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는 구름처럼
흘러가는 구름처럼
  • 문틈 시인/시민기자
  • 승인 2015.08.05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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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조각 구름처럼 외로이 방황하였다.’라고 시인 윌리엄 워즈워즈는 노래한다. 여름이 되면 늘 이 싯귀가 떠오른다. 하얀 구름이 어디에도 매이지 않고 파아란 하늘을 이리 저리 떠돌아다니는 저 무한대한 구름의 자유함이 그리운 것이다.
구름은 하늘과 땅의 경계에 있다. 하늘에도 땅에도 소속되지 않은 별스런 존재로 그 경계를 떠돌며 존재감을 발현한다. 언제였던가, 젊음이 주체스럽기만 하던 어느 날 나는 풀밭에 누워 눈이 시리도록 구름을 바라보았다.
먼 산봉우리로 가는 구름, 들판으로 가는 구름, 바다로 가는 구름, 구름들은 제각기 가고 싶은 곳으로 흘러갔다. 그런데 구름은 시시각각 모양을 달리하면서 어떤 구름은 하늘에 녹아들기도 하고, 그렇게 자취없이 사라져버리기도 했다. 옛사람이 ‘인생은 한 조각 구름과도 같다’라고 한 말을 실감했던 순간이다.
구름은 신비한 존재다. 하늘을 덮었던 구름이 금방 사라지는가 하면 파아란 하늘을 불시에 다 덮기도 한다. 아이 같은 생각으로 나는 구름 만드는 공장이 우리가 알지 못할 어디에 있는가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 구름 공장에서 가지가지 형상을 만들어 하늘에 내보내는 것이라고, 어떤 구름이나 그 작고, 크고, 아름답고, 낯설고와 상관없이 똑같은 혼을 가진 존재라고 규정했던 것이다.

여름날의 구름은 뭉게구름이 압권이다. 혹은 궁전처럼 혹은 높은 산맥처럼 파한 하늘에 희디흰 모습으로 부풀어 이미지를 연출할 때 나는 그저 대지에 발을 구르며 하늘의 구름이 몹시도 부러워 보였던 것이다. 언제였던가 미국에 갔을 때 아틀란타 어디쯤에서 대평원 위 하늘에 구름이 솟아올랐는데, 와~, 그 구름은 한반도만큼이나 커보였다.
나는 차를 세우고 카메라의 셔터를 마구 눌렀다. 사진은 온데간데 없고, 내 기억 속에 방금 본 모습처럼 저장되어 있다.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구름의 존재감은 덧없는 인생을 비유하고도 남음이 있다.
구름을 바라보는 자는 그의 마음에 서늘한 생명의 환의를 느끼리라. 일찍이 시인 괴테는 구름이 산봉우리에 머문 것을 보고 ‘산봉우리마다에 휴식이 있어라.’라고 읊었다. 대단한 통찰이다. 그러고 보면 알피니스트들이 고봉을 찾아 등반하는 것은 남이 쉽게 다다르지 못하는 높은 산 정상에서 짧은 휴식을 맛보려 함이 아닐까. 산봉우리에 머문 구름처럼.

어릴 적 조부님 댁에 갔다 오는 신작로에서 이따금 흙먼지를 자욱히 일으키며 지나가는 버스를 피해 플라타너스 가로수 밑에서 땀을 들이며 하늘을 바라보았을 때 구름이 지상의 세계가 아닌 아련한 다른 세계를 보여주던 그 모습. 지금 말하라면 나는 평생 동안 구름을 생각했다라고 대답하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시인 헤르만 헤세는 그의 책들 여기저기 구름을 예찬했다.
‘파란 하늘에, 가늘고 하얀/보드랍고 가벼운/구름이 흐른다./눈을 드리우고 느껴 보아라./하얗게 서늘한 저 구름이/너의 푸른 꿈속을 지나는 것을.’ 그렇다. 헤세의 싯귀처럼 푸른 내 꿈속을 구름은 지나간다.
달팽이는 구름의 그림자가 자기 몸을 스쳐 지나는 것을 느낀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은 너무나 바빠서 구름의 그림자를 느끼지 못한다. 서러운 일이다.

예수는 세상 마지막 날 구름을 타고 온다고 했다. 정말이지 무등산 너머로 하늘에 높이 솟아오른 흰 구름을 보고 있으면 그 구름에는 어떤 신비한 존재가 두둥실 타고 있을 것만 같다. 여름에는 일을 멈추고 때로 구름을 바라보아라. 그리고 그 구름을 따라 흘러가는 것이 무엇인지 느껴보아라. 우리 짧은 인생이 얼마나 신비로운 것인지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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