활을 시작한 이듬해 4.19혁명이 일어났다. 3.15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광고, 농고, 부고, 광여고 학생들이 거리로 나왔다. 도청 앞에서는 총을 맞고 쓰러진 학생들이 있었다.
그는 눈물을 흘렸다. 쓰러진 학생들을 찍었다. 신문에 보도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사진을 현상해 광주YMCA 앞에서 1주일 간격으로 몇 차례 사진 전시를 했다. 그의 행동은 일종의 ‘사진투쟁’이었다. 그 덕분인지 경찰의 강경진압이 수그러들었다.

그는 이런 경험을 하면서 사진은 참상보다는 감상적인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보도사진이라도 가능하면 예술미학적 접근이 가능한 사진을 만들어냈다.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그가 평생 찍어온 사진 가운데 아주 일부가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선보인다. 평소엔 한국인의 얼굴과 잊혀가는 풍경을 진솔한 사진 언어로 표현했고, 지난 10여 년간은 ‘나무’에 매료되어 푹 빠졌다.
집 마당에 하얗게 핀 찔레꽃에서 하늘을 향해 힘차게 솟구친 소나무, 1천년 묵은 향나무가 강 씨의 사진 속에 다시 살아났다. 그는 ‘순천 천자암 쌍향수’ 작품 앞에 섰다.

“사진 이야기 좀 해주세요?”
“중학생 때 외삼촌이 카메라를 갖고 있는데 호기심에 사진을 좋아하기 시작했어요. 나는 사진기자가 된 뒤로 웬만하면 한국인의 고향과 한국인의 얼굴, 그리고 그 삶의 지혜와 애틋한 고향을 찾아 미학적인 접근을 했지요. 그런 내가 또다시 새로운 바람으로 나무를 찾아 나선지도 어언 십여 년이 되어가네요.”

문화도시 표방하려면 공간구조가 따라줘야

그는 자신의 삶을 닮은 나무를 찾으려 한다. 또 그 나무에 얽힌 이야기 가닥을 풀어내려 한다. 쉬운 일만은 아닐 게다. 단지 그가 나무를 찾아나서는 것은 그 자체가 그리움이고 행복이라는 생각이다.
“왜 사진을 찍으신가요?”
“사람들에겐 모두 다 한 가지씩 마음의 고향이 있지요. 낮은 산 아래 실개울이 모여 강이 흐르고 언덕의 느티나무는 학교를 파한 우리들을 바람과 함께 맞이하고 ~. 나는 멈추지 않는 시간으로 남아있는 마음속의 고향을 다시 찾아 영원한 앨범 속에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지요.”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희랑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의 말이다.
“작가는 세련된 기교보다는 삶의 진솔함과 자연의 친근함이 깃든 순수성을 특징으로 합니다. 조작과 기교를 자제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그 존재에 대한 존중이자 진실을 향한 절제의 미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진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기억들을 기록하고 익숙한 풍경이지만 미처 보지 못한 나무들의 모습에서 조용하지만 위대한 세계로 이끌어가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전시도 쉽게 보면 그냥 쑥 지나쳐버릴 사진일지라도 한 점 한 점 사진 앞에 서서 들여다보면 새로움이 가득한 꿈이 보이곤 한다. 작품 앞에서 나무처럼 가만히 서있어 볼 일이다.

작가는 문화도시 광주에 대해 말할 때는 다소 격앙되었다.
“문화도시 광주는 산업화의 속도만큼이나 문화의식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요. 시민들이 동의하고 공감하는 문화도시가 되어야 광주가 살아납니다. 인권 평화의 도시도 중요하지만 아시아문화중심도시를 표방하고 있는 것에 걸맞게 문화예술의 수준을 그 위치에 올리는 것이 필요해요.”
그는 시민들이 어디에서나 문화예술을 접하고 논할 수 있는 도시공간의 구조를 형성하는 것이 문화광주의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말했다. 광주는 이게 없어 아쉽다고 덧붙였다.

현장에서 미학 논하기를 즐겨 해야

광주시립미술관이 2013년 원로작가 초대전으로 준비한 ‘강봉규, 나무와 사람’전에서 작가는 여러 가지 표정을 가진 나무 사진과 기억 속에 남아있는 한국인의 모습을 다시 끄집어냈다.
이번 전시에는 ‘나무는 사람이다’, ‘멈추지 않는 시간’이라는 두 가지 주제로 120여점을 선보였다.
1960년부터 일간지 사진기자로 일했던 작가는 현장에서 사실성이 높은 사진을 미학적으로 찍어왔다. 1964년 사직공원에서 눈 내린 무등산을 배경으로 한복을 입은 여성들이 강강술래를 하는 모습이나, 진도의 씻김굿, 서당 풍경은 사라졌지만, 소중한 역사적 장면으로 힘 있게 다가온다.

1935년 화순에서 태어난 작가는 1960년부터 1980년까지 광주일보 사진부장과 출판국장을 지냈으며 1992년에는 월간 ‘사람 사는 이야기’ 발행인을 역임했다. 1996년엔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02년 일본의 5개 도시를 순회한 ‘한국인의 고향'전, '현대 사진 흐름전·서울아트센터·1994’, ‘한국사진 60년전’, ‘광주비엔날레 주제전 만인보(2010)’등 수차례 기획전과 개인전을 열었다. 2011년 런던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강봉규 사진집’을 비롯하여 ‘한국인의 고향’(1988), ‘고향’(1991), ‘한국인의 얼굴’(1994), ‘마당 깊은 집’(1998), ‘지구촌 사람들’(2005), ‘멈추지 않는 시간’(2009) 등 사진집도 출판했다. 담양 가는 길에 명지미술관을 열고 열심히 문화운동 중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