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호남 잇는 바느질 걸음이 마음으로 보내는 글
영호남 잇는 바느질 걸음이 마음으로 보내는 글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9.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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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광주 근교 '화순'이라는 고을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5학년 때 광주로 전학 온 이래 지금까지 무등산을 울타리 삼아 살아온 순수혈통 '빛고을지기'입니다. 42세 남자이며, 중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 선입견을 잠시 접어두시기를 충심으로 부탁드립니다. 먼저, 지역감정 타파와 동서화합을 이야기하자면 정치와 언론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기로 몇 가지를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정치를 잘 알지 못하는 평범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김대중 대통령을 비판적으로 지지하는 사람입니다.

비판적이라는 단서를 단 것은 '최선은 아니었다'는 말이기도 하고, '잘하지 않으면 언제든 지지를 철회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호남사람이니까 당연히 지지한다는 단세포적 지지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근자에는 고향이 부산인 정치인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를 지지하는 이유는 동서화합을 위해 노력하고 실천하는 모습이 아름다웠기 때문이고, 불편 부당한 것에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소신과 원칙으로 행동하는 모습에서 감동받았기 때문입니다.


부마항쟁과 광주항쟁

우리 세대의 연령층은 흔히 386세대, 혹은 모래시계 세대라 불려집니다. 일상에서 컴퓨터의
역할이 거의 아니면 전부가 된 시대를 살면서도 386이라는 컴퓨터 기종(機種)으로 세대를 구분하는 것보다 차라리 '모래시계 세대'가 조금이나마 낫게 들리는 것은 '80년 5월 어느 날들'을 가슴에 보듬었던 보상심리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차마 볼 수 없어 무등산도 그 옷자락을 말아 올려 두 눈을 가리워 버렸던 80년 5월 어느 날들을 시인 김남주 님의 울부짖음이 아니어도 저는 생생히 기억합니다.
그리고 79년 10월 18일, 부산과 마산에서 민주를 외치다가 스러져간 넋들 또한 너무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80년 5월 18일의 광주를 불러낸 이들이 바로 그들일지도 모릅니다.

광주보다 먼저 민주세상을 외친 곳이 바로 부산과 마산이니까요.
저는 올해 새해 첫날 광주 망월동에서 열사들의 피에 절은 한 줌 흙을 등에 지고 사랑하는 제자 두 녀석(김필중, 서학일)과 부산까지 걸었습니다. '동서화합 그날까지 이 한걸음 바느질되어'라고 쓴 삼각깃발 하나씩 손에 나누어 들고 추운 섬진강 바람을 아프게 맞으며 걸어갔습니다.
마산에 들러서 3.15 부정선거를 온몸으로 거부했던 시민들의 의로운 정신 앞에서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420km를 걸어 도착한 부산 민주공원의 기념비 밑에 망월동의 부릅뜬 흙을 섞으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소개해 드릴 분이 있네요. 대구 모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고 있는 김진향 님은 '달구벌' 순수혈통의 제 친구입니다. 그 친구는 대구에 살고 있는 20여 명의 지인들과 거의 매년 오월이면 광주를 찾는답니다. 저는 이름도 없이 스러져간 넋들 앞에 앉아서 토해내는 그의 신음을 보았습니다.
무엇이 우리들을 이렇게 하도록 하는 것일까요? 누가 이 나라를 이토록 나누어 놓았습니까?


가해자와 피해자

학교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언론들이 학교 현장에서의 학교폭력 문제를 마치 어느 날 갑자기 유행되는 병인 양 떠들어대지만 그것은 유행병이 아니라 만성질환입니다. 독자들도 학창시절을 돌이켜보면 한두 번쯤 경험했거나 목격했던 일일 것입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나 [데미안]을 읽어보셨다면 동서고금에 걸쳐 학교폭력 문제는 존재해 왔던 만성질환 '고질병'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12년의 교직생활 중 8년 동안 학생부의 업무를 보면서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했던 경험이 여러번 있었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피해자와 가해자가 분명한데도 문제해결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피해를 당한 학생은 주눅이 잔뜩 든 표정으로 미안해하면서 사과를 받고, 가해자인 학생은 매우 못마땅한 표정으로 마치못해 사과를 해 주는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 반복되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유형의 폭력 문제는 학교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대체 이러한 현상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요?

우리 나라의 현대사를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 답을 쉽게 찾아낼 수 있게 되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해할 수 없는 공통반응을 알게 됩니다.
먼저 근·현대사를 통틀어서 가장 치욕적인 일제 36년. 주권국가를 침략, 찬탈해 헤아릴 수 없는 혹독한 가해를 저질렀던 일본이 패망 후 오늘날까지 마음으로 사과하거나 참회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있습니까?

