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 수용소 소견(21)-단죄와 사죄
아우슈비츠 수용소 소견(21)-단죄와 사죄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 승인 2017.03.06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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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1. 나치의 단죄는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으로 끝나지 않았다. 서독은 ‘탈 나치화법’을 만들어 1949년 중반까지 340만 명을 기소하였다. 이중 250만 명은 사면되었지만 57만 명이 벌금형을 받고, 12만 명이 고용제한을 당했으며 9,600명이 수감되었다. 

서독은 1958년부터 1977년까지 20년간에 주로 하급관리들을 기소하였는데 816명이 기소되어 118명이 종신형, 398명이 징역형을 받았다. (라울 힐베르트 저· 김학이 역, 홀로코스트, 유럽 유대인의 파괴 2, 개마고원, 2008, p 1496-1524)

#2. 1948년 5월14일에 이스라엘이 독립하였다. 로마에 항쟁하다가 서기 70년에 예루살렘이 함락당하고, 서기 135년에 추방된 유대인들은 성서의 기록을 근거로 아랍인들이 줄곧 살아온 팔레스타인 지역에 나라를 세운 것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스라엘 건국에는 600만 명이 희생당한 홀로코스트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1945년부터 1949년까지 35만 명의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유럽에서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이주했다. 그런데 이들은 그리 환영받지 못했다.

당시에는 이스라엘 국가 건설이 중요했지,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상흔 치유는 뒷전이었다.

그런데 1950년대 들어서면서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되찾고 미래를 모색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제시한 해법은 “홀로코스트를 용서하자, 그러나 잊지는 말자”였다. 그리고 용서의 대가는 바로 서독의 배상이었다.

1952년에 이스라엘과 서독은 7억1500만 달러 배상에 합의했다. 배상은 1953년부터 1966년까지 이행되었다.

1953년에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에 야드 바솀(Yad Vashem) 기념관이 건립되었다. 야드 바솀은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1961년 예루살렘에서 열린 아이히만 재판이 이스라엘 전국에 TV로 생중계되자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은 자신의 기억을 되살렸다. 생존자들은 자기의 기억을 이웃과 자녀들에게 전했고, 이스라엘 정부는 홀로코스트 기억에 대한 다양한 정책을 수립하게 되었다.

▲ 위령탑 앞,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

#3. 1970년 12월7일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 게토지역에 있는 제2차 세계대전 희생 유대인을 기리는 위령탑 앞,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 (Willy Brandt 1913∽1992)가 헌화를 하던 도중 털썩 무릎을 꿇었다. 12월의 추운 날 위령탑 앞 콘크리트 바닥은 차가웠지만 그의 참회는 뜨거웠다. 

“나 자신이 저지른 범죄는 아니었지만, 위령비 앞에 서는 순간 우리 독일인들에 의해 죄 없이 생명을 잃은 수많은 영혼들의 무게에 나도 모르게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폴란드 국민들은 서독에 대해 매우 적대적이었다. 일각에서는 브란트 총리의 폴란드 방문 소식에 대해 나치 시절 점령했던 곳을 되돌려 받으러 오는 게 아니냐며 맹비난을 했다.

그러나 브란트 총리가 전쟁희생자 비석 앞에 무릎을 꿇은 채 고개 숙인 것을 TV 생중계로 지켜본 폴란드 국민들은 서독에 대해 나쁜 감정을 털어낼 수 있었다. 이런 브란트의 진심어린 사죄는 서방국가들뿐만 아니라 공산국가들의 마음도 흔들어 놓았다.

브란트는 독일의 분단책임은 이데올로기 갈등 때문이 아니라, 지난 시절 세계를 전쟁으로 몰아넣은 독일의 잘못에 있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고, 과거의 잘못에 대한 진정어린 사죄와 반성 없이는 통일도, 공산권 국가와의 협력도 가식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바로 브란트가 시작한 독일 통일 프로젝트, 나아가 유럽의 평화와 통합을 향한 ‘동방정책’의 출발이었다. (김정미 지음, 그들은 어떻게 세상을 얻었는가?, 아름다운 사람들, 2012, p 12-23)

브란트는 바르샤바 사죄 이후 모스크바 조약과 바르샤바 조약을 체결하였고, 1971년에는 냉전체제 긴장 완화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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