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9) 산거(山居)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9) 산거(山居)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6.12.22 11: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산에서 살다

시인 묵객들은 자연에 취해 살면서 사는 곳이 어디인지 깜박했던 것 같다. 독서에 몰입하다 보면, 시작(詩作)에 정열을 쏟다보면 자기의 위치와 현재의 사정을 잠시 잊어버리는 수가 흔히 있었다.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직장의 일에 충실하다 보면, 작품 감상이나 놀이문화에 취하다 보면 이런 현상을 경험한다. 시인이 산속 자연에 취하면서 독서삼매에 흠뻑 빠졌다가 두견새가 우는 소리를 듣고서야 산에서 살고 있음을 느껴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山居(산거) / 쌍명재 이인로

이미 봄 지났는데 꽃의 모습 자랑에
하늘은 맑은데 골짜기는 그늘지고
두견새 대낮에 우네 사는 곳이 깊음을.
春去花猶在    天晴谷自陰
춘거화유재    천청곡자음
杜鵑啼白晝    始覺卜居深
두견제백주    시각복거심

‘산골짝의 두견새가 대낮인데도 울어대니(山居)’로 번역해본 오언절구다. 작자는 쌍명재(雙明齋) 이인로(李仁老:1152∼1220)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봄은 슬며시 지나갔지만 꽃은 여전히 피어있고 / 하늘은 더 없이 맑아도 골짜기는 포근히 그늘졌네 / 산골짝에 사는 두견새가 대낮인데도 저리 울어대니 // 비로소 사람 사는 곳이 깊음을 알겠구나]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산에서 살다]로 번역된다. 쌍명재의 문학세계는 선명한 회화성을 통하여 탈속의 경지를 모색했으며, [문]은 한유의 고문을 따랐고 [시]는 소식을 숭상했다. 최초의 시화집인 [파한집]을 저술하여 한국문학사에 본격적인 비평문학의 길을 열었다. 이 책에는 자작시가 들어 있는데, 자작시만 들어 있는 것도 13화에 이르고 있다.

시인은 깊은 산속에서 살고 있다. 봄 내음 깊숙이 파고드는 산 속에서는 늦게까지 꽃이 피었던 모양이다. 나무가 우거져 맑은 날씨이지만, 골짜기는 그늘져 있고, 밤에 울어야 할 두견새가 대낮에도 구슬프게 울고 있으니 인적이 드물어 깊은 산 중임을 비로소 알겠다는 내용을 담는다.

화자의 입을 빌은 이 시의 주제는 유유자적한 삶의 태도라고 하겠다. 한가한 산 속에서 벗 삼을 만한 것이 있다면 포근한 자연! 오직 그것뿐이다. 산골짝에 사는 두견새가 대낮인데도 저리 울어대니 비로소 사람 사는 곳이 깊음을 알겠다고 했다. 산 속에서 묻혀 살아가는 화자의 적적하고 고요한 심정을 나타냈으며, 그런 곳이라면 학문을 깊이 하며, 시문에 푹 빠져보는 작가적 태도까지도 찾는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봄은 가도 꽃은 피고 산골짝은 그늘졌네, 두견새가 울어대니 인적 더딘 산이겠지’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작가는 쌍명재(雙明齋) 이인로(李仁老:1152~1220)로 고려 후기의 문신이다. 글을 잘 짓고 초서와 예서에 능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1170년(의종 24) 19세 때 정중부가 무신난을 일으키고, “문관을 쓴 자는 서리라도 죽여서 씨를 남기지 말라.”하며 횡행하자, 피신하여 불문에 귀의했다.

【한자와 어구】
春去: 봄이 가다. 花猶在: 꽃은 오히려 피다. 天晴: 하늘이 개다. 谷自陰: 계곡은 스스로 그늘이 졌다. // 杜鵑啼: 두견새가 울다. 白晝: 대낮. 흔히 대낮을 [백주]라고도 한다. 始覺: 비로소 깨닫다. 卜居深: 사는 곳이 깊다. 사는 곳이 깊은 줄을 알다. [卜]은 길흉을 알다는 뜻으로 쓰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