적반하장으로 일본 자국내 일부 수구세력들은 오욕의 역사를 왜곡하거나 그 날의 향수를 잊지 못해서 그 '찬란했던 날'로 회귀하자며 책동을 일삼고 심지어 어린 학생들이 보는 교과서까지도 왜곡하는 과단성을 보이고 있는데 정작 피해를 입은 국가에서는 주눅든 표정으로 사과를 구걸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또, 지구촌을 쥐락펴락하는 미국이 개입했거나 개입하고 있는 국제전쟁에서 전쟁의 상대국은 언제나 세계로부터 '왕따'를 당했습니다. 북한, 베트남, 이라크가 그랬습니다. 미국은 어떤 전쟁에서도 피해 당사국에게 사과다운 사과를 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국의 정당성만을 세계만방에 강요하고 있습니다. 날아가는 포탄을 파리채로 잡겠다는 부시 정권은 힘없는 주변국들에게 반 협박을 하고 수구언론들은 지구를 지키는 독수리에게 파리채를 쥐어줘야 한다며 맞장구를 치고 있습니다.

자 생각해 보세요. 어린 학생들이 기성세댸에게서 무얼 보고, 듣겠습니까? 가해자들이 더욱 큰소리를 치는 세상을 살고 있으니 보고 배운 대로 행동하는 것 아닐까요? 어쩌면 가해학생들의 표정이 정직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지역감정의 가해자와 피해자는 누구일까요?
가해자는 수구언론과 일부 정치 모리배이고 피해자는 우리 국민 모두입니다.

사견입니다만 동서남북을 나누려는 세력의 가장 큰 원흉이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수구 언론이라 생각입니다. 이 언론들은 부마항쟁인지 부마사태인지, 광주사태인지 광주항쟁인지도 구별해 주지 못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3공화국이 18년밖에 못 할 줄 누가 알았을 것이며, 5,6공화국이 백담사와 감방을 찍고 다닐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일제가 그렇게 빨리 끝날 줄 몰랐다던 어떤 분처럼 말입니다. 획일밖에 몰랐던 수구 언론들이 요즘 혼란에 빠져있는 것은 분명한 듯합니다. 국민 모두가 오른쪽 눈만 있는 애꾸눈이어야 하는데 요즘 들어서 두 눈을 다 사용하는 사람들이 나타나서 떠들어대니 당황스럽기도 하고 혼란스럽겠죠. 그러나 다양한 의견이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이고, 발전하는 사회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습관이 되지 않아서 그렇지 지극히 정상적인 사회로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언론이 가해자는 말은 아닙니다. 진심으로 나라를 걱정하는 신문도 있습니다. 예컨대 [한겨례신문]이 창간된 이후로 오늘까지 정부의 실정을 보고도 그냥 눈감고 있는 것을 보고 못했고, 정부가 잘 하고 있는 일을 생트집 잡는 것 또한 보질 못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언론의 역할이요 언론이 마땅히 지켜야 할 '언론의 자유'입니다.


사랑해야만 하는 우리들


우리 나라의 무형문화재 제1호를 아십니까? 전통음악 중에 '종묘제례악'이랍니다. 무형문화재를 다시 제정할 수 있다면 저는 '지역감정'이라는 무형의 괴물을 제1호로 천거하고 싶습니다. 형태는 없으나 존재하고 있는 지역감정은 두고두고 연구해 볼 가치가 있는 특종 괴물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심각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흔히 영남사람들은 가해자이고 호남사람들은 피해자라고들 하지요. 그러나 천만의 말씀입니다. 이런 논리가 바로 언론플레이라는 겁니다. 단언컨대 호남사람들은 영남사람들에게 피해를 당한 것이 없습니다. 영남사람들은 호남사람들에게 가해를 한 것이 없습니다. "이게 갑자기 무슨 말이냐?"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잠시만 참고 조금 더 깊게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진짜 가해자들에게 속고 있습니다. 영호남 사람들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들 모두가 속아 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조폭적인 언론과 일부 정치모리배들이 악마의 주술과 함께 뿌려놓은 최면의 먹물가루를 뒤집어쓴 채, 서로 '미워하고 증오해야 한다'는 최면의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조폭적 일부 언론들과 지역 감정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하고 간교한 일부 정치모리배들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우리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도록 먹물가루를 뿌려댈 것입니다.

무더운 여름날 가위눌려 잠이 들면 간혹 악몽을 꾸곤 하죠? 팔 다리가 잘릴 때도 있고, 무서운 강도가 목을 조를 때도 있지만,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세상은 평화롭게 내 곁에 존재하고 있지 않던가요.

우리는 그 최면의 잠에서 한시라도 빨리 깨어나야 합니다. 저는 은근하면서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여성미를 사랑합니다. 끊고 맺는 절도의 남성미를 존경합니다. 걸죽하고 투박한 전라도사투리에서는 정(情)스러움이 물씬거립니다. 우리는 서로가 미워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의무적으로 서로 사랑해야만 하는 하나의 민족입니다.

이제 이유 없는 미움을 거둬버리고 사랑해야만 하는 이유를 찾아내야 합니다. 남과 북이 이념으로 나누어져 있는 것도 서럽고 창피한 일인데 동서마저 이유도 모른 채 미워해야 합니까?

조금만 더 마음을 열고 동서남북이 모두 사랑하는 세상을 우리가 만들어야지요. 사랑하는 내 아들과 당신의 딸에게 미움과 사랑 중에 무엇을 물러줄까요!


/이 글은 인물과 사상 9월호에 실린 것이며 필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임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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