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지금이 개헌의 적기다
바로 지금이 개헌의 적기다
  • 홍인화 국제학 박사
  • 승인 2016.12.28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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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제를 청산하고 새로운 체제를 건설하자!”
▲ 홍인화 국제학 박사

“개헌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어느 정치세력에게도 유리하거나 불리한 의제가 아닙니다. 누가 집권을 하든, 보다 책임 있고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따라서 단지 당선만 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책임 있게 국정을 운영하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 개헌을 지지하는 것이 사리에 맞을 것입니다.”

“당장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셈할 일이 아닙니다. 셈을 하더라도 셈을 정확하게 하면 모두에게 이익만 있을 뿐, 누구에게 손해 가는 일이 아니라는 것은 금방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 발언을 누가 했을까?

최근 개헌과 그 시기를 둘러싸고 ‘호헌론’, ‘개헌유보론’과 ‘즉각 개헌론’ 등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위에서 인용한 개헌 당위성을 역설한 사람은 현재 개헌론자로 분류되는 손학규나 김종인이 아니다.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한 박근혜의 주장도 아니다.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 말이다. 그것도 10년 전인 2007년 1월9일에 말이다.

참여정부 당시 야당을 이끌던 박근혜는 참여정부 실정을 덮으려고 연정과 개헌을 제안하는 것이 아니냐며 노무현 전 대통령을 “참 나쁜 대통령”이라 지칭하고 단칼에 거절하였다. 역사의 아이러니일까. 이번에는 박근혜가 개헌 추진을 선언하자 노무현 전 대통령 정치적 상속자를 자처하는 문재인 전 대표가 일언지하에 거부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여야가 뒤 바뀐 처지에서 문재인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민주당 주류는 지금 개헌논의를 해서는 안 되는 몇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노무현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개헌 제안과 거절이라는 역사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개헌을 두고 10년간 조금도 발전하지 않은 되돌이표 논의만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개헌을 국가발전과 사회개혁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고 정권연장이나 정파적 이해타산의 논리로만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우리는 헌법 개정, 즉 개헌을 중차대한 국가대사로써 국가대개혁과 사회대개혁 측면에서 논해야 한다. 개헌은 한국 사회에서 오랫동안 누적되어 온 사회문제인 불평등 해소, 검찰개혁, 언론개혁, 재벌개혁 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지금부터 왜 개헌이 필요한지, 왜 바로 지금 착수해야 하는 시급한 과제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개헌은 왜 필요한가?

첫째, 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은 박정희 유신헌법 잔재가 남아있다. 대한민국 헌법 1조에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한 전제 조건인 삼권분립을 통한 권력의 견제와 균형은 우리 법체계에서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 대통령은 고위 공무원임면권, 대법관 대법원장 임면 제청권 등을 통해 사법부에 깊은 영향력을 행사한다. 여당이 다수당일 경우 사실상 입법부까지 좌지우지 하며 ‘제왕적 대통령’으로 군림할 수 있는 구조이다. 견제 받지 않은 절대 권력은 반드시 부패한 정부로 되돌아 왔다. 노태우 정부 이후 모든 정부가 친인척 비리나 권력형 부정부패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이는 부패가 단지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문제라는 것을 웅변해 주고 있다.

둘째, 한국 사회에 오랫동안 뿌리박힌 폐단을 청산하기 위해 개헌이 반드시 필요하다. 개헌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개혁이 개헌보다 우선이다”고 목소리 높여 외친다. 심지어 박근혜 부역자라고 비난하던 ‘비박’을 언제부턴가 개혁세력의 일원으로 추키며, 개혁입법의 적기임을 역설하고 있다. 동전의 양면인 개혁과 개헌을 서로 대립되는 과제로 보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비박이 가세하면 모든 개혁이 가능하고 사회문제의 해결이 가능할 것처럼 수선을 떨면서도 개헌은 절대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더욱 이치에 맞지 않는다.

사회의 모든 폐단을 청산하는 것과 헌법 개정은 서로 밀접하게 연동 되어 있다. 예를 들어 검찰 개혁을 생각해 보자. 문재인 전 대표는 정치 검찰이 아니었다면 최순실 국정농단도 없었을 것이라 지적하며 이를 반드시 청산하겠다고 공언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청산이 가능할까? 2012년 문재인 후보 검찰 개혁안(총장 추천위원회 구성, 시민단체 과반수 참여 등)에 의해 검찰 관련법을 개정해 상대적으로 독립적 개혁적 절차를 통해 후보자를 선정한다 하더라도 개헌이 동반되지 않으면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결국 헌법 78조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공무원을 임면한다”는 규정에 의하여 임면권은 대통령에게 귀속되고, 힘들게 뽑은 검찰총장이라도 대통령이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지 헌법적 권한에 의해 해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본적 검찰개혁을 위해서는 반드시 개헌이 필요하다. 헌법 78조는 “대통령은 헌법에 규정된 공무원에 한해 임면권을 행사할 수 있다”로 개헌하고 정치적 독립이 필요한 권력기관은 별도의 선출절차를 두는 방식으로 개정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주권을 온전히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또 하나의 대표적 문제는 경제적 불평등이다. 97년 이후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빈익빈 부익부’를 강화시키고 노동자, 농민, 중소상공인들을 파산 직전까지 내몰고 있다. 경제성장 과실을 1% 소수집단이 독식하는 양육강식의 경제는 우리 사회를 위협하고 있다. 차기 정부가 경제적 불평등 청산을 추진하려면 재벌해체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헌법에 추상적 경제민주화 조항을 확장해 개헌하지 않으면 입법 과정에서 위헌제청신청 등으로 좌초할 것이 자명하다. 따라서 완전하고도 철저한 폐단의 청산을 위해 개헌과 개혁입법은 동시에 추진해야 가능하다.

