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 수용소 소견(5)
아우슈비츠 수용소 소견(5)
  • 김세곤(호남역사연구원장)
  • 승인 2016.05.16 0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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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세곤(호남역사연구원장)
#1. 절멸(絶滅)의 방

이제 제1수용소 4블록 제1실을 나와서 제2실 ‘절멸(extermination)의 방’으로 발길을 옮겼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설명문과 함께 여러 장의 사진이 있다. 자세히 보니 여러 지역에서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온 유대인 사진들이다. 1944년 부다페스트 게토, 1942-1944년 위르크버그에서 이송된 유대인 등이다.

아우슈비츠에 도착한 유대인 수가 적혀 있는 설명문도 있다. 헝가리 43만 8천명, 폴란드 30만 명, 프랑스 6만9천명, 네델란드 6만 명, 그리스 5만5천명, 체코 ·보헤미아 ·모라비아 4만6천명, 슬로바키아 2만7천명, 벨기에 2만5천명, 독일·오스트리아 2만3천명, 유고슬라비아 1만 명,
이탈리아 7천 5백 명, 라트비아 1천명, 노르웨이 690명, 기타 수용소 출신 및 국적 미 확인자 3만 4천명 도합 110만 명이다.

그리고 보니 <안네의 일기>를 쓴 안네 프랑크(1929-1945)는 1944년 9월에 네델란드에서 이곳으로 이송되었고, <죽음의 수용소에서> 책을 쓴 빅터 프랭클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왔으며, <이것이 인간인가>를 쓴 프리모 레비는 이탈리아에서 체포되어 1944년 3월에 제3수용소인 모노비츠 수용에 이송되어 강제노역을 했다가 1945년 1월27일에 해방되었다.

최근 10만 명을 돌파하여 화제가 된 재개봉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귀도’ 가족도 이탈리아에서 끌려왔다. (‘인생은 아름다워’ 영화는 제71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1999년)에서 감독상과 각본상을 비롯해 7관왕을 수상했다.)

#2. ‘죽음의 길’ 방

제3실은 ‘죽음의 길’ (The Road of Death) 방이다.

여기에는 헝가리 거주 유대인들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이송 장면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1944년 5월과 6월에 나치는 약 44만 명의 헝가리 거주 유대인들을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이송했다. 1944년 3월까지는 독일과 동맹국인 헝가리는 유대인의 이송을 허용치 않은 유일한 나라였다. 1942년 3월부터 재임한 헝가리 총리 칼라이는 반항적인 협력자였다.

1944년 3월15일에 히틀러는 헝가리에게 전쟁과 복종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엄포를 놓았다. 그러자 총리 칼라이는 터키공사관으로 망명했고, 괴뢰 정부가 출범했다. 헝가리 괴뢰정부는 2차에 걸쳐 44만 명의 헝가리 유대인들을 ‘한번 타면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는 기차여행’을 보냈다. (라울 힐베르트 저 · 김학이 역, 홀로코스트, 유럽 유대인의 파괴 2, 개마고원, 2008, p1128-1129)

1944년 5월에 나치는 아우슈비츠 제2수용소 비르케나우 입구까지 기차 선로를 설치했다. 이곳은 대량학살과 사체처리를 위한 5개의 가스실과 소각로를 갖추었고, 소각로는 하루에 24,000명의 시체를 소각할 수 있었다.

나치는 헝가리 유대인 이송 장면을 200여장의 사진에 담았다. 여기에는 플랫폼에 내린 유대인들, 유대인을 남자와 여자 두 줄로 세워 신체검사를 하는 장면, 가스실로 향하는 사람들, 소지품 분류작업 모습 등이 담겨있다.

한편 나치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이송된 헝가리 유대인들을 3개월 동안에 40만 명 모두 학살했다. 수용소장 루돌프 회스는 전범재판에서 이 사실을 자백했다.

#3. 시신을 불태우다

이윽고 2층으로 올라갔다. 2층 복도에서 사진 한 장을 보았다. 제2수용소 비르케나우에서 가스 질식사한 유대인 시신을 공터에서 불태우는 장면이다.

사진 아래에는 ‘아우슈비츠 제2수용소, 1944년 존더코만도(sonderkommando)가 불법으로 찍은 사진이다.’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특별 임무'라는 의미의 독일어인 '존더코만도'는 수용소 재소자로 구성돼 학살의 뒤처리를 담당한 특별 작업반원을 말한다. 이들은 생명의 위협 때문에 동족의 학살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다. 학살에 가려진 또 다른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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