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1)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1)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 승인 2017.05.01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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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rowned and the Saved)

#1.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The Drowned and the Saved)』.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이는 세월호 참사 이야기가 아니다. 5.18 광주민주화 운동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1987년 4월11일에 이탈리아 토리노 집에서 투신자살한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1919∽1987)의 책 이름이다.

1986년 4월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의 경험을 철저하게 사유하고 성찰한 책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를 출간했다. 그런데 이 책이 그가 인생 최후에 남긴 유서가 되고 말았다.

레비는 1944년 2월말에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어 11개월 동안 지내다가 1945년 1월27일 러시아군에 의해 해방되어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해 10월에 고향 토리노에 귀향했다.

그는 1947년에 『이것이 인간인가』 책을 썼는데 1958년에 재판 발행되면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1980년에 간행된 일본어판의 책 제목은 『아우슈비츠는 끝나지 않았다』였는데, 이는 아우슈비츠라는 사건이 과거의 일이 아니라 아직도 계속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1)

#2. 1986년에 프리모 레비는 40년 만에 아우슈비츠로 다시 돌아왔다. 그는 더 이상 증인이 아닌 질문자로 아우슈비츠 참상을 회고했다.

왜 레비는 다시 돌아온 것일까? 그는 주저 없이 진실에 다가가기 위함이라고 답한다. 수사(修辭)에 맞서기 위해 산문으로 된 논평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두 번째 이유는 기억들이 잊혀져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저는 시대가 지나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저의 시대를 포함해서요. 해가 감에 따라 제게는 이 기억들이 이해되는 방식에 있어서 일종의 표류 현상이 일어나는 것으로 보였어요.”

(프리모 레비 지음 · 이소영 옮김,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돌베개, 2014, p 253-260, 이탈리아 일간지 「라 스탐파」와의 인터뷰)

한편 「뉴욕 타임즈」 북 리뷰는 “인생의 마지막 대목에서, 레비는 홀로코스트의 가르침이 역사의 일반적인 잔혹한 사건들 가운데 하나로 그렇게 잊힐 것이라고 점점 확신하게 되었다.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책은 40년이 지난 시점에서 쓴 나치의 절멸 체제에 관한 어두운 명상이다.”라고 평했다.

#3. 프리모 레비의 화두인 망각과 비관. 이 두 명제를 자세히 논의하기 전에 나치의 정치폭력부터 살펴보자. 1933년부터 1945년까지 히틀러의 나치는 계통적이고 조직적으로 유대인, 집시, 장애인, 성적 소수자, 정치적 반대파 등을 박해하여 대학살로 몰아넣었다. 이 사건은 규모로 보나 성격으로 보나 인류사에 유례없는 사건이었다.

프리모 레비는 이렇게 묘사했다.

“이처럼 예기치 않고 복잡한 사건은 그 언제 그 어느 곳에서도 발생한 적이 없었다. 그렇게도 많은 사람이 그처럼 짧은 기간에 학살당한 적이 결코 없었을 뿐더러 기술적 정교함, 광기, 그리고 잔인성이 이처럼 서로 밀접하게 결합된 경우는 더더욱 없었다.”

한편 레비는 나치주의를 쓸데없는 폭력으로 보았다. 그리고 폭력성의 본질을 ‘적은 죽어야 할 뿐만 아니라 고통 속에 죽어야 한다.’는 것에서 찾았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가는 열차는 지옥행이었다. 열차에서 죽은 사람은 버려졌고, 도착 후 포로들은 분류되어 가스실에 가거나 또는 강제 노동을 해야 했다. 수감자들은 인간이 아니고 동물이었다. 오직 번호로만 통용되었다. 174517은 프리모 레비의 수감번호였다.

나치의 폭력성은 유대인들로 구성된 특수부대 존 더 코만도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가스실에서 시체들을 꺼내 화장터로 운반하고, 재를 꺼내 없애는 일련의 작업을 했다. 즉 “유대인을 화로 속에 넣은 이도 유대인이었다.”

1) 『이것이 인간인가』 한국어판은 2007년에 출간되었다.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한국어판은 2014년에 출간되었는데, 목차는 ‘서문, 1. 상처의 기억, 2. 회색지대, 3. 수치, 4. 소통하기, 5. 쓸데없는 폭력, 6. 아우슈비츠의 지식인, 7. 고정관념들 8.독일인들의 편지, 결론‘으로 되어 있고, 부록으로 프리모 레비가 1986년 7월26일 이탈리아 일간지 『라 스탐파』지의 인터뷰, 프리모 레비 작가연보와 서경식의 작품 해설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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