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게임
진실 게임
  • 문틈 시인/시민기자
  • 승인 2016.12.22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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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거미줄 같은 관계망 속에서 살고 있다. 그 거미줄이 진실이란 재질로 짜이지 않으면 관계에 구멍이 생기고 허물어진다. 진실은 너무나 중요한 관계의 통로인 것이다. 사람들은 늘 진실에 목말라 한다.

오래 전 국내의 한 텔레비전에서 방영한 ‘진실 게임’이라는 프로가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 팀을 짜서 서로 진실을 알아맞히는 것이었던가. 하지만 사람들은 진실을 말하는 것을 꺼려하거나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일상에서 진실을 말하고 산다는 것이 거짓을 말하는 것보다 더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어떤 통계에 의하면 사람은 하루에 70번 정도의 거짓말을 하고 산다고 한다. 그래서 성서는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했는지 모른다.

최순실 게이트를 규명하는 국회청문회에 나온 증인들의 말은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알아내기 어렵다. 거짓을 말하지 않기로 손을 들어 선서했어도 그렇다. 이 사람은 이렇다 하고 저 사람은 저렇다 한다. 진실을 어떻게 가려낼 것인지 오히려 그것이 더 궁금해진다.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청와대 안팎에서 벌어졌다. 어떻게 그런 일들이… 하고 우리 같은 민초들은 입을 다물지 못한다. 부정, 불의, 비리를 캐기 위한 청문회, 특검, 검찰수사가 전방위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진실들이 백일하에 드러나서 단죄할 것은 단죄하고 넘어갔으면 한다.

그런데 진실이 정말로 백 퍼센트 순도로 밝혀질 수 있을까. 나는 이 점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이다. 누가 내게 그랬다. “어릴 적부터 지내온 라이프 스토리를 타인에게 숨김없이 고백성사 하듯 말할 수 있어?” 그러면서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진정으로 세례를 받을 수 없을 거야.” 나는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해놓고 끝내 못하고 말았다.

내게 무슨 신문에 날 비리나 부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아주 사소한 일들마저도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서 차마 그 친구에게 과거의 민낯을 보여줄 수 없었던 것이다.

사람은 살인죄를 지었다고 하더라도 마음속으로는 신께 진실을 고백할 수 있다. 아니 진실은 고백하기 전에 신이 알고 있다. 그러나 서로 관계망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쉽게 입을 열어 토설할 수 없다. 거의 누구나가 그렇다. 그만큼 진실은 때로 말하기 어려운 법이다.

그것이 타인에 관한 것이라면 진실을 감추지 않을 수 있다. 자기 이야기는 감추어도 남의 이야기를 사람들은 좋아하는 법이니까. 그렇다고 화자에게 대가를 지불해서 얻어내는 폭로를 진실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진실에 관한 이야기를 이렇게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지금 나는 너무 쉽게 쓰고 있는 것 같다.

불만스러운 느낌이다. 인생이란 어떤 의미에서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이며 동시에 진실과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인생이 살기 어려운 것은 진실 고백의 어려움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어진다.

한 평생을 살면서 진실보다는 거짓을 더 가까이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로마인 이야기’를 쓴 시오노 나나미는 “지도자는 진실해야 한다.”면서 “일반 서민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덧붙인다.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일반 사람보다 더 엄격하게 진실을 갖추어야 한다고 주문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런 관점에서 오늘 언필칭 나라의 지도자(나는 이 말에 거부감을 느낀다)라는 사람들이 과연 진실한 사람들인가에 대해서는 큰 회의와 의심을 품고 있다. 불행한 일이다. 진실 게임은 평상시에 진실을 말하기 꺼려하는 이른바 지도자들에게 권할만하다. 국민 앞에서 선거공약이든 뭐든 진실 게임을 해서 밝혔으면 한다.

박근혜 대통령한테 국민이 크게 데인 뒤라서 그런지 그런 생각이 더욱 절실하다. ‘자본론’을 쓴 칼 마르크스는 1860년대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유행하던 ‘진실 게임’이라는 것을 딸 셋과 어울려 했을 때 가장 좋아하는 것 말하기에서 “평생에 걸쳐 가장 좋아하는 것은 책 속에 파묻히기”라고 답했다. 딸들은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자기들이 아니라 책읽기라는 말에 실망했을지 모르지만 진실 게임에서 마르크스는 진실을 말한 것이다.

정치가나 학자나 적어도 먹물 먹은 사람들은 공적인 입장에서 진실을 말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언제나 진실 게임을 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설령 자신에게 불리해진다고 하더라도 진실을 말해야 한다. 특히 이 나라의 부정, 비리, 부패의 진원지에 있는 정치권 사람들은 진실을 말해야 한다. 그래야 이상한 대통령이 국정을 어지럽히는 사태가 안 일어날 수 있다.

아무리 제왕적 권력을 쥔 대통령이라고 해도 진실 된 사람들이 그 밑에 있다면 그 같은 불의나 비리가 발붙일 수 있을까. 이 나라에서 가장 시급하고 절실한 것은 자기가 속한 집단이나 기관에서 진실 게임의 멤버가 되는 것이다. 진실이 우리 사회와 나라를 통치하는 시대가 오기를 간절히 고대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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