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 수용소 소견(9)
아우슈비츠 수용소 소견(9)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 승인 2016.06.27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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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6블록 제3실 : ‘수감자의 하루’ 방

6블록 제3실은 ‘수감자의 일과(cycle the prisoner’s day)방’이다.

여기에는 수감자의 하루를 그린 펜화가 여러 장 전시되어 있다. 이 그림들은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존자가 그린 그림이다.

방 입구 바로 앞의 그림부터 보았다. 수감자들이 일렬로 줄 서서 수프를 배식 받고 있는 그림이다. 수감자들은 그릇을 들고 있고, 카포가 수프를 휘젓으면서 배식을 하고 있고 또 한 사람 카포는 옆에서 몽둥이를 들고 질서를 잡고 있다.

카포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된 독일 국적의 범죄자 중에서 선발된 사람들이다. 이들은 SS 친위대원보다 더 가혹하고 악질적으로 유대인들을 괴롭혔다. <죽음의 수용소> 책을 쓴 오스트리아 빈 의과대학의 신경정신과 교수 빅터 프랭클(1905-1997)는 카포를 ‘우리 안의 또 다른 지배자’라고 하였다. 프랭클은 “일단 카포가 되면 그들은 나치대원이나 감시병들을 금방 닮아갔다”고 적었다. (빅터 프랭클 지음 · 이시형 옮김, 죽음의 수용소에서, 청아출판사, 2005, p 26-27)

두 번째 그림은 사역 나간 수감자들이 다시 수용소로 들어오는 장면이다. 5열 종대인 수감자들은 마치 허수아비처럼 이상하고 부자연스럽게 걷고 있다.

그림에는 수용소 정문의 ‘Arbeit Macht Frei (노동이 그대를 자유케 하리라)’ 간판이 보이고 SS 친위대원들이 3명 서 있다. 한 사람은 지휘봉을 뒤로 한 채 뒷짐을 지고 있다. 출입문 옆에는 군악대 지휘자가 두 손을 올리고 지휘를 하고 있다. 수용소 캠프의 군악대 연주단은 수감자들이 일하러 정문을 나설 때, 일하고 돌아올 때 행진곡을 연주했다.

한편 수감자들이 일하고 들어 올 때는 나치는 점호(roll-call)를 했다. 점호는 보통 한 시간 이상 걸렸다. 카포는 수감자 수를 일일이 세고 SS 친위대원에게 보고를 하였다.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이것이 인간인가, 돌베개, 2007, p 39-40)

‘점호’란 단어에 불현 듯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수용소 도로변에 붙어있는 전시물이었다. 이 전시물은 ‘1941년 점호’라는 제목의 그림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존자인 폴란드 사람 ‘코세인라크’가 1972년에 그렸다.

우선 그림 밑에 있는 설명문부터 읽어보자.

“수용소 생활의 고통중 하나는 점호였다. 수 천 명이나 되는 수용소 의 모든 수감자들이 중앙광장에서 정렬하여 점호를 하였다. 이후 중앙광장에 막사들이 지어지고 나서는 수감자들은 각 막사의 도로변에 정렬을 하였다. 이 점호는 몇 시간동안 계속되었고 때로는 12시간 이상 걸리기도 하였다.”

그러면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자. 그림 뒤편에는 막사들이 그려져 있고 광장에는 수감자들이 가득하다. 수감자들은 각 막사 별로 정렬하고 있다. 가운데에는 소장이라고 생각되는 사람과 수행원이 걸어가고 있다. 그런데 그림 앞면 왼편에 수감자 3명이 쓰러져 있고, 정렬되어 있는 곳 앞에도 사람 1명이 바닥에 쓰러져 있다.

다음 그림은 ‘몸 씻기(washing)’이다. 웃통을 벗은 수감자들이 서로 씻으려고 난장판이다. 이 난장판에 검은 옷을 입은 두 명의 카포는 몽둥이를 들고 질서를 잡으려 하고 있다.

#2. 제7블록 : 생활 및 위생상태관

이어서 제7블록을 구경하였다. 제7블록은 ‘생활 및 위생 상태(living and sanitary conditions)관’이다.

가장 먼저 본 것은 화장실이다. 화장실에는 변기가 4개 있는데 칸막이도 없다. 이는 전시공간으로 꾸민 것이고 실제로 화장실은 막사 3-4개에 하나씩 있었다한다.

다음에 본 것은 밀집 매트리스 사진이다. 이 매트리스는 1941년 봄까지 깔았고 그 이후에는 아예 없어졌다.

아쉽게도 수용소 막사는 볼 수 없었다. 막사는 제2수용소 비르케나우 수용소에 가야 볼 수 있단다. 별 수 없이 아우슈비츠 수용소 영문 책자에서 수용소 막사 사진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제2수용소 막사는 대부분 목재로 지어졌고 벽돌 막사도 있었다.

   
   
   
 

수감자들은 매트리스, 이불 · 베게도 없이, 널빤지를 이어 붙인 3층 침대에서 잤다. 수감자들은 칼잠을 잤다. 막사 당 정원은 아예 없었다. 도저히 수용할 수 없을 정도면 과잉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보내면 그만이었다. 위생상태 또한 엄청 열악했다. 막사에는 쥐가 돌아다니고 벼룩과 이 · 빈대들이 들끓었으며, 쉰내와 땀 냄새, 배설물 냄새가 진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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