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을 깎는 사람들
녹색을 깎는 사람들
  • 문틈 시인/ 시민기자
  • 승인 2016.05.25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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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샛강 옆 인도를 따라 산책을 나간다. 먼 산골짜기에서 흘러오는 샛강 물에는 들오리, 해오라기 같은 새들이 인기척을 느끼고는 갑자기 날아오른다. 샛강에는 산책할 때마다 눈길을 주어 보지만 물고기가 거의 살지 않는 것 같다. 때를 얻어 붕어나 미꾸라지, 모래무지 같은 물고기들을 구해다가 놓아주고 싶다. 물고기가 사는 샛강은 생각만 해도 마음이 설렌다.

오늘 아침에는 나보다 먼저 산책길에 나와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얼굴에 방독면 같은 무시무시한 것을 쓰고 기다란 막대 끝에서 무섭게 도는 전기 칼날을 이리저리 들이대고 산책길 옆 풀밭에 난 풀꽃이며 풀이며 잔디며 녹색들을 윙윙 소리를 내며 깎고 있다.

나는 깜짝 놀랐다. 깎여나간 풀밭은 금방 민둥 바닥이 되고 만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한참 그들이 하는 일을 지켜보며 대체 이 사람들은 지금 무엇을 하는 것일까, 망연자실한다. 갑자기 심란해진다. 5월에 풀이며 풀꽃들이 한창인데 왜 깎아내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저 사람들이야 돈 받고 용역을 받아 하는 것이니 무어라 할 수도 없다. 기계 소음과 휘발유 냄새가 역하다. 키대로 자란 풀숲과 클로버꽃, 온갖 파랑, 노랑 작은 풀꽃들이 보기에 참 좋았는데, 구청이나 그런데서 환경녹지 담당자가 시켜서 저 사람들이 마구 깎고 있을 터이다.

담당 공무원들이 설마하니 주민들이 녹색을 싫어한다고 생각했을 리도 없을 텐데, 그 풀숲에서 모기가 식하는 것도, 뱀이 기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어찌해서 녹색을 제거해 황무지처럼 만들어버리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아주 오래 전부터 나는 현실과 동떨어진 공무원들의 탁상행정을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해온 터라 이런 주민 반환경 행정을 그러려니 하고 마음을 다스린다. 그들과 주민은 애초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산책길은 한 시간 거리다. 내일 아침부터는 녹색을 제거한 길을 따라 걸어야 할 판이다. 샛강에 잔물결이 이는 골짝의 물까지는 없애지 못할 터이니 그나마 물소리를 듣고 걷게 된 것만으로 족하려 한다. 풀숲을 싹둑 깎아냈다고 해도 멀리에 푸른 산이 있으니 아주 삭막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산책길을 즐겁게 해주었던 풀밭의 아기자기한 풀들을 제거하는 공무원들에 대한 어지러운 심사는 어쩔 수 없다.

공무원 시험을 치는 데 몇천 명 모집에 몇십만 명이 몰려든다고 한다. 앞길이 구만리 같은 젊은 청춘들이 무슨 모험이나 창의력을 발휘하는 앞길에 도전하는 직업을 마다하고 한 번 들어가면 정년까지 철밥통인 공무원에 머리를 들이미니 짠한 마음이 든다. 그렇게 해서 들어간 공무원들 중에는 하는 일이 고작 녹색이 한창인 5월을 베어내는 일이라니.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이라고들 하는데 모험과 도전을 하면서 인생을 살아볼 생각을 하지 않고 정년이 보장된 공무원을 하면서 일생을 평탄하게 보내는 것을 부러워하는 세태이니 어째 뜨악하다. 하기는 공무원은 정년퇴직하면 노후를 보장하는 높은 연금이 나오니 비단 방석에 앉은 셈이다. 안정된 자리보전, 높은 급료, 노후 보장.

언젠가 이 고장 출신 재벌 회장이 텔레비전에서 한 말이 떠오른다. 자기 고향의 인구수가 거의 90퍼센트나 줄어들었는데 공무원은 오히려 열 배가 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고향 공무원 수는 결국 백배가 증가한 셈이 아니냐며 한탄하는 것이었다.

내 친구의 대학생 아들이 oo군에 인턴을 나갔는데 군청에서 인턴생활 소감발표를 했다가 혼쭐이 난 이야기를 들어보면 오늘 우리나라 공무원 세계도 정말 개혁이 필요할 것 같다. 인터넷이 발달한 세상에 사실 동사무소나 면사무소의 필요성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집에서 대학 졸업증명서까지 뗄 수 있는 세상에 산업체 종사자만 구조조정할 것이 아니라 공무원도 그래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어느 도시는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사는 도시’라고 현수막을 곳곳에 걸어놓고 꽃박람회 같은 것을 연다. 표어는 그럴싸한데 정작 그 도시에는 꽃나무가 별로 없다. 아이러니다. 프랑스 파리처럼 녹지대나 집에 꽃이 만발한 도시를 만들어놓고 그런 표어를 내건다면 모를까. 공무원들이 주민들의 환경복지에도 좀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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