셋째, 정치권력을 나눠 가져야 한다. 그래서 개헌이 필요하다. 혹자는 개헌세력을 권력 나눠먹기 하려는 세력으로 단정하며 대통령 당선 가능성이 없는 정파나 정치인이 개헌을 기도한다고 비난한다. 그렇다. 기득권 정치인끼리 정치권력을 나눠 먹으려는 기도는 반개혁이고 야합이다. 그러나 ‘진보적이고 개혁적 개헌’을 주장하는 세력은 권력 나눠먹기를 다른 방식으로 제시한다.

현재 정치권력은 기득권을 옹호하는 보수정치인으로 채워져 있다. 권력구조와 선거제도가 그것을 보장해 주고, 재벌권력이 뒷받침해 주고 있다. 노동자, 농민, 중소상공인을 대변할 세력이 정치권력에 참여할 수 없는 권력구조는 선거제도 개편과 개헌을 통해 관철해야 한다. 보수 세력이 독점하고 있는 정치권력을 서민 대변세력과 권력을 나눠 가지는 방법의 일환으로 선거제도의 개편을 시행하고, 그에 합당한 권력구조로 헌법을 개정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정당에 진정한 진보정당은 출현하지 않았다는 평가가 많다. 새누리당은 극우, 민주당과 국민의당은 보수라는 것이다. 소선거구제는 진보세력의 출현을 계속해서 지연시킨다. 독일식 책임총리제와 권역별 변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새로운 진보세력이 20%~30% 권력을 가지고 극우를 제외한 세력과 연정을 통해 국정에 참여할 수 있다. 농민출신 국회의원, 노동자출신 국회의원이 개별적으로 진출해 봐야 별 의미 없다는 것은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개헌은 왜 시급한가?

지금 시점에서 개헌은 새누리당이나 친박의 정권연장과 수명이 다한 기득권세력의 특권을 연장만 시켜주는 수단으로 작용할까, 아니면 구체제를 청산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기폭제 역할을 할까?

그것은 개헌을 누가, 어떤 방향과 목적을 가지고 추진하느냐, 개헌 주도권을 누가 행사할 것인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며, 기득권 연장인가, 기득권 타파인가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즉 개혁세력과 기득권세력 사이에 힘의 역학관계에 의해 개헌 방향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헌법과 제도의 변화는 항상 집단 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정치투쟁으로 구성된 역동적이고 유동적인 무언가였다. 지금처럼 변혁기, 혹은 준 혁명시기와 같은 때에 제도를 개선해야만 불평등과 불합리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투쟁하는 세력이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가 가능하다. 지금이 아니라면, 광장에 모인 시민의 힘이 제도의 구성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기가 사실상 어렵다.

개헌 유보론자들은 국가 중대사인 개헌을 졸속으로 처리할 수 없다며 시기를 문제 삼지만, 개헌에 관한 논의는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되어 온 것으로 헌법학회 등의 전문가 집단에서 거의 모든 개정안을 사안별로 다 연구해 둔 상태이다. 이제 남은 것은 국민적 합의와 인식 확산, 그리고 선택의 문제이다. 지금 개헌을 하지 않는다면, 헌법의 개정안에 광장에 모인 촛불의 정치적 힘을 온전히 담아내기 어려울 것이다.

개헌이 사회개혁을 위한 도구라는 데는 동의하지만, 시기만을 문제 삼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개헌 유보론자’들이 최소한의 진정성을 가지려면, 차기정부 초기에 추진하되 대통령 임기를 3년으로 단축하고, 2020년부터 새 헌법을 적용해 7공화국을 출범시키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당장 이번 대선에서 대통령 임기단축 원포인트 개헌에 찬성하고 동참해야 할 것이다.

촛불 시민혁명이 단지 대통령 한 사람 바꾸는 것으로 끝난다면, 결국 미완성으로 마침표를 찍고 말 것이다. 제왕이 가능한 제도를 방치하면 반드시 박근혜와 같은, 아니 박근혜보다 더한 제왕을 보게 될지 모른다.

촛불이 한국사의 새로운 전환점이 되어 우리와 다음 세대에게 희망을 밝히는 등불이 되기 위해, 더 깊숙하고 근본적인 제도의 뇌관을 건드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지금 개헌은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 떼어야 할 발걸음이다. 바로 지금이 개헌의 적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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