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을 시험하는 메르스
운을 시험하는 메르스
  • 문틈 시인/시민기자
  • 승인 2015.07.03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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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사태를 보면서 사람의 목숨이란 것이 순전히 운에 따라서 살고 죽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다시 든다. 1번, 14번, 137번 메르스 확진자들의 사례에서 보면 그 환자들이 내원했던 병원에 그날 그 시각 응급실에 우연히 환자로 갔건 문병자로 갔던 사람은 메르스 바이러스에 노출되고, 확진자가 되기도 하고, 심지어 그로 인해 사망하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일상으로 돌아오라’고 호소하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바깥에 나가기가 두렵다. 지금 메르스 공포가 사그라들지 않는 상황에서 식당에, 극장에, 야구장에,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함부로 움직이고 싶겠는가. 메르스 격리자가 줄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안심상태는 아닌 듯하다.

대저 세상사라는 것이 예부터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고 해서 노력보다는 운이 더 작용한다고들 믿어왔다. 메르스 사태를 보면 운이 사람팔자를 좌우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인류 문명은 그간 인간생활의 편리, 효율, 건강, 탐험 등 여러 목적을 향하여 진보해왔지만 그것들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불확실한 미래를 운에 맡기지 않고 예측가능한 미래로 만들기 위한 노력의 여정이었다고 할 수 있을 터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이번 메르스 사태는 과연 우리가 정말 문명인의 생각으로 대처하려고 했는지 의문이 든다. 우리의 능력이 여기까지밖에 안되는가 싶기도 하고. 병을 고쳐주는 병원에서 대량으로 메르스 환자를 만들어 내보냈으니 기가 막히다. 하기는 그 병원의 의료진도 메르스에 걸렸으니 말해서 무엇 하랴.

14번 환자는 병원 응급실에 있을 때 마스크를 벗고 응급실 옆 1층 로비에 있는 카페에도 가고, 기침을 해대면서 화장실도 가고 로비를 휘젓고 다닌 모양이다. 또 다른 환자는 자신이 메르스에 걸린 사실을 알면서도 쉬쉬하며 이 병원, 저 병원, 약국, 온 군데를 돌아다녀 접촉자가 4천8백명이니 된다고 한다.
그 순간 무슨 연유가 되었건 이 메르스 감염자와 접촉했던 사람들은 지금 불안한 마음들일 것이다. 또 어떤 병원에서 이송요원으로 일했던 한 사람은 이렌가 아흐렌가를 기침을 쿨럭이며 계속 일을 했으며 지하철을 두 번씩 갈아타고 병원으로 출근하였다니 경악할 일이다. 게다가 이 사람은 자신이 메르스에 걸린 것을 확진하게 되면 일자리(비정규직)를 잃을까 걱정되어 검진을 일부러 안 받았다니, 울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제일 안타까운 것이 평택성모병원에서 1번 환자가 폐렴증세로 찾아왔을 때 질병본부에 확진을 요청하자 당국이 “그 사람은 바레인에서 온 사람이니 할 것 없다.”고 거절했다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1번 환자가 메르스 환자임을 알아낼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메르스를 겁내는 이유는 내가 사실 고위험군에 속하기 때문이다.
천식이 있어서 병과 함께 살고 있다. 심한 편은 아니지만 나같은 사람이 만일 메르스 바이러스에 노출된다면…. 생각만 해도 온몸에 발열이 나는 것만 같다. 그래서 바깥 출입도 거의 삼가고 있는 중이다. 마치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르고 근신하는 사람처럼.

그때 그 시간 그 환자와 함께 있던 사람들은 느닷없이 메르스 바이러스에 노출되었다. 이것이 운이 아니고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물론 메르스에 걸린다고 다 죽는 것은 아니라지만 말이다. 에이즈, 에볼라, 사스, 메르스 같은 인간을 괴롭히는 무서운 신종 역병들은 어찌 해서 자꾸만 이어 나타나는 것인지, 우리의 생존이 늘 이 같은 힘겨운 도전에 놓여 있다는 것이 인류의 운명인 성싶다.
하지만 메르스 감염자들을 불운에 맡기지 않겠다고 이 괴질과 분투하는 의료진들의 숭고한 모습에서 그나마 마음 한 켠으로 안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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