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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길 고문  |  siminsori@siminsor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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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01  03:3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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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홍길 고문

1960년대의 “못 살겠다, 갈아보자”했던 민심이 4.19혁명의 원동력이 되었다면, 2016년부터 발화한 “적폐청산 박근혜 구속”의 촛불들의 요구는 문재인 정권이 주도하는 오늘의 개혁 드라이브의 정치 지형을 이룩했다. 더불어 바르고 정의로 수식되는 정당들의 이름값으로 보면 온 국민이 염원하는 적폐청산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것 같지만, 현실의 걸림돌들은 녹록치 않다.

지난 시절의 적폐청산의 시금석일 수 있고 대통령의 공약사항인 ‘5.18 특별법’ 제정에 갖가지로 딴지를 거는 정치세력이 의연히 엄존한다. 적폐일지라도 그것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 대한민국이라는 저들의 비뚤어진 국가관과 그에 따른 자부심이 촛불의 빛과 열기에 찬물을 끼얹으려 하고 있다.

촛불이 조성한 오늘의 개혁 정국은 국민의 명령이다. 현존하는 정치집단으로서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방법으로써 국민이 요구하는 적폐청산일지라도 트집을 잡고 딴지를 거는 방법으로 자신들의 역사적 정체성을 과시하면서 자기들다움에 충실하다고 자부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국민의 요구이자 명령인 적폐청산은 이를 훼방하고 지연시키려는 세력들의 정계퇴출 요구로 상승하여 그 분노가 봇물처럼 터져 나올지 모르니 자중하고 자중해서, 적폐청산을 통한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국민은 돌아온 탕자를 위해 잔칫상을 준비할 아량이 맥맥하다. 부연하지만 한국 현대사에 있어서는 안 될 얼룩 속에서 일궈진 정체성은 그 자체가 역사적 적폐임을 귀띔하고 싶다.

봄날의 꿩이 요란하게 울어대는 것은 동료를 불러내는 몸짓으로 선인들은 춘치자명이라 했다. 울음소리에 화답하는 동료도 있겠지만, 사냥꾼과 포식자를 불러들일 수도 있다. 생긴 대로 사는 게 능사가 아니다. 꿩의 정체성을 넘어서는 보다 큰 섭리와 계절의 특성을 잘 살펴야 할 것이다. 더불어 바르고 정의롭고 자유로우려면, 얼룩 속에 피어난 물방울 그림 같은 타성에 안주하면서 “우리도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일익을 담당했다”는 춘치자명은 이제 그만 둘 때가 되었다. 사냥꾼이 다가오면 당신들의 정체성은 고사하고 존재마저 지탱하기 어렵게 된다는 사실을 성찰하고 성찰해야 할 것이다.

무등산을 오르는 길은 증심사 계곡에도, 원효사 계곡에도, 만년사 계곡에도 있다. 꼭 하나의 길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들은 바람직한 방편에 따라 길을 선택한다. 길의 절대화는 자신이 선택한 길만을 고집하면서 “나를 따르라”하는 식으로 다른 길의 가능성을 배제한다.

억압과 착취가 미만한 현실과 살을 에는 혹독한 겨울에도 살아남아야 다음해의 봄날을 맞을 수 있고 이웃 사람과 더불어 만날 수 있다. 그냥 생존이 아니라 사람에 값하는 생존이기 때문에 바름과 정의를 말하게 되는 것이다.

일재하의 엄혹한 현실에서 억압과 착취가 있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의사가 되고 열사가 될 수는 없었다. 의사이고 열사인 분들도 온 국민이 자기들처럼 의사로 살라고 요구하지도 당부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억압의 구름이 걷힌 뒤 다순 봄날의 양광을 즐기면서 지난 날 의사들의 피 어린 투쟁을 기리는 기쁨은 자주 자결의 인민들이 누리는 축복이다.

안중근 의사를 기리고 윤봉길 의사의 쾌거에 가슴 설레며 백범과 약산의 애국 단성에 감격하는 것은 숱한 선열들을 둔 우리 국민들의 자랑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들은 의열투쟁을 기리면서 ‘투쟁절대화’, ‘투쟁미신화’의 신화를 만들어 독립투쟁을 단순화시키고 이러한 인식을 민주화 투쟁에도 알게 모르게 전이시킨다. “그 때 무엇을 했느냐”, “어디에 있었느냐”며 다그칠 때, 결사 항쟁하지 못했던 보통사람들은 난감해진다. 투쟁은 단선적이 아니고 중층적이다. 압제자와 억압자의 편이 아닌 모든 우리는 우리 편이고 우리 편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살면서 투쟁하고 투쟁하면서 생존할 수밖에 없는 역경을 헤쳐 살아남은 우리들의 조상과 우리 이웃들, 그들의 포기하지 않는 생존들이 있었기에 조국광복이 있었고, 4.19혁명이 있었고, 5.18항쟁이 있었고, 6.10항쟁이 있었고, 마침내는 촛불혁명이라는 대단원을 맞게 되지 않았는가?

자신의 존재만을 드러내는 춘치자명은 주변을 배제하여 구성원의 연대를 훼손한다. 작은 허물들을 확대하지 말고 관용으로 이웃과 함께 할 때 작은 나는 큰 우리가 될 것을 믿는다. 물론 정의가 사람됨의 바탕임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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