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역사도 흐른다
나쁜 역사도 흐른다
  • 이홍길 고문
  • 승인 2016.11.03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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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게이트가 호명하는 옛 사람들
▲ 이홍길 고문

11월 2일, 조국 광복을 위해서 순명한 홍암 나철 선생의 일백주기가 벌교에서 거행되었다. 11월 6일에는 의인 백남기 농민의 민주사회장이 광주 5.18 구 묘역에서 거행될 예정이다. 성스럽고 안타까운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판국에 박근혜, 최순실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송구하기도 하고 불결하기도 하다. 일급수 물길을 떠나 악취가 진동하는 오수에 빠진 물고기 마냥 속이 니글거리는 것을 금할 수 없다. 악취는 싫다. 그런데도 오수를 정화하고 오물을 치우는 것은 우리들의 몫인 것을 어찌할 것인가? 생명은 물 없이는 못살고 더럽혀진 물도 본디 맑은 물이었고 우리들 것으로, 앞으로 우리 후손들이 써야할 물이다.

박근혜, 최태민이 영적 부부가 되고 박근혜와 최순실의 영혼이 합치되는 것을 배 놔라 감 놔라 간섭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그들의 희한한 인연들이 쌓이고 부화한 결과가 대통령 권력을 산출하고 천문학적인 그들의 부를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그것들은 국정을 농단, 국기를 흔들고 민생을 훼손했기 때문에 그 피해자인 국민은 분노한다.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것만이 아니라 어렵사리 이어가는 서민들의 고단한 일상을 부질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그래서 삶의 의욕을 감퇴시키는 당신들의 부정과 부패, 그리고 당신들의 끝없는 탐욕에 화가 난다. 정책을 조작하고 왜곡시켜 국가의 공적 기능까지 사유화하는 현란한 기량들은 역시 창조경제의 전위임에 손색이 없다. 우주마저 보우하는 그들의 미래가 영세불망(永世不亡)한다면 그냥 백성들의 생존은 깡그리 결딴나고 말 것인데, 당신네들만 유아독존 하는 세상의 그 삭막함을 어떻게 견디려고 했는지 궁금하다. 다행인 것이 나쁜 역사도 유구하여 오늘의 당신들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신라말 진성여왕은 그의 숙부이자 애인이었던 위홍이 죽자 젊은 미남자들을 불러들여 음란하게 지내고 그들에게 나라의 중요한 벼슬을 주어 국가의 기강을 무너뜨렸다. 아첨꾼이 생기고 뇌물이 성행하여 국기가 흔들린 결과 도둑이 벌떼처럼 일어나 전국이 반란에 휩싸이게 되었다. 결국 여왕은 실정에 대한 책임을 지고 왕위에서 물러나고 그 해 말에 죽었다.

조선시대 명종의 어머니였던 문정왕후는 수렴청정을 시작으로 20년 동안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문정왕후는 많은 옥사를 일으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것이 오늘의 대통령과는 달랐다. 명종 4년(1549년) 기유옥사로 3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사건이 일어난 충주 때문에 충청도는 청홍도로 이름이 바뀌기도 했다. 명종 2년에 일어난 양재역 벽서 사건은 문정왕후를 비난하는 벽서로 붉은 글씨로 양재역에 첨부되었다. 그 내용을 보면 「여군주가 위에서 정권을 잡고 간신들이 아래에서 권세를 농단하니 나라가 장차 망할 것을 가히 서서 기다릴만하다. 어찌 한심하지 아니한가.」 당시로는 모골이 송연한 내용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고 귀양을 갔는데 이를 정미사화라고도 말한다. 권력자의 측근이 호가호위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여서 문정왕후의 동생 윤원형은 20년 동안 권력과 재력을 독점해서 영의정에 올라 그 권력은 국왕을 능가할 정도였고 정난정 이라는 그의 애첩은 남편의 권세를 배경으로 상권을 장악해 전매, 모리 등의 행위로 막대한 부를 쌓았다. 문정왕후는 왕이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네가 왕이 된 것은 모두 나의 힘이다.”고 윽박지르고 때리기까지 했으며 “나와 윤원형이 아니었으면 주상께서 어찌 오늘이 있었겠습니까?”하고 꾸짖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태민이 일러준 계시와 최순실의 보좌와 정윤회, 문고리 3인방의 밀착 도움으로 이룩한 권력이었다면, 유공자들에게 일정 지분을 분배했을 수도 있겠다. 적어도 박근혜 만의 권력일 수만은 없어서 최순실 게이트가 영글어 왔으리라. 거짓말 잘 한다는 박근혜 대통령은 모든 국민들이 관심하고 야당이 촉구하는 현안에 대해 민생을 빙자해서 반대하고 시장을 방문해서 그녀의 민생행보를 과시하였는데, 문정황후도 민생을 걱정하는 기록을 실록에 남기고 있었다. 왕후는 가뭄과 장마와 태풍을 걱정하는 가운데 “백성을 구제하려고 백가지로 생각해보아도 계책이 없으니 나라가 장차 어찌될지 알 수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의 백성 걱정과는 상관없이 도적들과 임꺽정의 의적활동은 치열했고 관리들의 가렴주구도 미만했다. 임꺽정이 주로 활동했던 황해도 지역은 문정왕후의 친정붙이들이 많은 지역으로 잘못된 중앙권력이 지방의 삶들을 극명하게 파탄내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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