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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동무
김병욱 문학평론가/충남대 명예교수  |  siminsori@siminsor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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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07  16:3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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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욱 문학평론가/충남대 명예교수

아무래도 ‘길동무’라면 길을 같이 가는 사람을 뜻하지만 걸어서 같이 가는 사람이 떠오른다. 요새는 걸어다니는 사람이 없다. 교통이 발달하여 어지간한 외진 곳이라도 마을버스가 다니고, 누구나 승용차가 있다시피 하고 보니 걷는 사람이 눈에 띄지 않는다. 걷는 사람이 없으니 길동무도 있을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은유적인 언어 확장에 따라 같은 길을 걷는 사람을 길동무라 한다. 말이란 이처럼 쓰임새에 따라 그 뜻이 달라진다.

나는 12살부터 16살까지 4년 동안 내 평생 걸은 것보다 많은 거리를 걸었다. 그 중에서도 1950년 추석날 저녁 우리 식구 6명(어머니, 형, 큰 누님, 작은 누님, 여동생, 나)이 밤에 오십리(20km)를 걸어 큰 집으로 피난을 간 그 밤길이 우리 식구가 함께 길동무 삼아 걸었던 마지막 걸음이었다. 살던 집을 버리고 산길을 택해 피난길을 걸었던 그 때의 심정은 밝은 추석 달밤이었으나 어린 마음에도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한식구가 길동무였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아련한 추억의 밤길이었다. 형과는 그 밤길이 마지막이었음에랴. 내 인생에 있어서 지우고 싶은 고생길의 연속이 다음해 음력 13일 까지 계속되었다. 간신히 죽을 고비를 넘어 담양군 금성면 대실(대곡리) 큰 어머니 친정 마을에 도착하기까지 숱한 길을 걷고 또 걸었다.

1951년 6월 초순경 이종 고광덕 형님이 담양으로 날 데리러 왔을 때 나는 그 지긋지긋한 피난 생활이 끝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니었다. 대실에서 비야까지 40리 길을 걷는데 매곡형님(고광덕)의 걸음이 어찌나 빠르던지 13살 된 나는 거의 뛰다시피 했다. 길동무로서는 전연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고약한 길동무인 셈이었으나 어머니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불평 한 마디 못하고 종종 걸음으로 더운 40리 길을 걸었다. 만약 나였으면 어떠 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나라면 어린 이종 동생을 배려하여 좀 천천히 걸었을 것이다.

6개월 후 무등산이 첫눈을 이고 있을 때 나보다 한 살 위인 조카 재혁을 길동무 삼은 비아에서 광주까지 30리길은 길동무가 또래여서 그런지 멀리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무등산이 눈에 덮여 하얗게 멀리 보이던 모습이 눈에 아련히 떠오른다. 65년이란 세월이 너무나 선명히 떠오른다.

내가 같이 길동무한 최상의 상대는 교동 아짐(막내이모)이다. 1953년 6월 초순경 광주에서 함평군 해보면 문장까지 장장 70리 길을 사람 좋기로 소문난 막내 이모와 걸어가니 먼 길이었지만 멀리 느껴지지 않았다. 긴 6월의 해가 한 발이나 남아서 큰 누님 집에 도착했다. 가는 길에 송정리 어느 식당에서 사준 국밥이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뭐라 말도 많이 한 것 같은데 그 내용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도 하여간 좋은 길동무여서 70리 길이 멀리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청년이 되어 길을 걸을 때에는 길동무가 별로 없었다. 가끔 등산길에 길동무를 만날 때도 있지만 길동무라고 말할 수 없다. 내 생애에 있어서 하루에 36km이상을 걸은 적이 있는데 1966년 10월 25일 오대산 일주 때인데 한 20여 킬로그램 배낭을 짊어지고 대학 때의 은사 김열규 선생과 길동무 삼아 등산을 한 적이 있는데 아침 6시부터 오후 7시까지 어찌나 강행군을 했던지 지금 생각해도 입에서 쓴맛이 날 정도다. 김열규 선생과는 여러 번의 길동무를 했으나 너무 무리하게 노정을 잡아서 그런지 좋은 길동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다만 학문의 길에서는 훌륭한 길동무라는 생각이 든다. 선생께서 혈액암에 걸려 투병하실 때 어느 날 전화를 했더니 “요즈음 내가 외롭네”라고 하셨는데 찾아 뵙지 못한 채 떠나셔서 못내 서운할 뿐이다.

개인이나 나라나 좋은 길동무를 만나면 그 길이 험할 지라도 힘들이지 않고 수월하게 걸어 나갈 수 있다. 반면에 길이 잘 닦아진 길이라도 길동무와 사이가 좋지 않으면 그 길은 가시밭길이거나 모래밭길과 같을 것이다.

우리의 주변을 보면 여당과 야당은 최악의 길동무인 것 같고 남북한 또한 원수지간과 같은 길동무를 만난 것 같아 하루가 편안할 날이 없는 것 같다. 정말 좋은 길동무는 없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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