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2) 기정대언(寄鄭代言)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2) 기정대언(寄鄭代言)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7.03.29 0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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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몸이 물가에 있는 줄도 모르고

이제 자신이 늙었음을 깊은 통회어린 마음으로 생각하면서 젊은 날 벼슬길에 목을 매달았던 시절을 회상하게 된다. 예나 이제나 틀린 말은 아닌 듯싶다. 과장 자리에 승진하려고 몸부림치거나 교장 한번 하려고 온갖 잔꾀를 부리면서 점수를 확보하는 어쭙잖은 모습을 보면 웃음이 나올 때가 더러 있다.

임금의 명을 대신 전하는 대언(代言)에게 질곡의 삶을 사는 인간사의 헛됨을 자기 처지와 비교해 비유적으로 전달하면서 정겹게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寄鄭代言(기정대언) / 가정 이곡

일생을 다한 마음 조각배와 같아서

한바탕 웃고 오니 모두가 흰머린데

그래도 벼슬 꿈꾸다 물가인 줄 몰랐네.

百年心事一扁舟 自笑歸來已白頭

백년심사일편주 자소귀래이백두

猶有皇朝玉堂夢 不知身在萩花洲

유유황조옥당몽 부지신재추화주

 

자신의 몸이 물가에 있는 줄도 모르고(寄鄭代言)로 번역해 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가정(稼亭) 이곡(李穀:1298~1351)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일생을 다하여 마음에 생각하는 것이 한 조각배 같아서 / 스스로 웃고 돌아보니 이미 흰 머리 되었네 // 그런대도 오히려 벼슬의 꿈을 가지고 있었으니 / 자신의 몸이 맑은 사철쑥 피는 물가에 있는 줄도 모르고]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정대언에게 주다]로 번역된다. 한시의 대체적인 경향은 나이 연만하여 쓴 작품이 많다. 꿈 많은 시절도 있었건만, 승승장구의 벼슬길도 있었건만 이제는 지나간 꿈이었음을 회상한다. 그리고 자기의 인생을 뒤돌아보고 회한에 젖어 있음을 살핀다. 어쩌면 질곡의 삶에 시달리다가 피할 수 없는 처지에 있는지도 모른다.

시인은 인생을 정리하는 길목에서 자신이 한 조각의 배와 같다고 심회한다. 일생을 다하여 마음에 생각하는 것이 한 조각배 같아서 스스로 웃고 돌아보니 이미 흰 머리되었다고 했다. 덧없는 세월을 보내고 스스로 웃고 돌아보니 검은 머리가 흰 머리가 되었다고도 회상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일반적으로 느끼는 그런 생각도 시인은 애써 회피하려도 하지 않으려는 초연한 모습니다. 그래서 화자는 바둥바둥 실오라기 같은 벼슬길의 길목에서 힘들었던 모습도 그려내고 있다. 남을 비방도 했을 것이고, 강한 성취의욕으로 시기와 질투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늦가을에 피어나는 사철쑥이 언제 어떻게 될 줄도 모르는 물가에 동그마니 피워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는 시심을 살며시 떠올리고 있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마음 생각 한 조각배 웃고 도니 흰 머리네, 벼슬의 꿈 가졌으나 몸은 이미 물가에 있네’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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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가정(稼亭) 이곡(李穀:1298~1351)으로 고려 말의 학자이다. 이제현 등과 함께 <편년강목>을 증수하고 충렬·충선·충숙 3조의 실록을 편수하기도 했다. 한때 시관이 되었으나 사정으로 선발했다는 탄핵을 받았다. 다시 원나라에 가서 중서성감창으로 있다 귀국했던 전력을 갖는다.

【한자와 어구】

百年心事: 일생의 심사. 一扁舟: 한 조각의 배. 自笑: 스스로 웃는다. 歸來: 돌아보다. 已白頭: 이미 흰머리 되었다. // 猶: 오히려 有: 있다. 가지다. 皇朝玉堂: 벼슬살이. 夢: 꿈. 不知身: 자신의 몸을 알지 못하다. [萩花]는 사철쑥 또는 인진쑥. 在萩花洲: 맑은 사철쑥 피는 물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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