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동 송노인의 '좋은 동네 만들기'
사직동 송노인의 '좋은 동네 만들기'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8.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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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무슨 상관인가요. 깨끗하고 살기 좋은 동네는 누구라도 나서서 만들어야지>

사직공원과 광주천을 끼고 있는 광주시 남구 사동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눈에 크게 뜨이지는 않지만 들여다보면 시민의 눈 높이에 맞는 변화의 흐름이 일고 있는 것이다. 변화의 중심에 한 노인의 땀이 들어 있다.

사동에 사는 송정섭(78) 할아버지의 아침은 자전거를 타고 동네 한바퀴 도는 것으로 시작한다. 가로등은 모두 꺼져 있는지, 쓰레기가 제대로 치워졌는지. 그리고 사동과 불로동을 잇는 부동교를 건너며 광주천의 오염 상태까지 둘러보면 아침 식사 전의 일과가 끝난다.

그렇다고 그가 동장이나 통반장 등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다. 주민의 한 사람일 뿐이다. 굳이 따지자면 사동 여래경로당 노인회장이다.

송 할아버지는 81년 광주시 광산구 본촌동 우체국을 끝으로 공무원생활을 마감한 뒤 그동안 직장생활하느라 살피지 못했던 동네에 대해 조금씩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특유의 부지런함 때문에 몸을 놀릴 수 없었다.

30년을 살았어도 미처 알지 못했던 동네의 모습들이 송 할아버지의 눈에 하나씩 들어왔다. 사동은 시내 중심권에 인접해 있음에도 사직공원이란 녹지를 끼고 있어 상권이 발달하지도 않았고, 지은 지 오래된 집들과 좁은 골목길, 그리고 광주천을 끼고 있다보니 여름철엔 모기도 많아 주민들의 불만이 쌓여 있었다.

대낮 훤히 켜진 가로등 '자동점멸식으로 바꾸라'
좁은 골목길 불나면 인명피해 '소방도로 만들라'
광주천 직접 와서보면 썩은물 내버려두지 않을텐디..


밝은 대낮에도 가로등이 켜져 있는 것을 본 송 할아버지는 동장과 구청직원을 찾아가 자동점멸식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6개의 가로등이 교체됐다. 2년 전의 일이다.

지난 99년엔 사동 135번지 가정집에서 불이나 건물을 모두 태워버렸다. 비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이라 소방차가 들어오지도 못했다. 송 할아버지는 골목 주변 주민24여명의 서명을 받아 소방도로확장건의서를 구청에 접수시켰다.

관계기관에선 재정상의 이유 등으로 난색을 표했지만 송 할아버지는 구청과 시청, 동장, 구의원, 국회의원을 쫓아다니며 도로확장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결국 올해 원래 요구했던 200미터 구간 중 우선 절반만 확장공사에 들어간다는 결정을 받아 냈다.

인근 여래경로당의 노인회장이기도 한 송할아버지는 노인들의 휴식공간에 관심이 많다. 사직공원 옛 오리사육장 자리에 분수대가 놓이면서 그늘 좋은 공터가 생기자, 공원 안에 이용자가 적은 파고라를 이곳으로 옮기면 적은 비용으로 노인들의 좋은 휴식공간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송 할아버지는 구의원과 공원관리사무소측에 제안했고, 올해 5월부터 노인들의 좋은 피서공간이 마련됐다.

이 외에도 노인 무료급식 장소에 설치한 비 가림막을 비롯해, 큰돈 들이지 않아도 주민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송 할아버지는 스스로 땀 흘리기를 아까워하지 않는다.

"부지런히 몸 놀리면
큰돈 들이지 않아도
여러사람 편합디다"


송 할아버지가 요즘 가장 신경 쓰는 곳은 광주천이다. 사동 옆을 흐르는 부동교와 중앙교 사이의 하천구간은 퇴적물이 쌓여 웅덩이가 생기고 악취와 모기의 온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달에 한 두차례 실시하는 방역이나 풀 베기정도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최근엔 자치단체와 시민단체에서 생태하천으로 보전해야한다며 한달에 두 번 하천 주변을 청소하는 것 외에 손 대기를 꺼려하는 반응이다.

"생태천은 내버려 둔다고해서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예요. 긁어 낼 곳은 긁어내고 정리 할 곳은 정리하면서 가꿔가야 물도 깨끗해지고 아이들도 와서 놀 수 있지요. 직접 와서 썩은 물과 웅덩이에서 나는 악취를 맡아보면 바로 알 수 있는 건데."

이런 송 할아버지의 활동은 행정기관의 입장에선 어찌보면 상당히 괴로운 일이기도 하다. 남구청 건설행정과에선 '아 그 분이요?' 할 정도로 송 할아버지의 '명성'은 자자할 정도였다.

사동 3통의 정의남 통장은 "그 분은 사사로운 이익을 보려는 사람도, 남을 성가시게 할 사람도 아니다. 행정 실무자들의 입장에선 좀 피곤해 할 수도 있지만 이런 분들이 있어야 행정이나 동네가 발전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송 할아버지의 자식들도 '따순 밥 먹고 왜 듣기 싫은 소리까지 들어가며 일을 사서 하시냐'며 이제 그만 쉬시라고 한다. 하지만 송 할아버지의 좋은 동네 만들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거 같다.

"한가한 노인이 소일거리하며 귀찮게 군다고 볼 수도 있어요. 하지만 결정과 집행은 행정당국에서 하더라도, 동네에 필요한 것이 뭔지는 실제 살고 있는 사람이 가장 잘 알잖아요. 동네가 밝아지고 깨끗해지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맑아진다고 생각해요. 그런데도 남의 일처럼 팔짱끼고 바라볼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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