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의 추석나기, “명절만큼은 모국 생각이 간절해요”
고려인의 추석나기, “명절만큼은 모국 생각이 간절해요”
  • 김다이 기자
  • 승인 2015.09.22 0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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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 매년 고려인 위한 명절행사 열어

모두가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한가위 추석이 다가왔다. 지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오랫동안 만나지 못해 반가운 친인척들을 만나고, 명절음식을 나눠먹으며 담소를 나누는 시간만큼은 왜 빨리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다.

그렇다면 머나먼 모국을 떠나 고국인 한국 땅에서 살고 있는 고려인들은 추석을 어떻게 보낼까. 신조야씨를 만나기 전 항일운동, 강제동원 등으로 러시아(구소련)지역으로 이주했던 고려인들은 우리가 보내는 추석과 다른 점이 있을 거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최근 새단장을 한 광산구 고려인종합지원센터를 또다시 찾았다. 그리고 고려인종합지원센터 신조야 센터장에게 선입견을 깨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옛 전통 그대로 전승받아 명절 보내

선조들의 고향을 찾아 한국에 들어온 고려인들은 민족 대명절만큼은 카자흐스탄 등 모국이 그립기만하다. 조상 때부터 살아온 고국이기에 한국땅을 밟았지만, 자신이 태어난 모국이 그리울 때는 바로 명절 때다.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에서 각각 다르게 거주하던 고려인들의 명절음식은 조금씩 다르다고 한다.

우즈베키스탄의 소고기 볶음밥인 플로브(Plov), 카자흐사탄의 말고기로 만든 순대, 러시아의 삐로스키(고기만두), 러시아식 수프 등 그동안 살아왔던 나라에서 먹었던 음식들도 준비한다.

똑같은 점은 모국에서도 ‘송편’은 다함께 빚어서 먹는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에 와서 지내는 명절 때 만큼은 고려인도 모국에 남아 지내고 있는 가족들과 돌아가신 부모님 묘에 가서 성묘도 지내고 싶다.

“추석은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부터 내려오던 우리 민족만의 명절이잖아요. 고려인들은 한국에서 추석을 보내는 거라 똑같이 보내요. 차례도 지내고, 명절음식도 준비하고 똑같이 보내죠”라고 신조야씨가 말했다.

명절 아침에는 오래전부터 이어온 우리나라의 전통과 풍습을 그대로 받들어 부모나 조부모가 묻힌 묘를 찾아 제사를 지낸다. 송편을 만들 수 없으면 찹쌀가루로 부침을 해서 제사음식에 올리기도 한다. 닭고기를 삶거나 생선을 챙겨 소주를 들고 성묘를 간다.

명절 아침, 성묘 가지 못하는 현실

고려인들이 한국에서 명절을 다르게 보내는 것은 딱 한 가지, 돌아가신 부모님 무덤을 직접 찾아갈 수 없다는 점이다. 명절에 잠깐 성묘를 위해 모국으로 갈 왕복 비행기 티켓은 한 달 월급 수준으로 엄두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에서는 매년 명절마다 고려인 동포들도 한자리에 모여 명절을 함께 보내고 있다. 올해에도 28일 월곡동 제2어린이 공원에서 ‘고려인마을 추석 한마당’을 열어 명절 음식을 나눠먹으며 공연을 펼친다.

▲석올가씨는 명절에나마 잠시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가 손녀를 볼 생각에 들떠있었다.
신조야씨의 소개로 올해 추석에 잠시 명절을 보내기 위해 모국으로 가는 석알라(52)씨를 만날 수 있었다. 광주에서 에어콘, 냉장고를 만드는 공장에서 근무하는 그녀는 마침 휴무일이라 만날 수 있었다.

H2비자로 온 석알라씨는 한국에 온지 3년이 넘었다. 1년동안은 인천에서 생활하다 광주에 2년 전부터 정착하게 됐다.

그녀는 홀로 모국에 남아 있는 가족들을 위해 고국을 찾아와 일을 시작하게 됐다. 남편과 두 아들을 모국에 남겨두고 광주에서 꿋꿋하게 홀로 생활하고 있었다.

사용하는 언어 다르지만 같은 한민족

▲석올가씨와 손녀
석올가씨는 명절에나마 잠시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가 손녀를 볼 생각에 들떠있었다. 석올가씨는 “모국에 남아있는 아들이 걱정도 많이되고 손녀도 너무 보고싶어요”라며 “비자문제가 빨리 해결되어 아이들도 같이 한국에서 살았으면 좋겠어요”라고 소망했다.

한국어가 서툴러 러시아어가 편한 김으릿따(62)씨는 2년 전 광주에 왔다. 남편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난 뒤 홀로 우즈베키스탄에서 보내고 있었다. 그녀의 아들과 딸은 한국에 들어와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한국에서 고생하며 일을 하고 있는 아들딸의 뒷바라지를 해주기 위해 광주에 오게 됐다. 모국에 있는 묘를 찾아가 성묘를 가진 못해도 아들, 딸과 함께 작은 상을 차려 제사를 지내며 명절을 보내는 풍습 그대로 추석을 보낼 예정이라고 한다.

한편 신조야씨는 “간혹 엄마, 아빠가 돌아가신 땅인데, 묘가 있고 태어난 곳을 떠날 수 없다면서 한국으로 올 자신이 없다고 말하는 고려인들이 있는데 너무 안타깝다”며 “앞으로 고려인 3세들의 자녀들이 보고 배우는 것을 위해서라도 고국으로 돌아왔으면 한다”고 말한다.

이렇듯 한 민족의 핏줄로 태어나 다른 언어를 쓸 수밖에 없었던 환경에 처한 고려인들은 아직까지 우리 전통과 풍습을 잊지 않고 있다. 고려인도 우리와 똑같은 한 민족이라는 것을 잊지말고 따뜻한 관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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