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이 부패보다 더 나쁘다.
무능이 부패보다 더 나쁘다.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 승인 2015.07.17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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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세월호 참사, 금년 메르스 사태를 지켜보면서 ‘무능한 정부’에서 근무했음이 너무 부끄러웠다. 대한민국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부패’와 ‘무능’ 단어를 조합하면 네 가지 유형의 공직자가 있다. 청렴하고 유능한 공직자는 최고이고, 부패하고 무능한 공직자는 퇴출감이다. 그런데 ‘부패하지만 유능한’ 공직자와 ‘부패하지 않으나 무능한 공직자’중에서 누가 더 국민에게 나쁜 공직자인지는 선뜻 알기 힘들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의 <목민심서>를 읽었다. ‘율기(律己)6조’ 제1조 칙궁(飭躬 몸가짐을 단속함)에 이런 구절이 있다.

시(詩)나 읊조리고 바둑이나 두면서 세월을 보내고, 고을 다스리는 일을 아전들에게만 맡겨 두는 것은 큰 잘못이다.

남창(南牕) 김현성(金玄成)이 여러 차례 고을을 맡아 다스렸는데, 깨끗하게 직무에 봉사하여 청렴한 명성이 세상에 드러났다. 그러나 성품이 매우 소탈하고 담백하여 사무 처리에는 익숙하지 못하고 죄인을 매로 다스리는 일이 없었으며, 담담하게 동헌에 앉아서 종일토록 시만 읊조렸다.

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자들이 말하기를, “남창(南牕)은 백성 아끼기를 자식처럼 하는데도 온 고을이 원망하여 탄식하고, 티끌만 한 것도 사사로이 범하는 일이 없는데도 관아 창고는 바닥이 났다.” 하였다. 이 말이 한때 웃음거리가 되었다.

김현성(1542~1621)은 1564년(명종 19)에 급제하여 벼슬은 양주목사ㆍ사재감 정(司宰監正)등을 거쳐 1611년에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에 이르렀다. 시(詩)ㆍ서(書)ㆍ화(畫)에 두루 능하여 명나라 사신 접대 때 글씨와 시로 명성이 있었다.

그런데 그는 지방수령으로 근무할 적에 청렴하기는 하였으나 무능하여 여러 번 파직 당하였다. 1588년 2월에 “가산군수(嘉山郡守) 김현성은 “용렬하여 군정(郡政)을 하리(下吏)에게 위임하고 있으니 파직하라”는 사간원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1607년 4월에는 “여주목사 김현성은 스스로는 청렴하나 모든 공무를 아전들에게 위임하였으므로 백성의 원망이 극심하다”하여 부임 4개월 만에 파직되었다. 1609년 8월 삭령군수 시절에 사헌부의 탄핵으로 또 다시 파직 당하였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아전 단속(束吏)’이 청렴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하였다.

“백성은 토지로 논밭을 삼지만, 아전들은 백성을 논밭으로 삼는다.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골수를 긁어내는 것을 농사짓는 일로 여기고, 머릿수를 모으고 마구 징수하는 것을 수확으로 삼는다.

이것이 습성이 되어서 당연한 짓으로 여기게 되었으니, 아전을 단속하지 않고서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자는 없다.”

아전은 지방관청의 실무 집행자이다. 그런데 조선 후기에는 탐관오리가 날 뛰었다. 즉 욕심쟁이 관리(탐관 貪官)와 썩은 아전(오리 汚吏)가 판을 쳤다.

다산은 “목민관이 썩은 아전을 잘 다스려야 백성이 편안 해진다”고 하였다. 그는 ‘무능한 수령은 부패한 수령 못지않게 나쁘다.’고 결론지었다. 순암 안정복(1712-1791)도 1757년에 지은 <임관정요>에서 수령이 정사를 게을리 함을 경계하였다.

수령은 관청의 사무를 급선무로 삼아 이를 처리하는 데 마음을 써야 한다. 시나 읊조리는 일은 맑은 풍치이지만, 역시 잘 헤아려야 한다.

국민 입장에서 보면 무능이 부패보다 더 나쁘다. 그런데 부패 공직자는 처벌이 가능하여도 무능 공직자는 크게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다. 무능은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조직문화와 연관이 있다. 무능하다고 하여 퇴출된 공직자는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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