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복직 때까지 장례 안치를 것”
“전원복직 때까지 장례 안치를 것”
  • 김경대 기자
  • 승인 2009.05.05 11: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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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4일 밤 침통했던 대전 빈소 표정

▲ 고 박종태 민주노총 화물연대 광주지부 제1지회장 빈소가 차려진 대전중앙병원 장례식장. 침통한 분위기 속에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조문객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4일 고 박종태(38) 민주노총 화물연대 광주지부 제1지회장의 빈소가 차려진 대전중앙병원 장례식장.

전날인 3일 정오 무렵 대한통운 대전물류센터 앞 야산에서 고인의 주검이 발견된 후 장례 절차 논의가 늦어져 이날에서야 마련된 빈소에는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조문객들의 행렬이 새벽까지 이어졌다. 저녁 7시부터 병원 앞에서는 150여명의 노동자들이 자리한 가운데 촛불 추모집회가 열렸다. 늦은 일과를 마치고 밤을 달려온 조문객들은 영안실 안팎에서 삼삼오오 침통한 표정으로 고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장례식장 주변으론 고인의 죽음을 추모하는 십 수개의 검은색 플래카드가 걸렸고 분향실 앞과 장례식장 앞마당에는 화물연대, 민주노동당 등 각계각층에서 보내온 추모화환들이 열을 지어 늘어서 있었다.

7살 난 장남을 대신해 조성규 화물연대 광주지부장이 미망인과 함께 상주 자리를 지켰고 ‘ㅅ자’ 띠를 두른 액자 안의 고인은 검은색 점퍼 차림에 미소 띤 얼굴로 아무 말이 없었다. 공무원노조에서 상근간사로 일하는 미망인은 눈물로 위로하는 지인들을 맞아 애써 의연한 모습을 보이며 보는 이들 마음을 더 안타깝게 했다.   

▲ 고 박종태 민주노총 화물연대 광주지부 제1지회장.
‘특별하지 않은 사람’ 고 박종태 지회장을 떠나보내기 위해 모여든 조문객들은 막상 고인이 남긴 무거운 숙제 앞에서 모두들 숙연해졌다.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 몇몇 이들이 고인의 이름을 부르며 오열하는 통에 간간히 이어지던 대화마저 침묵으로 잦아들었다.  

이날 오전 검찰 관계자가 부검영장을 소지하고 빈소를 찾았으나 유족들의 거부로 빈손으로 돌아갔다. 타살 혐의가 없고 자살 정황이 뚜렷한 만큼 고인의 시신을 굳이 훼손할 필요가 없다는 것.

유족들과 화물연대는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범국민투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망자의 숙제를 해결한 후 고인의 시신을 광주로 안치한다는 방침이다.

화물연대가 소속된 운수노조 광주전남본부 준비위 관계자는 “대한통운 광주지사 소속 택배 해고노동자들 30여명과 지난달 23일부터 대전물류센터 앞에서 벌여온 농성이 별다른 진척이 없는데다가 싸움을 이끌어 온 당사자로서 부담감이 컸던 것 같다”고 자살동기를 추정하고 “해고노동자 78명 전원복직 전까지 향후 정해진 장례 일정은 없다”고 말했다.

화물연대 소속 한 조합원은 “고인의 유서 중 화물연대의 지원이 아쉽다는 서운함은 지도부나 조합원들 모두 뼈아프게 생각하는 대목”이라며 “하지만 지난해 6월 삼성전자 광주공장 파업 당시 화물연대 전체가 결합하고도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한 부담감 때문에 섣불리 움직이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고 현실적인 어려움을 털어놨다. 그러면서 이 조합원은 “지도부와 조합원들의 때늦은 반성과 각성이 새롭게 모아지고 있는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고 박 지회장은 유서에서 “고분고분 노예로 살라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있다. 개인의 안락만을 위해 투쟁할 것이 아니라 통 큰 목적을 가지고 손을 잡고 힘을 모으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힘없는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린 지 43일이 되도록 아무 힘도 써보지 못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을 호소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연대투쟁을 기원한 바 있다.

대한통운 한 해고노동자는 “노조를 탈퇴하면 재계약을 받아주겠다는 기만적인 사측의 태도에 맞서 40일 넘게 같이 싸워 온 지회장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며 “이제는 대한통운만의 문제가 아니라 특수고용직이라는 굴레에 허덕여온 이 땅의 노동자들을 대신해 끝까지 싸워나갈 것”이라고 결의를 다졌다.

한편 대전중앙병원 앞에서는 5일에도 촛불집회가 계속되며 6일 오후 2시에는 대전물류센터 앞에서 화물연대 확대간부 집회투쟁, 9일 같은 장소에서 전국노동자대회 총력집중투쟁이, 12일에는 광주에서 다시 한번 총력집중투쟁이 예고돼 있다.

▲ 고인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민주노총 등은 '범국민투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강경 투쟁을 예고했다. "해고노동자 전원이 복직되기 전까진 장례를 치르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과 함께 촛불추모제와 집회 등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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