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호남선비, 하서 김인후(3)
길 위의 호남선비, 하서 김인후(3)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 승인 2017.03.20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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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을 못 잊어서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1544년(중종 39) 11월15일, 중종이 재위 39년 만에 승하하자 인종이 왕위에 올랐다.

1543년 12월부터 옥과현감으로 근무하고 있던 김인후는 중종의 붕어와 인종의 등극 소식을 옥과현에서 들었다. 김인후는 인종을 곁에서 모시면서 지키고자 하였다. 1545년 5월에 명나라 사신이 국상(國喪)의 조사(弔使)로 서울에 오자 조정은 김인후를 제술관으로 불러들였다.

그런데 인종의 병은 너무 깊었다. 중종의 상을 치르느라 지나치게 정성을 다하고 거친 음식에 몸이 상한 것이다. 김인후는 문정왕후가 임금의 약 처방까지 한다는 데 불안했다. 또한 임금과 한 궁궐에 있는 것도 미심쩍었다. 그래서 자신이 인종의 약 처방에 동참하겠다고 약원(藥院)에 청하였으나 소임이 다르다고 거절당했다. 임금의 거처를 옮길 것을 건의했으나 역시 거절당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효종은 ‘역(逆)이지만 기실은 충(忠)이다.’라고 하였다. 비록 계모이지만 엄연히 어마마마인 문정왕후를 의심한 것은 죽을 죄에 해당되지만 인종의 쾌유를 위해 직언하고 행동했으니 충절이라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인종은 1545년 7월1일 재위 8개월 만에 승하한다. 생모 장경왕후를 일주일 만에 여윈 비운의 왕은 나이 서른에 요절한 것이다. 야사는 ‘문정왕후가 준 떡을 먹고 죽었다’고 전한다. 일종의 독살설이다.

인종이 승하하자 김인후는 옥과현감을 그만두고 낙향했다. 36세의 나이에 세상과 인연을 끊은 것이다. 이후 명종이 벼슬을 여러 번 하사하였으나 끝내 사양하였다.1) 김인후는 인종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하여 세상 떠나기 하루 전에 “내가 죽으면 옥과현감 이후의 관작은 기재하지 말라”고 유언하였다 한다.

한편, 김인후는 인종이 너무나 그리웠다. 그가 쓴 ‘그리운 사람(有所思)’이란 시를 읽어보자.

 

임의 나이는 서른이 되어 가고

내 나이는 서른여섯이 되는데

새 즐거움 반도 못 누렸건만

한 번의 이별은 활줄 떠난 활 같네.

 

내 마음 돌이라서 굴러갈 수도 없는데.

세상일은 동으로 흘러가는 물 같아.

한창때 해로할 임 잃어버리고

눈 어둡고 이 빠지고 머리마저 희었네.

묻혀 살면서 봄가을이 몇 번이던가.

오늘까지 아직도 죽지 못했소.

 

잣나무 배는 황하 중류에 있고

남산엔 고사리가 돋아나는 데

도리어 부러워라, 주나라 왕비가

생이별 하며 도꼬마리를 노래하다니

 

인종의 나이는 30세, 김인후는 36세라는 표현이 있는 것을 보면 이 시는 1545년경에 쓴 것이리라.

1546년에 하서 김인후는 인종의 기일(忌日)인 7월1일에 난산(卵山)에서 인종을 그리며 종일토록 통곡하였다. 제자인 송강 정철(1536∽1593)이 그 모습을 시로 남겼는데 그 편액이 필암서원 청절당에 있다.

▲ 필암서원 청절당에 있는 송강 정철의 시

동방에는 출처 잘 한 이 없더니

홀로 담재옹(하서의 다른 호)만 그러하였네.

해마다 칠월이라 그날이 되면

통곡소리 온 산에 가득하였네.

 

東方無出處 동방무출처

獨有湛齋翁 독유담재옹

年年七月日 년년칠월일

痛哭萬山中 통곡만산중

 

이후 김인후는 매년 인종의 기일인 7월 초하루에는 술을 가지고 난산에서 술 한 잔 마시고 한번 곡하고 한 잔 마시고 한번 곡하다가 취하면 소리 내어 울었을 정도로 인종을 못 잊어 했다 한다.2)

1) 정대년을 경기 관찰사로, 심봉원을 승정원 동부승지로, (중략) 김인후 【김인후는 청렴하고 근신함으로 자신을 지키고 세속의 누(累)에서 벗어나 시와 술로 세월을 보내며 강호(江湖)에서 풍월을 읊조리고 있었다.】를 성균관 전적으로 삼았다.(명종실록 1553년 7월21일)

2) 송시열이 지은 김인후의 신도비에도 “7월 인종이 승하하자 김인후는 부음을 받고 놀라 통곡을 하여 거의 기절하였다가 깨어났으며, 이로 인해 병을 얻어 현감의 직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왔다. 또한 매년 7월1일에 집 남쪽 산골짜기에 들어가 통곡하고 돌아왔다.”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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