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8) 차운허정언견기(次韻許正言見寄)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8) 차운허정언견기(次韻許正言見寄)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7.03.02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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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속이 야박하니 누가 내 가르침 따르리

고려말엽 몽고 제국이 들어서면서 원나라의 연호를 쓰는가 하면 다음 보위에 오를 원자가 원나라의 풍습을 따르도록 했다. 그래서 임금의 칭호 앞에 충(忠)자를 붙였다. 그 때 원나라에 가서 공부하고 관에 진출한 사람이 많았다. 시인은 신흥 유학자로 새로운 제도와 풍습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저항도 만만찮았을 것이다. 이런 개혁적인 뜻을 갖고 충숙왕 복위 원년에 파직과 복위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그 심회를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次韻許正言見寄(차운허정언견기) / 근재 안축

북산이문 펴서 읽고 부끄럽게 여기였고

야박한 풍속인데 가르침을 따르리오,

폐단이 난무한 세상 구할 계책 없구나.

燈前優讀北山移         自愧歸休已太遲

등전우독북산이         자괴귀휴이태지

俗薄何人遵我敎         弊深無計救此時

속박하인준아교         폐심무계구차시

 

풍속이 야박하니 누가 내 가르침 따르리(次韻許正言見寄)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근제(謹齋) 안축(安軸:1282~1348)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등불 앞에서 근심해 북산이문이란 책을 읽고 / 돌아와 쉬니 너무 늦었음을 부끄럽게 여긴다네 // 풍속이 야박해 누가 내 가르침을 따르리오만 / 폐단 많은 세상인데 이 시절 구할 계책이 없구나]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허정언의 견기에 차운함]로 번역된다. 시에 나오는 허정연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북산(北山)은 중국 남경 북쪽 산이고, 이문(移文)은 글의 문체를 말하는 것으로 오늘날의 포고문, 통고문과 비슷한 글이다. 그래서 북산이문은 공치규(孔稚圭:447~501)란 자가 지었으며 고문진보에 전한다. 저자는 이 책을 읽은 후 풍속의 야박함을 꾸짖고 있음이 시적인 배경이 된다.

시인은 북산이문에 취했던 모양이다. 이 글에 푹 빠졌던 시인은 잠시 쉬면서 너무 늦게 깨닫는 자기를 부끄럽게 여기었고 세상을 구할 계책을 생각해 본다. 등불 앞에서 근심해 북산이문이란 책을 읽고, 돌아와 쉬니 너무 늦었음을 부끄럽게 여겼다고 했다. 고려 말의 어수선한 세상에 혼탁할 대로 혼탁함에 비애를 느꼈던 모습도 보인다.

그래서 화자는 풍속이 야박한데 누가 내 가르침을 따르겠는가라고 비관하는 자기모순에 빠진다. 얼마나 많은 폐단 속에 살았던가를 짐작하는 대문이기도 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세상을 구할 계책 하나 마련하지 못하고 서성이는 화자의 몸부림을 시문 속에서 찾게 된다. 시상은 역설적인 모순을 담는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북산이문 책을 읽고 너무 늦어 부끄럽네, 야박한 풍속 가르침 폐단 많아 계책없네’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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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근재(謹齋) 안축(安軸:1282~1348)으로 고려 말의 문신이다. 1340년(충혜왕 복위1) 전법판서로 동지공거가 되어 이공수 등 33인을 과거에 급제시켰다. 감찰대부로 임명되었다가 검교평리로 상주목사에 임명되었다. 밀직부사, 정당문학, 지밀직사사 등을 거쳤다.

【한자와 어구】

燈前: 등불 앞. 優: 근심하다. 讀: 읽다. 北山移: 북산이문 책. 自愧: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다. 歸休: 돌아와 쉬다. 已太遲: 이미 너무 늦다. // 俗薄: 풍속이 야박하다. 何人: 어느 누가. 遵: 따르다. 我敎: 나의 가르침. 弊深: 깊은 폐단. 無計救: (아직은) 구할 계책이 없다. 此時: 이 시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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